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교수'가 병원 한복판서 팻말을 든 이유는?

'소아암 교수'가 병원 한복판서 팻말을 든 이유는?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4.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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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우 연세의대 교수 "정부 낙수론, 너무나 모멸적"
"바이탈과 교수들 사직, 의사로선 생명 끊겠단 선언"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는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 6일부터 1인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의협신문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는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했다. 피켓시위는 지난 6일부터 이어지고 있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3월 11일 오전 11시.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그 남자는 작은 손팻말을 들고, 환자와 동료들 앞에 섰다. 전날까지 당직을 선 그의 눈은 피로가 한가득 담겨 있다. 학창시절에도 해본적 없던 일. 유난히 내성적인 '극I(성격유형검사인 MBTI 중 내향형)'이지만 이번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오늘이 벌써 3번째 시위 날이다.

손팻말에는 '2000명 낙수론은 필수의료과에 너무나 모멸적입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혔다.

정부가 꺼낸 '낙수론'은 필수의료과 교수에 모멸감을 줬다. 의대 정원을 확대해 '안 가고 싶은 과'까지 억지로 가도록 한다는 정부의 낙수론. 

환자의 생명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한순간에 부정해버리는 발언이었다. 의대 2000명 정원 확대의 이유가 '소청과 오픈런'이 됐다는 사실은 또 한 번의 분노를 일으켰다.

시위는 1시간 정도 이어졌다. 팻말을 든 교수 앞으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환자, 엄지를 들어보이거나 악수를 건네는 동료들, "작년에 수업을 들었다"며 응원한다는 말을 건네는 본과 2학년 의대생, 수줍은 얼굴로 음료수를 건네는 행인, 욕을 하며 지나가는 환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가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하면서, 내원자들에게 팸플렛을 나눠주고 있다. ⓒ의협신문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가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하면서, 내원자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국민들은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한다고 알고 있어요", "의대 증원을 해서 소청과 선생님을 늘리면 좋은거 아닌가요?" - 지나가던 내원 환자

"2000명 증원을 한다고 해서, 소아청소년과에 오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번에 지원한다는 정책은 기존에 이미 하던 정책을 모아서 발표한 것에 불과합니다" - 한정우 교수

환자와 소청과 교수 사이,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 한 명 한 명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이어간다. 교수의 설명을 들은 내원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던 길을 이어간다.

익숙치 않은듯 어설픈 동작으로 준비한 팸플릿을 나눠주기도 한다. 꿋꿋하게 시위 시간을 채워 나간다.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는 지난 6일부터 1인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당직 날짜와 원내 보건의료노조 시위 시간을 피해 월·수·금 오전 시간을 이용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은 시위에 집중하겠습니다." 1시간 가량의 꽉 찬 시위가 끝나고나서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한정우 교수는 기피과의 대표, 소아청소년과다. 그중에서도 소아혈액종양내과를 진료 중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취득한 뒤 내과 수련을 또 받은 바이탈과 '더블보드'의 소유자다.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가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내원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시위를 지켜봤다. ⓒ의협신문
한정우 연세의대 교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혈액종양내과)가 3월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로비 앞에서 세번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내원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시위를 지켜봤다.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일문일답]
Q. 환자분들과의 열띤 토론 잘 들었다. 한 분 한 분의 말씀에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팸플릿을 나눠주실 때는 유난히 어색해보였다.

요즘 말로 I 중에서도 극 I다. 학창시절에도 한번도 이런걸 해본적이 없다. 이런 저까지 나섰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Q. 눈을 보니 상당히 피로해 보인다.
어제도 당직을 섰다. 사실 소청과는 전공의 대거 이탈 이전에도 전공의가 부족하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당직을 섰다. 이번 일 이후엔 일주일에 두번 정도 서고 있다.

Q. 응원하는 분들도 많았다. 특히 음료수를 건넨 분도 있던데 지인분인가?
모르는 분이었다. 응원에는 감사한 마음이다.

Q. 시위를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실망감과 배신감, 모멸감에서 시작했다. 2000명을 뽑아 경쟁을 심화시키면 밀려난 사람들이 필수과와 지역으로 분산 배치될 거라는 낙수론. 생명을 지켜온 사람들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였다는 모멸감. 적자 회복은 고사하고, 우리의 인생과 사명감과 자긍심까지 모두 앗아가면 무엇이 남겠나? 이게 국민의 생명을 위한 필수의료 정책인지 의문이다.

Q. 환자분들께 진행한 설명을 들어보니, 이번 의대증원 이전에도 소아청소년과 정책에 대한 비판 의견이 있으셨던 것 같다. 다시 설명해본다면?
정부는 작년부터 소아청소년과 지원 정책을 크게 홍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한 정책이었지만...너무 약했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건 12월 모집 전공의 모집으로 나타났다. 빅5인 세브란스병원까지 지원자가 0명이었다. 지방병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정책이 이제 막 시작된 거라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기에 10년 정도 차분히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청과 오픈런을 앞세우면서 의대 증원 정책을 발표했다. 2000명 증원의 이유로 소청과를 끌어들이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소청과를 포함한 필수의료 살리기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상당히 배신감도 들었다. 낙담했고, 또 낙담했다.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 더이상 정부를 신뢰할 수 없을 거라고 봤다. 

Q. 이번이 3번째 시위라고 알고 있다. 시위마다 주제가 다르다고 하는데, 소개해 달라.
5가지 정도의 주제를 잡고, 5차례의 시위를 준비했다. 첫 번째는 소청과 오픈런을 증원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가 인턴 2년제에 대한 거였다. 인턴 2년제로 소청과 수련을 하기 싫은 인턴들도 강제로 소청과를 장기간 수련하도록 하는 거다.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싶은 인턴과 일을 하고 싶지, 하기 싫은 인턴들과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모멸적인 낙수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4, 5번째 내용은 시위 때 발표할 계획이다. 향후 더 이야기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생기면 추가할 생각도 있다.

Q. 바이탈과의 대표적인 소아청소년과, 그중에서도 소아혈액종양내과를 담당하고 계신다.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의사라면 의대에 진학하면서 누구나 생명을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거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지내면서 현실을 알게 된다. 바이탈과를 선택하게 되면 365일 몸과 마음이 편치 않고, 가족들에게도 여유로운 삶을 줄 수 없다. 삶의 질과 경제적인 풍요로움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느낄 의대생들이 많을 거라고 본다. 기피과의 본질적 문제는 여기에 있다.

Q. 최근 교수들의 공개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필수과라고 불리는 과에서 먼저 시작됐다. 어떻게 보시나?
의사들은 사실 필수과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모든 과가 필수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바이탈과로 부르겠다. 이분들은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저 역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보지만 한 환자의 시작과 끝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있다.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다. 정부의 '낙수론'은 내 존재 자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존재 가치를 부정당했다고 본다. 경제적인 보상은 원래 없었고, 그나마 남은 자부심까지 빼앗은거다. 박탈감이 클거라고 본다.

이들은 의사로서 '자살'을 선택한 거다. 나에겐 "사직한다"가 아닌 "자살한다"로 들린다. "생명을 끊겠다. 날 좀 봐 달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정부는 "마음대로 해라. 면허 취소하고, 면허 정지할거야"를 반복한다. 정부도 답답한 면이 있겠지만 대응 방식을 보면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나,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줄 순 없나 라는 생각이 든다.

Q. 정부가 오늘부터 공보의를 파견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어떻게 보시나?
전공의 몇 천명이 나갔는데 200분을 파견한다? 일종의 쇼다. 정치적인 쇼라고 본다. 정부가 이거 밖에 못하는 건지 너무나 초라해보인다.

Q. 비상진료지원금에 대한 거부 의사도 밝히셨다. 
후배들이 고발되고, 기소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나가 있다. 정부는 우리 후배들을 위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고 한다. 우리가 돈 받자고 이 일을 하거나, 전공의에 동의하지 않아서 이 병원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환자 곁을 떠날 수가 없어 남아 있지만, 마음은 후배들과 함께 있다.

무엇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은 '소아가산 불가'라고 그렇게도 뻔뻔하게 안내서에 적어 놓은 거다. 앞으로도 100년간 소청과 회복은 없을 것임을 스스로 증명할 꼴이다. 비상진료지원금의 불순한 의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소청과에 대한 몰이해에 더욱 더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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