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 후배에게 법의학 추천하고 싶냐고요?
백인백색 후배에게 법의학 추천하고 싶냐고요?
  • 조태경 의협신문 명예기자(가톨릭관동의대 본과 3학년) taekz0504@gmail.com
  • 승인 2022.0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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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법의학자 박종필 연세의대 교수
법의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많은 경우 가족의 반대에 부딪힌다. 박종필 연세의대 교수(법의학과)는 "아내의 전적인 신뢰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박 교수는 "법의학은 일 자체가 가진 업무 특성에 따른 매력이 있다"면서 "퇴직하는 그날까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업무적으로 본인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법의학자 박종필 연세의대 교수(법의학과)는 2004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당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의료생활협동조합 등에 관심을 둬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희망했다.

그러나 인턴 근무 중 환자를 보는 것보다는 "남들이 안 하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본과 4학년 때 기초 과목 실습을 돌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부검 참관을 하고 싶어 법의학을 선택했으나 법의학 지도교수들이 모두 대구로 내려가 대량 재해 상황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의사는 병원에서 일하는 것 말고도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 한편에 법의학이 자리하게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병리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시작할 즈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공중보건의 정원이 있어 법의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후 10년 동안 국과수 법의관으로 근무하다 2019년 3월 그는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모교 법의학교실로 돌아왔다. 

Q. 법의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족들과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부모님은 힘든 일인 것 같다며 걱정하시고 재판에 참석해 살인범들과 마주하게 될 텐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결국, 이해해 주셨다. 

반면 친구들은 나를 엉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의료생협 활동을 하거나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에서 의원을 개원하겠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그랬던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커리어에 대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일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가족의 반대로 법의학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바로 아내다. 국과수에서 공보의 근무를 마치고 결혼했을 당시에는 법의관 정원이 없어 기존에 근무하던 법의관이 정년퇴직해야만 지원이 가능했다. 결국, 1년 반 정도 국과수에서 전임 촉탁의라는 계약직 의사로 근무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아내 입장에서는 불안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내는 내게 단 한 번도 불안함을 내색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시체를 검안하고, 검안서를 작성하는 의사가 부검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검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법학 전공자가 아닌 의사들이 할 수 있도록

의대생들의 법의학 교육에 힘을 쏟고 싶어 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Q. 국과수를 떠나 모교로 돌아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나라의 경우 검시는 기본적으로 검사가 책임지고 있다.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일차적인 조사를 한 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판단되면 검사에게 조사 내용을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법의관은 검사가 부검을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부검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체를 검안하고, 검안서를 작성하는 의사가 부검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검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법의학 전공자가 아닌 의사들이 할 수 있도록 의대생들의 법의학 교육에 힘을 쏟고 싶어 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Q. 국과수 법의관과 법의학 교수의 일과는 많이 다른가 궁금하다.
국과수 근무 당시 오전에는 부검을, 오후에는 행정 업무를 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 감정서를 썼다. 

학교에서의 일과는 학기 중일 때와 아닐 때가 다르다. 학기 중에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과 서울과학수사연구소를 오가며 부검을 한다. 부검 후 학교로 돌아오면 강의를 하거나 조교들과 함께 랩 미팅을 하고 그 외 시간에는 감정서를 작성하거나 개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가끔 대한의사협회에서 부검의의 의견 이외에도 다른 법의학자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2차 감정 의뢰가 들어오면 그에 대한 답을 하기도 한다. 또 언론에 사례 보고를 하거나 연구 출장을 다니기도 한다. 

Q. 법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법의병리학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최근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최근에 사인 규명과 관련하여 심근 효소 검사를 사용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본래 심근 효소 검사는 급성 심근경색을 진단하기 위한 바이오마커(biomarker)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바이오마커는 대부분 사후 변화로 인해 그대로 쓸 수 없고, 쓴다 하더라도 새로운 기준치를 정해야 한다. 심근 효소의 주성분도 단백질이기에 사후 변성이 있으며, 12시간 이내에 검사해야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 microRNA를 연구하고 있다. DNA는 사후에도 안정적이지만 RNA는 사후 불안정하여 이를 진단 지표로 쓰기 어렵다. 반면 microRNA는 크기가 작아 상대적으로 사후에도 안정적이고, 포르말린으로 고정된 조직에서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microRNA를 활용하여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진단 기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법의학은 일 자체가 가진 업무 특성에 따른 매력이 있고, 그 일을 하는데 본인이 흥미를 느낀다면 지원했으면 좋겠다. 퇴직하는 그날까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업무적으로 본인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분야다. 

Q. 최근 COVID-19로 인해 의료 현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법의학계에도 COVID-19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 부분이 있는지? 
지난 해 봄, 대한법의학회에서 COVID-19 관련 검안 및 부검 지침을 정리했다. 기본적으로 항원 검사가 가장 적합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길어지기 때문에 PCR 검사 결과 확인 후 국과수 본원(원주)으로 시신을 보낸다. 메르스 사태 이후 국과수 본원에 biosafety level 3에 해당하는 부검실을 만들었다. 확진자 부검은 모두 거기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마다 절차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호 장구를 착용한 뒤 부검을 시행하고 있다. 

Q. 법의학자로서 의미 있었거나 보람을 느낀 순간을 꼽는다면?
지난 2013년 라오스 비행기 추락 사고 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출장을 가게 됐다. 외교부 직원들의 도움으로 3일 안에 가족에게 무사히 시신을 인도해 드렸다. 일반적으로 부검 시에 유족들이 참석하는데 대부분 현장 분위기가 무겁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 라오스에서는 유가족들이 시신을 찾아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해 주셨다. 그때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수사기관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정보는 살인 사건의 경우 사인보다는 시신의 신원 확인 및 흉기에 관한 것이다. 보통 그런 부검 중 열의 아홉은 예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견해 법정에서 증언함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럴 때 내가 도움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종필 연세의대 교수(법의학교실)

Q.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일을 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 시각적인 것이 힘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부검실 안에 들어오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냄새 때문이다. 부패하거나 부패하지 않더라도 시신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나는 다행히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 위 내용물 검사(부검 중 위에 뭐가 들어있고 소화가 얼마나 되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했는데 콩나물과 김치가 나왔다. 부검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 점심 하필 콩나물 김치밥이 나왔다. 그때 딱 한 번 못 먹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비위가 좋아야 하는 것보다는 일이 잘 맞아야 하는 것 같다. 부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은 못 하겠지만, 그러한 스트레스가 없더라도 감정서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일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잘 맞아야 이 일을 할 수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라오스 방문 당시 그 나라에 법의학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신 관리, 신원 확인 그리고 사인 규명에 대한 정보 또한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곳이 라오스뿐만이 아니다. 법의학적 지식이 아직 전 세계적으로 통합됐다고 볼 수 없다. 법의학계는 크게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로 지역이 나뉘어 있는데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조금씩 다르고, 체계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앞으로 법의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EAAF (Equipo Argentino de Antropologia Forense, 아르헨티나 법의학 인류학 팀)은 내부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자 아시아를 포함한 다른 지역의 의문사 사건을 지원하고 있다. 적십자에서도 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은퇴 후 자원해 그러한 활동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Q. 마지막으로 법의학이라는 학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의사로서의 삶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얻게 되는 보람은 매우 크다. 그리고 많은 학생이 의대에 처음 진학할 때부터 그러한 삶을 꿈꾸기 때문에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법의학을 추천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강력하게 추천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법의학을 희망한다면 이러한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법의학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 일 자체가 가진 업무 특성에 따른 매력이 있고, 그 일을 하는데 본인이 흥미를 느낀다면 지원했으면 좋겠다. 아마 퇴직하는 그날까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업무적으로 본인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에 법의학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의과대학에 법의학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디지만 분명 법의학의 저변이 넓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10년에서 15년 후에는 법의학이란 과목이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면, 그만큼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고,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지금보다 법의학계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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