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불성실한 진료 아니라면 손해배상 책임 없어"

대법원 "불성실한 진료 아니라면 손해배상 책임 없어"

  • 송성철 기자 medicalnews@hanmail.net
  • 승인 2023.08.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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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원서 감기 진료받다 호흡곤란 발생
전원 권고 후 의원 나와 5분 뒤 쓰러져
119 후송 중 심정지…20개월 후 심근경색 사망
1·2심 "이송 관여하지 않아 불성실" 위자료 인정
대법원 "현저한 불성실 진료 아냐" 파기·환송 

대법원 전경. ⓒ의협신문
대법원 전경. ⓒ의협신문

환자에게 이상 증상이 발생, 큰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네의원장은 어느 정도까지 성실해야 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지난 18일 A환자의 가족이 B의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환자의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면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A환자(65세·여자)는 감기몸살 증상으로 B의원을 방문, 30분 동안 비타민C 20㎖를 섞은 아미노산 영양제인 트리푸신 250㎖(총 270㎖)를 주사를 통해 투여받았다. 세프라딘(항생제) 1g과 덱타손주(기관지염 및 천식 치료제) 5㎎도 투여받았다. A환자는 수액을 투여받던 중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의사는 호흡곤란 원인을 천식으로 파악하고, 덱사메타손 5mg을  추가 투여했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호소에 의사는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했다. 

A환자는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의원을 걸어 나와 5분이 지나지 않아 주저앉아 쓰러졌고, 119 구급차로 후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했다. 대학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던 A환자는 약 20개월 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원고측은 "피고가 수액을 투여해 쇼크 및 심정지가 발생했고, 활력징후 측정 등 어떠한 관찰도 하지 않았다. 망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소 투여 및 119 구급대 호출을 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전원하게 했다"면서 "피고의 의무 소홀로 쓰러져 의식불명에 이르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서 1억 8천만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피고의 잘못으로 인해 망인이 사망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망인에게 일어난 악결과에 대한 손해배상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후 조치가 부실했다는 주장도 ▲망인에게 아나필락시스 쇼크 또는 심근경색 등에 의한 심인성 쇼크가 일어났거나 그 징후인 호흡곤란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피고 의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그와 같은 경과를 관찰하는 것 외에는 달리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거나 이를 치료할 인적·물적 시설이 없었던 점 ▲피고 의원에서도 망인을 상급병원에 빠르게 이송하는 조치 외에는 달리 할 수 없었던 점 ▲피고로부터 전원 권고를 받고도 피고 의원에서 약 7분 동안 머물렀는데  그 동안 망인은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고, 부축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지만 걸을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이를 감안하면 망인이 피고 의원에 머무를 당시에는 긴급하게 119에 신고를 하여야 할 상태로는 보이지 않는 점 ▲피고 의원에서 걸어나온 뒤 3분이 지나서 쓰러졌고, 피고가 이를 인식하고 즉시 119에 신고했다 하더라도 이송 시간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인 점 등을 종합하면 여전히 망인에게 같은 결과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고가 망인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때 혈압·맥박·호흡수 등을 측정하지 않았고,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았으며, 택시를 불러 즉시 탑승할 수 있게 하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송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행위는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며 2천만원대 위자료 지급을 명했다. 소송비용 중 2/3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가 각 부담토록 했다.

2심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원고들과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으나, 이때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4다61402 판결, 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8다10562 판결 등 참조)'는 판례를 제시하며 "의료진이 임상의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한 경우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는 의료진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하여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불성실한 진료로 인하여 이미 발생한 정신적 고통이 중대하여 진료 후 신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마땅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망인이 피고 의원에 내원하였다가 주사를 투여 받은 후 전원 권고를 받고 피고 의원을 부축 받아 걸어 나왔다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것처럼 망인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피고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와 달리 판단하여 피고에게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한 뒤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전성훈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 법제이사(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소송 가액이 크지 않은 사건이었고, 1심과 항소심 모두 패소했기에 공제조합에서 상고 여부를 두고 논의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전원 시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도의적 책임 등의 명목으로 일선 의료기관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부당한 관행이 자꾸 쌓여서는 안 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공제회 시절부터 20년 간 지속해서 도움을 준 베테랑 변호사 위원께 부탁을 드렸고, 공제조합 임직원과 합심해 대응한 끝에 손해배상 관행에 관한 판례를 이끌어 냈다"며 "앞으로도 공제조합은 3만 의사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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