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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진료실 폭력 여전…의사 96.5% "당해봤다"

기획 진료실 폭력 여전…의사 96.5% "당해봤다"

  • 이석영 기자 leeseokyoung@gmail.com
  • 승인 2015.08.2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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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539명 대상 조사…'법 제정 폭력예방에 도움' 70%
'진료결과 불만' 가장 많아…병원측 대응 대부분 '쉬쉬'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의사가 폭행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 진료실 폭력 행위자를 처벌하는 의료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의료인들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의협신문>이 전국 의사 539명을 대상으로 8월 3∼18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5%가 환자·보호자 등으로부터 폭력·폭언·협박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이 난무하는 병의원 실태는 과거 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본지가 2010년 8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의료기관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86.4%였으며, 2013년 2월 조사에서는 95.0%가 경험했다. 폭력 피해 경험이 해가 갈수록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6.5%가 '과거에 비해 폭력의 정도가 달라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특히 36%는 훨씬 더 심해졌다고 응답했다. 폭력의 정도가 약화됐다는 답변은 5%에 그쳤다.

과거보다 심각…장소는 진료실 65%·응급실 22%

근무 형태별로 폭력을 경험한 비율을 분석한 결과, 교수와 봉직의가 각각 97.6%, 97.1%로 개원의(95.7%)보다 약간 더 높았다. 연령별로는 30대(96.5%)와 40대(99.4%) 의사의 피해 경험이 타 연령대 보다 높게 나타났다.

폭력을 당한 횟수는 연 1∼2회가 46.4%로 가장 많았다. 연 3∼5회(25.4%), 연 5∼10회(10%), 월 1회 이상(9.8%), 매주 한 건 이상(3.9%) 등이 뒤를 이었다. 거의 매일 폭력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응답자도 1.5%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폭력 행위는 의사의 성별과 무관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의사의 95.4%가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해 남성 의사(96.8%)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의사의 근무 지역과 전문과목 등에서는 폭력 경험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폭력행위 대부분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는 폐쇄 공간인 진료실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4.6%가 진료실 안에서 폭력·폭언 등을 당했다고 답했다. 응급실(22.2%)과 환자 대기실(10.5%)·엘리베이터 등 기타 장소(2.7%)에서도 폭력이 일어났다.

눈에 띄는 것은 전공의가 폭력 피해를 당한 장소는 진료실보다 응급실이 더 많다는 점이다. 전공의 응답자의 54.5%가 응급실내에서 폭력에 노출됐다고 답해 진료실내(31.8%)보다 많았다. 응급실 당직을 많이 서는 전공의들은 근무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진료결과 불만' 폭행·폭언 주요 이유…묻지마식 폭행도 11%

환자·보호자가 자신을 도와주는 의사에게 도리어 폭행·폭언을 휘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력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44.2%는 '진료결과에 대한 불만'이라고 답했다. 대기시간에 대한 불만(14.1%)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예상 외로 의료진·직원들의 불친절 때문이라는 응답은 7.4%에 그쳤다. 이밖에 진료비 불만(8.9%), 이유 없는 묻지마식 폭행(10.9%) 등도 있었다.

진료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폭력 피해를 당한 의사들의 전문과목을 분석해 보았다. 산부인과·신경과·신경외과가 70%대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가정의학과(23.8%) 정신건강의학과(24.3%) 일반과(28.0%)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진료결과를 이유로한 폭력 피해를 덜 경험했다.

폭력·폭언 피해를 입은 의사 대부분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91.4%가 '스트레스·무기력·분노·두려움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졌다'고 답했다. 결근을 하거나 치료를 받는 등 진료 및 일상생활에 심각한 차질을 빚은 의사도 3.6%로 조사됐다.

폭력으로 인해 심리적 불안정을 겪었다는 비율은 2010년 조사의 69.1%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의사의 심리적 불안정은 다른 환자 진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의료기관 폭력 행위로 인한 피해는 의사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심리적 불안정을 호소하는 비율은 연령대가 낮을 수록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20대(100.0%)·30대(95.2%)·40대(89.0%)·50대(91.9%)·60대 이상(85.2%) 분포를 보였다. 진료 경험이 짧을 수록 폭력 피해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역별로는 전공의 응답자의 95.5%가 심리적 불안정을 겪었다고 답해 타 직역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다.

병원측 대처는 미온적…공권력 도움 요청 과거보다 높아져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병원측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물어보았다. 병원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한다는 답변은 13.3%에 불과했다. 절반을 훌쩍 넘는 60.2%는 '병원의 평판을 고려해 고발 등 법적 조치보다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폭력에 대한 피해구제를 의사 개인의 책임에 맡기고 있는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란다는 응답은 울산 지역(85.7%)에서 가장 높았고, 병원측이 적극 나선다는 답변은 제주도(40.0%)에서 높게 나타났다.

의료인 폭력 행위에 대해 병원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다 보니 피해 입은 의사 10명 중 3명은 상황을 회피하는 수준의 대응에 그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30.6%가 '참거나 무시하고 자리를 피한다'고 답했다.

주목할 점은 공권력의 도움을 구하는 의식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대응하는 방식을 묻는 질문에 경찰에 신고한다는 응답이 38.4%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응답률은 2010년 조사 당시 19.1%보다 약 2배나 높아진 것이다. 반면 '말이나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맞선다'는 응답은 2010년 32.7%에서 19.3%로 줄어들었다. 병의원 폭력의 특성상 의사가 직접 흥분 상태인 가해자를 상대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경남 창원의 한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가 환자 보호자로부터 무차별 구타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의료기관 폭력행위의 심각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인 보호를 위한 법·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의협은 "폭행 당한 의사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상태로서 앞으로 진료현장 복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의사에 대한 폭력이 의사 개인의 피해로 그치지 않고 다른 환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이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건의 파장은 빠르게 묻혀졌고, 의사 대부분은 사건 전후 의료기관 폭력 실태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79.8%가 '방송 보도 이전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법·제도적 장치 시급' 87%…의료인 폭행 방지법 진료실 안전 도움 기대

의료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86.5%가 '의료인 폭행 가중 처벌, 의료기관 내 경찰 상주 등 관련 규정 및 법안 강화'라고 답했다. CCTV, 방호공간 설치 등 물리적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는 응답도 10.2%로 나타났다.

현재 국회에는 의료인 폭행 행위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 절차를 남겨 놓고 있다. 개정안은 의료법상 '진료 방해 행위' 유형에 '의료인 폭행'을 새로 추가했다.

현재는 의사·간호사 등에 대한 폭력 행위를 별도로 금지·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의료인 폭행사건을 일반 폭행사건으로 취급해 가해자 대부분이 벌금형을 받는데 그치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진료 행위 중인 의료인을 폭행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 대부분은 이 같은 법안이 마련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61.2%가 모른다고 답했다. 모른다는 응답은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전공의에서 제일 높은 비율(72.7%)로 나타나 역설적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의사들은 법률 개정이 의료인 폭행을 막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약 절반인 49.5% 응답자가 '진료실 폭력행위를 예방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17.8%는 '진료실 안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형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26.3%로 조사됐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아직도 많은 의사 회원들이 진료실 폭력 행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

오히려 과거 보다 더 심해졌다는 답변이 가장 많아서 놀랍다"면서 "의료인 폭행 금지의 법제화 필요성을 다시 한번 국회에 강력히 촉구하고, 현재 계류 중인 의료법 개정안이 정기국회 때 반드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죽이겠다'는 협박에 폭언·폭행 예사

생생한 폭력 경험담 살펴보니…

설문조사에 참여한 의사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과 의견을 본지에 알려왔다. 언론에 보도된 의사 폭행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사연을 소개한다(괄호안은 이메일 주소).

- "응급실에서 주사를 빨리 놓아 주지 않는다며 남자 환자가 얼굴을 폭행했다." (jyh****)

- "와파린 처방을 받고 복용한 환자가 속이 쓰리다고 외래 내원해 험한 '돌팔이' 등 험한 욕설을 했다. 보안 요원이 왔으나 제지하지 못해 결국 다른 환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drp****)

- "30대로 보이는 환자 보호자가 진료에 불만을 드러내며 진료실 책상과 기물을 파손했다.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다." ( sem****)

- "투석환자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폭언을 해 재입원을 거부당하자 진료실에 뛰어들어와 30분 넘게 의사와 원무과직원에게 폭언을 했다." (yh9****)

- "42세 조현정동장애 여성 환자가 병동 한복판에서 욕설과 함께 따귀를 때렸다."(yah****)

- "환자 보호자들이 의사를 폭행하려 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의사가 되었으면서 폭행 당할수 있다는 각오를 하지 않았느냐'며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전공의로서 참으로 무기력해지는 순간이었다." (goo****)

- "검사결과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는 환자에게 진료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하시라고 말했더니, 협박·폭언과 함께 보호자가 멱살을 잡았다."(syk****)

- "다른 의료진에게 치료받은 후 통증이 더 심해졌다며 주말에 응급실로 내원해 협박과 묻지마식 폭력을 행사했다"(ing****)

- "응급실에 내원한 조직 폭력배가 '빨리 진료해주지 않는다'며 유리용기를 깨뜨려 날카로운 부위로 의료진을 위협했다. 출동한 경찰은 조폭과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는데 '아직 폭력이 일어나지 않아 환자를 잡아갈 수는 없다'며 철수하려다가 의사·보호자의 항의를 받고 조사하는 척만 했다." (lee****)

- "진단서, 장애진단서 등과 관련한 폭행을 자주 접한다. 소신있게 진단서를 작성하려 해도 강압과 폭언 등의 물리력을 행사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마주할 때면 '그냥 원하는대로 작성해 줘야 할까'하고 고민한 적도 많다."(heu****)

- "응급실에서 진료 중 만취한 42세 남자 환자에게 발로 복부를 걷어차였다. 경찰에 신고해 검찰로 넘어갔으나 약식기소로 벌금 300만원을 받고 끝났다."(lol****)

 

▲조사기간 : 2015년 8월 3 ~ 18일 ▲조사방법 :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한 이메일 설문 (전체 의사회원 가운데 지역·직역·전공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 ▲조사대상 수 : 총 539명 ▲조사대상 분포 : ◇성별=남 80% / 여 20% ◇소속 : 개원의 42.9% 교수 15.6% 봉직의 31.5% 전공의 4.1% 전임의 1.5% 군의관 0.9% 공중보건의 1.9% 공무원 0.4% 휴직 0% 기타 1.3% ▲통계처리·분석 도구 : ND Soft '닥터스뉴스 설문조사 시스템' ▲표본오차 : ±3.1 / 95% 신뢰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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