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6 17:49 (금)
염산테러 당한 의사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에.."

염산테러 당한 의사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에.."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12.05 05:59
  • 댓글 1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료기록에 험담 퍼뜨렸다" 70대 망상 환자에 '묻지마 폭행' 당해

 10월22일 환자에게 염산테러를 당한 L원장의 얼굴.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염산으로 인한 상처 자국이 선명하다.

지난 10월 22일 경기도 안양시 A안과의원. 환자가 몰리는 오후 5시께 70대 후반의 남성환자가 찾아왔다. 차례가 되어 L원장 앞에 앉은 그는 "진료를 보러온 게 아니다. 몸이 아픈데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며 점퍼 주머니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원장이 입을 열려던 순간 화끈거리는 뭔가가 뿌려졌다. 얼굴을 감싸고 뒤돌아서니 이번에는 허리와 등에 10여 차례 무차별 구타가 가해졌다. 노인은 경찰이 오는 동안 유유히 사라졌다. 화끈거리는 액체의 정체가 염산이었다는 사실을, 원장은 나중에야 알았다.

의료현장에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의료인의 진료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추이가 주목되는 가운데, 수도권 개원의사가 환자에게 염산 테러를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력이 안 보인다며 A의원을 찾은 B씨는 망막질환 진단을 위해 산동검사를 받았다. 원장은 그 검사를 하면 약 기운 때문에 하루 정도 이전보다 눈이 침침할 수 있다고 설명한 후 검사를 시행했다.

B씨는 검사 직후 더 안 보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루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재차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급기야는 원장의 멱살을 잡고 "돌팔이"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한 시간가량 난동을 피웠다.

그가 다시 찾아온 시점은 한 달 뒤. 노인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태도로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면서 진료를 부탁했다. 원장은 B씨가 망막질환자임을 고려해 인근 병원급 기관으로 전원 조치했지만, 환자는 병원에서의 주사치료를 거부하고 돌아왔다.

B씨는 과거 자신이 난동을 부린 사실을 원장이 차트에 써놓은 탓에, 어느 병원을 가도 진료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 일은 없다고, 기록지를 보여주면서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이후 몇 차례 진료를 받고 10개월 동안 왕래가 없다가 병원을 방문한 날이 '그 날', 범행을 계획하고 염산을 준비해온 날이었다.

사건 직후 피부과 진단 11주와 정신과 진단 6주를 받은 L원장(43)의 얼굴은 현재까지 양쪽 관자놀이 전반에 염산으로 인한 흉터가 선명하다. B씨는 검찰 구속된 상태.

원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망상증이 있는 환자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런 극단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트라우마가 생겨 환자를 소극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시술이나 수술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라서, 의료사고가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방어진료를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 원장은 "의사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환자가 그러겠냐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정황도 모르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겠냐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면서 "어떤 경우에서든 폭력은 일어나선 안 된다. 의료행위 방해방지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