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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의료진 성추행 "더 못 참아"...병원 고소, 법원 징역형

환자가 의료진 성추행 "더 못 참아"...병원 고소, 법원 징역형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6.03.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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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 환자·보호자 폭언·폭행 시달려...성희롱 법적 대응 21% 불과
10명 중 1명 성희롱·성폭력 경험...욕 듣거나 맞아도 "참는다" 86%

▲ 모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료진의 배를 쓰다듬는 성추행을 하고 있다. 이 환자는 징역 6월에 사회봉사 및 성폭력 치료강의 각각 40시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범행을 자백하고, 뉘우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형 집행을 2년 유예했다.
경기도 A병원은 최근 응급센터를 찾은 B씨를 강제 추행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술을 마신 후 넘어져 이마에 열상을 입자 119구급차량을 타고 A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B씨는 인적사항을 묻는 의료진의 질문에 답하기는 커녕 욕설을 하며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A병원 C간호사·D응급구조사·보안 요원까지 힘을 합해 술에 취해 비틀대는 B씨를 간신히 의자에 앉힌 채 혈압과 맥박을 재고, 열상 부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B씨는 갑자기 C간호사의 허리를 감싸면서 허리와 엉덩이 부위를 쓰다듬었다. C간호사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처치실에서 뛰쳐 나왔다. B씨의 강제 추행은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D씨로 향했다. 가슴 아래 부위부터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강제 추행이 이어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피해 회복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A병원은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간간이 벌어지는 환자와 보호자에 의한 의료진 폭언·폭행이나 성희롱과 성추행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B씨를 고발했다.

A병원 법무팀은 법률적인 검토 끝에 형법 제298조와 2002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B씨의 의료진 강제추행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응급진료 방해·협박·폭행 등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도 고소 이유로 들었다.

B환자가 C간호사와 D응급구조사를 강제 추행하는 장면을 담은 CCTV 분석자료와 응급실 기록은 물론 119 구급활동 일지·진단서·외래초진기록·간호일지까지 첨부, 증거물로 제출했다.

A병원 법무팀 관계자는 "강제 추행을 당한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는 환자에게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두려움을 갖게 된다"면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의료진들이 이같은 사건으로 움츠려 들고, 두려움을 갖게 되면 직업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자신이 입원한 병원에서 자신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간호사를 강제로 추행한 것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못하고,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환자로부터 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6월형을 선고했다(2015고단2149).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과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느 점을 고려해 집행을 2년 유예하되, 40시간 사회봉사 명령 및 40시간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했다.

피고인은 징역형이 과중하다며 항소를 제기했으나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항소가 기각되면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2015노4144).

병원, 간호사 강제추행한 주취자 고발...징역 6월에 40시간 사회봉사 명령

의료진이 환자를 성추행한 사건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추행을 저지르는 사건은 대부분 참고 넘어가는 탓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법정으로 사건이 확대될 경우 병원 이미지를 고려, 고소·고발보다는 합의나 중재가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8월 11일 이목희·이인영·정진후 국회의원과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주최한 '병원실태 조사결과 3대 존중병원 만들기 추진계획 발표회'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만 8629명 중 49.8%(8694명)가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응답은 7.8%(1270명)였으며, 성희롱(9.6%, 1556명)·성폭력(0.4%, 62명)  등이 뒤를 이었다. 폭언·폭행을 당했을 때 86.2%는 '혼자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으며, 성희롱을 당한 경우에도 51%가 참는 것으로 파악됐다.

▲ '병원실태 조사결과 3대 존중병원 만들기 추진계획 발표회'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만 8629명 중 49.8%(8694명)가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조합 및 고충처리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폭언·폭행이 14.1%, 성희롱이 24.6%였다.

법적 대응은 폭언·폭행의 경우 10.9%, 성희롱은 20.9%로 10명 중 2명 만이 공식적인 해결방법을 찾았으며, 나머지 상당수는 그냥 참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진 법적 대응, 폭언·폭행 10.9%, 성희롱 20.9% 불과

<의협신문>이 지난해 8월 전국 의사 539명을 대상으로 진료실 폭력 경험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5%가 환자·보호자 등으로부터 폭력·폭언·협박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 <의협신문>이 지난해 8월 전국 의사 539명을 대상으로 진료실 폭력 경험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 96.5%가 환자·보호자 등으로부터 폭력·폭언·협박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폭력행위 대부분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는 폐쇄 공간인 진료실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4.6%가 진료실 안에서 폭력·폭언 등을 당했다고 답했다. 응급실(22.2%)·환자 대기실(10.5%)·엘리베이터 등 기타 장소(2.7%) 등에서도 폭력이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폭력·폭언 피해를 입은 의사 대부분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91.4%는 "스트레스·무기력·분노·두려움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졌다"고 답했다. 결근을 하거나 치료를 받는 등 진료 및 일상생활에 심각한 차질을 빚은 의사도 3.6%로 조사됐다.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병원의 대처에 대해 '병원 평판을 고려해 고발 등 법적 조치보다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람'이 60.2%로 가장 많았다.  '병원은 관심이 없고, 폭력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맡김'이 26.4%, '병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한다'는 13.3%에 불과했다.

의료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86.5%가 '의료인 폭행 가중 처벌, 의료기관 내 경찰 상주 등 관련 규정 및 법안 강화'를 꼽았다. CCTV·방호 공간 설치 등 물리적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는 응답도 10.2%로 나타났다.

진료행위 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을 금지하는 '의료인 폭행 방지 관련 의료법 개정안(의료인 폭행 방지법)'은 2012년 12월 발의 후 3년 넘게 논의만 거듭하고 있다. 사실상 19대 국회에서 입법이 어렵게 됐다.

A병원 법무팀 관계자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면 심리적인 불안정은 물론 직업선택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해 다른 환자의 진료까지 지장을 주게 된다"면서 "법률 개정을 통해 응급실내 폭력뿐 아니라 의료진 폭력에 대해 가중처벌하고, 이해 다툼이 있는 환자 및 보호자가 의료진에 접근할 수 없도록 관련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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