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란트는 모두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눠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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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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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노숙자 무료 진료활동 15년
신학철 신학철피부과의원장

지난주 목요일에도 어김없이 서울역 노숙자를 찾았다. 4월에는 무료진료를 위해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뜻을 지니고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들이 거기에 있기에, 내가 필요하다기에 일상처럼 무료진료에 나선다는 신학철 원장.

그가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펼쳐온 지 벌써 20년을 넘어서고 있다. 서울역 노숙자 무료진료 활동도 어느덧 15년 째.

글·사진 보령제약 사보기자 김지희

 
국군덕정병원장으로 예편한 신학철 원장은 1990년, 군병원과 가까운 상계동 상가 3층에 개원을 했다. 개원한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무렵 피부과 치료를 위해 한 시각장애인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3층 의원까지 찾아 온 그를 생각하니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싶은 마음에 진료비 2000원을 받지 말라고 간호사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그 시각장애인은 버럭 화를 내며 1만원을 던지듯 두고 나가버렸다 한다.

그것이 계기였다. 순간 차갑게 머리를 치고 가는 울림이 있었다. 동정보다는 소외된 이웃을 찾아 내 달란트를 나누어주자 싶었다.

그 시각장애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수락산 자락에 자리잡은 장애인시설이었다고. 그때부터였다. 불편한 몸으로 병원찾기 어려울 터이니 당신이 찾아오겠노라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다.

시각장애인을 진료해주다보니 그 옆에 있는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눈에 들어왔고 가까이 있는 시립노인요양원의 어르신들까지 무료진료하기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료한 것이 꼬박 5년이었다. 본인의 점심은 거르면서 더 많은 환자들의 건강을 살폈다. 한 시간이란 점심시간이 빠듯해 병원 점심시간을 12시 30분으로 앞당기고 소외된 이웃들의 건강을 살폈다. 점차 봉사 활동의 범위도 넓혀갔다.

바쁜 생계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월계동 임대아파트 주민들이며 중계동 철거민 등 직접 찾아다니며 진료를 해주었다.

그래도 그땐 보람이 있었다. 세상 무엇보다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진 그들이 신원장을 반겨주었고 몸에 해가 되는 것을 하지 말라하면 하지 않고 처방을 잘 따라주다 보니 몸이 회복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숙인을 대상으로한 무료진료는 상황이 달랐다.

"의사로서의 보람은 내가 진료한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고 건강을 되찾는 것을 볼 때입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에게서 건강의 호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약을 처방해주면서 제가 그랬죠. 하루 세 번 식후 드시라구요. 그랬더니 노숙자분이 그러더군요.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다행인데 하루 세 번 어떻게 밥을 먹냐구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 그 분들에게는 적용이 안됐던거죠. 그 후부터 이 분들 여건에 맞는 진료를 해야겠다 싶었죠."

노숙인들의 무료진료는 녹록치 않았다. 노숙이라는 생활이 식사를 거르는 게 다반사인데다 한 번 먹을 때 폭식을 하기 십상이어 위장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거기에 술을 마시다보니 간경변 등 간이 좋지 않는 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노숙환경이 좋지 않고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는 그들이기에 신원장이 찾아갈 때마다 증상이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괴감에 빠졌어요. 중증 질환을 앓고있는 노숙인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어요.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 해도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고 의료보험도 받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도움을 줄 방법이 딱히 없었습니다. 진료를 하고 나오면 마음도 영 좋지 않았죠. 그 때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던 아내가 묻더라구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노숙인이 많냐구요. 많지는 않다고, 한 2~3% 된다고 했더니 나머지 98%의 노숙인을 생각하는게 어떻겠냐 했어요."

아내의 말에 또 한 번의 깨달음이 있었다. 100% 모든 이들을 치료해주겠다는 것은 나의 욕심이란 것을. 예수님도 하지 못했던 그 일을 내가 하려 했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변함없이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있는 동안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니…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는 요즈음도 서울역을 찾는다. 15년 전보다 좀 나아진 것이 있다면 추운 지하도 바닥이 아닌 건물 안에서 진료할 수 있는 것이다. 매월 셋째주 목요일 서울역 뒤편에 자리한 '사랑의 등대'를 찾아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신학철 원장에게 봉사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우문인줄 알았으나 한결같이 소외된 이웃을 보듬어 안는 그에게 철학이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습관'처럼 '일상'처럼 봉사가 함께하기에 굳이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진료 손길은 베트남·중국·미얀마·아프리카 등 5대양을 향해있다. 한번은 아프리카 주민을 진료하면서 손을 잡아주고 또 기도를 해주었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따뜻한 인간 대접을 받았다며 감사해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남아, 제3세계 국가의 오지, 산간벽지를 찾아다니며 평생 의료 혜택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단체의 도움없이 순수 자비로 진행하고 있는 해외 의료봉사활동.

▲ 왼쪽 2011년 아이티에서, 오른쪽 2006년 도미니카에서
의사이기에, 또 크리스천이기에 당연한 사명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봉사의 세월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믿고 살아왔다는 신학철 원장. 크리스천으로 늘 바른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그의 표정과 미소는 더없이 평화로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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