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즐길수 있는 게 탭댄스의 큰 장점이죠"
판타지 같은 의학 드라마 속에서 조차 의사들은 밴드 곡 하나를 완주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야 할 정도로 바쁘다. 하물며 현실에서 흉부외과 의사가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여러 취미를 즐기면서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흉부외과 의사가 있다. 진정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살아가고 있는 이성수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이후 아주대병원에서 9년간 근무했는데, 이 교수의 탭댄스 사랑은 이때 처음 시작됐다. 송년회 장기자랑 무대를 위해 처음 탭댄스를 접하게 된 그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운동과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탭댄스에 매료됐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본격적으로 배워 대학 시절 춤을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다. 그 바람은 시간이 흘러 그가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돌아온 이후, 2016년에 마침내 이뤄졌다.
카자흐스탄으로 함께 의료봉사를 간 교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음이 맞는 이들과 병원 내 탭댄스 동아리를 결성하기로 한 것이었다. 동아리 결성 후 5년이 지난 지금, 동아리를 거쳐 간 회원 수가 7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회원들은 수업 받은 탭댄스 학원에서 주최하는 공연에도 매년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안타깝게도 최근 2년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끊임없이 도전해 한 곡씩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신나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춤이라는 점 또한 탭댄스의 큰 장점입니다."
춤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의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대한 사명감도 남다른 그는 지난 2007년, 시모츠마 마사타카의 ‘만화로 보는 수술과 처치’ 번역서를 출간했다. 일본의 의학 서점을 둘러보던 중 복잡한 수술 과정을 알기 쉽게 만화로 풀어낸 책이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없던 스타일의 의학 서적이었고 내용도 좋았기에 꼭 번역해 의대생, 간호대생, 의료종사자 및 의학에 관심 있는 모든 분에게 의학을 쉽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교육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학창 시절 4년 반가량 일본에서 생활했기에 일본어 번역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의 일본어 실력은 흉부외과 수련 이후에 일본 흉부외과의들의 수술법을 배우는 데에도 큰 힘이 됐다.
학창시절 익힌 일본어 실력...2007년 마사타카 '만화로 보는 수술과 처치' 번역
24시간 환자들과 소통하고자 '흉부외과학개론' 유튜브 개설...구독자수 3600명
많은 이들이 의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재작년 동료 의사, 연구원들과 함께 유튜브 채널 '흉부학개론'을 개설해 진료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24시간 환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꾸준하게 영상을 올리다 보니 어느새 구독자 수가 3600명을 훌쩍 넘었다.
최근 대학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불가피하게 환자 개개인에게 진료 시간 내 자세한 설명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긴장한 나머지 미리 준비해온 질문을 하지 못하고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환자들의 뒷모습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환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최근 환자 수 및 수술 건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
"수술 후 회복 시 주의사항 등 치료 과정 전반에 걸친 내용을 모두 채널에 녹여내어 저희 팀만의 차별화된 진료에 대한 치료 성적 및 만족도를 향상하는 것이 ‘흉부학개론’ 채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성수 교수는 본과 4학년 때까지 일반 외과를 지망했었다. 본과 4학년 말 자원해 흉부외과 실습을 돈 후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 폐, 심장과 혈관을 다루는 흉부외과가 진정한 ‘바이탈과’라는 확신이 들어 선택했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의과대학생과 인턴들이 흉부외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막연히 힘들다는 생각에 선택에서 제외해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운 그는 흉부외과의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의사가 되려면 어떤 분야든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흉부외과라고 해서 다른 과보다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사람을 살리는 의사’하면 떠오르는 흉부외과가 가장 매력적인 과가 아닌가요?"
이 교수는 절대 현재 지식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진료 과정에서 모르는 부분이 생길 때는 주저하지 말고 더 잘 아는 이를 찾아가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사들은 언제나 unmet need(미충족 수요: 적합한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지 못한 영역)를 충족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그는 "저는 아직도 외국으로 배우러 다닌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오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의료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창업을 꿈꾼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