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약 투여한 한의사 유죄 결정적 법리는?

전문약 투여한 한의사 유죄 결정적 법리는?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3.11.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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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기기와 의약품 달라"…침습성·위해성 명백, 이원체계·고의성도 영향
리도카인, 소량도 치명적…"한의사, 부작용 발생 시 대처 가능할까"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한의계가 의과 영역 침범을 넓혀가는 와중 사법부는 한의사가 리도카인 등 전문의약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명시했다.

1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환자에게 리도카인을 주사한 피고 A한의사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 2013년 대구지방법원이 리도카인을 주사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하고,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청구를 부당하다고 판결한 데 이어 같은 심리를 유지한 것이다.

사건의 본말은 이렇다.

A한의사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 주사액을 봉침액과 혼합해 환자 통증 부위에 주사해 왔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원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는데, A한의사는 이에 불복해 2022년 10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한의사와 대한한의사협회는 일전의 초음파 진단기기와 뇌파계의 판례를 언급하며, 같은 법리로서 전문의약품이 한의사에게 허용돼야 한다고 변론했다. 

현대의학에서 유래된 의약품 및 의약외품이라도, 리도카인 등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사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의료법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의료법·약사법의 취지와 법령상 한의사가 리도카인 등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은 무면허의료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재판부는 "의료법과 약사법 규정상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는 의료행위 및 의약품 사용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의사와 한의사는 각각의 영역을 벗어난 의약품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일축했다. "진단기기와 의약품은 별개의 영역으로, 대법원 판례를 들면서 한의사도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A한의사를 유죄로 판결했다.

특히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의료법과 약사법상 리도카인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초음파 진단기기 및 뇌파계에 대한 판단과는 달리, 전문의약품에 대해서는 명백히 선을 그은 것이다. 의료계 변호사들은 지난 판례에서도 쟁점이었던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기계적인 검사와 환자에게 투여되는 침습성 약물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리도카인은 독성 또는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어 투약 자체가 명백히 위해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법원으로 가더라도 심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또 "진단기기마저도 사법부가 판독을 별개로 떼어놓고 판단했을 뿐, 전문적인 판독을 한의사가 수행한다면 위해성과 위법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와 관련해 "국소마취 부작용이 생기면 급히 심폐소생술(CPR) 등이 필요하다"며 "로컬 의원에서도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한의사들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리도카인이 과량 투여되거나 혈관이나 뇌척수 부위로 잘못 투여되면 어지러움, 경련, 서맥, 저혈압, 호흡억제 등을 초래할 수 있으며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어깨 위쪽이나 두경부 근처에 투여 시 뇌척수 부위로 투여될 위험이 커서 소량으로도 뇌 기능이나 심장에 치명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리도카인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사용돼야 하며, 부작용 발생 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한 의사만이 처방해야 한다"고 고지하고 있다.

재판부가 의료법이 이원화 체계로 이뤄져 있음을 주지시켰다고도 해석된다.

김연희 변호사는 "피고는 전문의약품을 초음파 진단기기와 같은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영역을 분류한 의료법 취지상 재판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도 "현행 법률 규정을 종합해 볼 때 한의사는 한약과 한약제제를 조제하거나 한약을 처방할 수 있을 뿐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음이 명백하다"며 "(한의사가) 전문약을 처방·조제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 밖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김연희 변호사에 따르면 피고 한의사가 리도카인이 현대의약품으로 품목허가를 받고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고의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는 점도 이번 판결에 주효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을 "한약 및 한약제제 이외에 현대의학적 안전성·유효성 심사기준에 따라 품목허가된 의약품을 처방·조제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다시 한번 규정한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한편 한의협은 판결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는데, 진단기기 사례처럼 상급심에서 다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법리적·의학적 판단에 비춰봤을 때, 전문의약품은 진단기기와는 달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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