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6 17:49 (금)
coverstory 보건연 고유기능과 신뢰회복 힘써라

coverstory 보건연 고유기능과 신뢰회복 힘써라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10.01 12:05
  • 댓글 4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단체들과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려는 태도 아쉬워
의료계 배제한 '관제' 임상진료지침 추진 '난관' 자초

Cover Story

2009년 3월 개원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네카)이 출범한 지 1년 반만에 의료계와 대척점에 놓인 존재가 됐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 관련 법안이 예상보다 빨리 통과되면서 영국의 NICE처럼 안정된 조직을 갖추지 못한 채 '미숙아'로 태어났고, 이를 지나치게 의식해선지 단기적인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네카 본연의 기능에 주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설립 목적과 거리가 먼 임상진료지침 제정사업에 손을 대면서 의료계가 협조하겠다며 내민 손을 뿌리치는 냉정한 행보로 의료계의 신뢰를 잃으면서 힘든 길을 걷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NICE 따라하는데 의료계와의 파트너십은 나이스 하지 않더라"

네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다른 의료계 단체와 상호 협력 및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송명근 건국의전원 교수의 카바수술에 대한 검증과정이다.

송 교수는 6일 네카의 카바수술 최종보고서를 반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비롯해 언론사 등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송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보건연이 과연 필요한 조직인지 의심스럽다"며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네카의 카바수술 안전성·유효성 검증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기 전 두 차례나 언론을 통해 내용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한 심장내과 전문의는 "개인적으로 카바수술 자체에 대해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네카의 업무처리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네카의 절차가 투명했다면 국가기관으로서 송 교수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텐데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있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네카의 최종보고서를 놓고 시술자인 송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과를 발표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거란 얘기다.

연구과제의 우선순위 선정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 네카는 9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에게 약물방출 스텐트 사용을 권장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약물방출 스텐트가 비약물 금속 스텐트에 비해 재시술 위험을 감소시킨 반면 안전성에는 차이가 없고 비용은 120만원정도 비싸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료계 현장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너무 뻔한 결과인데 왜 이걸 굳이 서둘러 연구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 내과 전문의는 "현장에선 90% 이상이 이미 약물방출 스텐트를 쓰고 있다"며 "앞서 외국 저널 논문에 다 나온 얘기"라고 비판했다.

네카가 의료계 단체들을 도외시하고 임상진료지침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야말로 의료계가 네카에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된 결정타로 작용했다. 임상진료지침 제정은 별도의 NSCR(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 업무지만 사업단장을 네카 원장이 겸임하고 있고, 네카가 주관연구기관이며, 사무실도 한 건물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임상진료지침이 생기면 국민건강보험 급여의 '삭감의 칼'로 악용될 것이란 걱정이 많은 상황에서 네카가 의료계의 참여를 거부하면서 강경 기류마저 일고 있다. 실제 임상진료지침을 적용받게 될 교수와 개원의 등의 폭넓은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데 대한 예상된 부작용인 셈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올해 6월 자체적으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기 위해 의학회와 개원가가 참여하는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

"제2의 심평원 되나" 우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하고 있는 진료비 심사업무는 과거에 보험자인 의료보험연합회에서 했다. 2000년 7월 심평원이 설립된 배경은 아무래도 보험자가 직접 심사를 하다보니 보험재정 상황에 따라 의학적 판단이 좌우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평원도 의료계의 바람을 총족시키진 못했다.

네카가 출범할 당시 의료계에서는 민간 의료전문가들의 폭넓은 참여 속에 근거 중심의 경제성 평가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특히 뛰어난 임상의사이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비롯해 몇몇 의료현안에 뚜렷한 소신을 보여온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가 네카 원장에 임명되면서 더욱 그런 꿈에 부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네카가 NSCR 사업단 업무를 맡는 과정에서 의료계의 참여를 봉쇄하자 의료계는 NSCR이 '관제' 임상진료지침을 만들어 또 다른 진료규제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의협은 범의료계 차원에서 '의료계 중심의 임상진료지침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9월 설명회까지 열었다.

앞으로 네카가 의료계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NSCR에서 임상진료지침을 만든다 해도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임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지침 개발에 정부 예산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다른 기관 사업과 중복 심해 

네카의 활동에 대해 또 하나 많이 제기되는 비판은 불명확한 업무 성격 때문에 다른 기관과 중복되는 사업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네카에서 2년째 하고 있는 '연구주제 수요조사'의 경우 지나치게 광범위한 의견조사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R&D 주관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을 비롯해 주요 정책연구에 대한 공고와 모집이 복지부 산하 각 기관별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광범위한 기술수요 조사를 통해 사업화하는 것은 네카 기능상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기술수요 조사에서 네카의 고유 역할과 연관된 주제에 한정하지 않음으로써 조사에서 제안되거나 채택된 주제들 가운데 다른 기관 사업과 중복된 예들이 있다"며 "이는 네카의 위상에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카가 하고 있는 '공익적 임상연구' 역시 보건산업진흥원의 기존 보건의료기술 R&D나 국립암센터의 암정복 연구과제,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의 연구과제 등과 겹칠 가능성이 많다. 이는 네카가 전략목표로 '보건의료분야의 사회적 의제 도출 및 정책 제시' 등 다른 정부 산하기관의 사업을 아우를 만큼 포괄적이고 모호한 내용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임상진료지침 놓고 의료계와 갈등 

임상진료지침을 둘러싼 의료계와 네카와의 갈등은 지난해 12월 NSCR 사업단장 공고를 낸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이전의 임상진료지침 연구사업은 정부 주도와 의학회 주도 등 두 가지가 있었다.

정부의 임상진료지침 연구사업은 2004년부터 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의 지원으로 시작됐고, 대학병원 센터와 몇몇 연구자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복지부 의료정책과의 지원을 받는 대한의학회의 지침 연구는 학회 차원에서 개원의들의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2006년부터 진행돼 왔다.

200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임상진료지침 연구사업이 의학회의 사업과 중복되고 지침 개발이 부진하다는 점 등이 지적되면서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NSCR이 발족하게 됐다.

정부의 임상진료지침 사업은 임상연구센터 11곳과 진료지침 보급 및 평가를 담당하는 '임상연구지원센터' 과제로 구성돼 있었다.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3월 NSCR 사업단의 임상진료지침이 진료현장과의 긴밀한 연계가 전제돼야 수용 가능성이 제고될 수 있다며 의료계와의 파트너십 확보를 위해 의협이 추천하는 의료전문가를 임상연구지원센터장에 임명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임상연구지원센터를 '연구과제' 방식에서 NSCR '사업단'의 업무 형태로 전환하고, 의협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사업단 내 보직으로 임용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의협이 애초에 임상연구지원센터장 추천권을 요구한 이유는 의료계가 중시하는 진료지침 검토·평가·보급 기능을 하는 연구과제이기 때문에 연구책임자 선정 권한을 받으면 독립적인 사업으로 수주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제안은 이러한 기능을 NSCR사업단의 조직업무로 흡수하면서 의협 추천인사를 NSCR의 한 구성원 자격으로 수용하겠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고 봤다.

질병관리본부와도 불편한 관계

질병관리본부와는 임상연구지원센터 재계약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2년 전 임상연구지원센터 과제를 발주했을 당시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의 지원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연구지원센터를 맡게 됐다.

그러나 최근 임상연구지원센터 과제를 놓고 기존의 보건산업진흥원에서 NSCR 사업단으로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네카가 임상연구지원센터 과제 내용 전부를 가져가겠다고 함에 따라 질병관리본부 측은 역학연구 등 자신의 기능과 관련된 영역으로 개발해온 사업영역을 두고 네카와 갈등을 겪으며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네카가 'R&D'나 '근거'가 들어가는 사업은 모두 독점하려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는 카바수술 검증과정에서 대립했다. 심평원은 네카와 달리 송명근 교수가 카바수술을 계속하기 위해 별도로 IRB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네카는 심평원이 카바수술을 '연구'가 아니라 '진료'로 간주해 IRB 승인이 불필요하다고 해석하고, 이를 카바수술 실무위원회에 토의사항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한 것은 그동안 네카가 수행한 연구의 기반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불쾌해했다.

네카는 필요하나 변화 필요

의료계는 네카와의 껄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네카가 필요한 조직이라는 데엔 큰 이견이 없다. 실제 네카는 짧은 기간에 태반주사나 글루코사민 등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다만 네카가 자신만의 주관적인 소신에 갇혀 외부와의 소통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느끼도록 하는게 문제점이다.

네카의 영문이름(National Evidence-based Healthcare Collaborating Agency)에는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국내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collaborating)' 국가기관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당초 보건의료연구원이란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평가원'이 기관 성격에 보다 적합하지만 심의기구 같은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연구원'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 이름에는 없는 '협력'이란 단어를 영문 이름에 넣은 점에서 네카 설립 단계에 참여한 인사들이 네카의 '협력'을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인사들 가운데 아직까지 네카에 계속 남아 있는 전문가는 몇명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계에서는 네카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의협·의학회 등 의료계 다른 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영국의 NICE나 미국의 AHRQ도 의료계와의 상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의료계 단체들과 협조가 안 되면 네카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네카가 정말 필요한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경제성 및 신의료기술 평가와 같은 고유 기능을 키워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의료계와 개방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긴밀한 협조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신문은 네카 측에 기사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해명을 듣기 위해 허대석 원장에게 9월 16일부터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마감일인 9월 30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