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6 13:13 (금)
"서울대가 복귀하니까 우리도? 쪽팔린다"

"서울대가 복귀하니까 우리도? 쪽팔린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0.08.31 12:07
  • 댓글 3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의대 '의전원 공청회' 교수들 난상토론
"대세 따라야" 복귀론 우세...대학 결정에 촉각

30일 오후 6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톨릭의전원 교수를 비롯한 교원 100여명이 병원 지하 1층 대강당을 메웠다. 이 날은 의대 학제를 의학전문대학원(4+4), 혹은 기존의 의과대학(2+4) 중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를 놓고 교수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의사양성학제를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하고, 오는 10월 22일까지 학제를 선택토록 함에 따라 가톨릭대학 당국이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 것.

의전원과 의대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주제발표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차분했던 공청회 분위기는 자유 발언 시간이 되자 치열한 설전으로 긴장감이 팽배했다. 교수들이 거침없이 쏟아낸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는 뼈와 가시가 돋혀 있었다.

"우리만 의전원 가면 학생 수준 형편없을 것"
교수들은 우수 학생의 선발, 기초 교육의 중요성 등을 놓고 집중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병리학과의 P 교수는 "지난해 우리대학 의학과 1학년생들은 수능 평균 상위 0.3% 이내였고, 의학전문대학원생은 11%였다"며 "의과대학은 전국 상위 600등 안에 드는 학생을 뽑는 제도이고, 의전원은 2만 등 안에 드는 학생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의과대학 학제가 훨씬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산부인과 P교수도 "세계적인 하버드 의대, 존스홉킨스 의대는 극도의 우수한 학생만 뽑기 때문에 노벨상 타는 사람이 나오고. 그 들이 세계 의료계를 이끈다"며 "상위 10~15% 학생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들이 모두 의대로 복귀하는데, 가톨릭대학만 '나 홀로' 의전원 체제를 고수할 경우 신입생 선발에 심각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K 교수(생화학)는 "모든 대학들이 4+4 체제로 바뀌면 우수한 학생들이 우리 학교를 지원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대학들은 2+4 인데, 우리만 4+4 라면? 나라도 우리 대학에 안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사편입을 통해 의과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MEET 시험을 봐서 의전원에 가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나온 학생이 제정신이 아닌 이상 MEET 시험을 보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수한 학생은 모두 학사편입으로 들어가고, 형편없는 학생들만 (의전원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호나우두는 골 잘 넣는데 박지성은 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우수한 인재 양성은 학생선발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J교수(생화학)는 "의전원 신입생 가운데 카이스트 출신이 10명이 넘었다"며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의전원에 지원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J교수는 "최우수 고교생을 선발했다고 해서 그들이 최고의 의료인으로 양성되었나?"라고 묻고 "지금까지 의과대학이 리더로서의 소양을 갖춘 학생을 양성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전원 제도에 찬성하는 교수들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화학과의 한 교수는 "전 세계 바이오메디컬 논문의 60%가 미국에서 나온다"며 "미국은 4+4 학제도 모자라서, 하버드·존스홉킨스·스탠포드 등 미국의 메이저 의대를 가려면 4년제 자연계 대학을 졸업하고, 실험실에서 1~2년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병리학과의 L교수도 "의과대학이 41개나 되는데 왜 한국 의사들은 네이쳐나 사이언스에 논문 한 편 못내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면서 "그 이유는 군대 3년,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연구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너무 늦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4학제도도 늦는 판국에 4+4학제는 더 늦어진다는 것.

졸업생 90%가 개원...기초과학이 무슨 소용?
J교수(외과)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축구에 빗대어 역설,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박지성과 호나우두가 포지션이 똑 같은데, 왜 호나우두는 골을 잘 넣고 박지성은 못 넣을까?"라며 "바로 기본기의 차이다. 의전원의 기본은 '기초지식'이다. 기초의학이 탄탄한 것이 문제가 될 순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논리에 대한 반박도 매서웠다. 의전원의 장점으로 꼽히는 '탄탄한 기초과학'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장내과의 S교수는 "기초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의학교육을 받으면 나중에 더 좋은 연구를 하고 노벨상을 받을까?"라며 반문하고 "현실적으로 졸업생의 10% 정도만 대학에 남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개원 의사의 길을 걷는 90%에게는 기초과학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전원을 지원하는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애초부터 높은 기초과학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교수는 "이공계 들어가는 학생들은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처음부터 MEET를 준비한다. 심지어 4학년이 되면 도서관에서 그 공부만 한다"며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의전원생들의 기초의학의 '질'은 미국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대세는 따라야" VS "더 지켜 보자"
'대세론'과 '신중론'의 충돌은 이날 공청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Y 교수(신장내과)는 "의전원을 맨 먼저 주창했던 의대들이 먼저 발을 뺐다. 우리도 빨리 빼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전원 체제를 주도했던 서울대·연세대 등이 최근 의과대학 복귀를 결정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교수는 "의전원으로 가면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이라며 "대세에 편승하지 못하고 의전원을 고집할 경우 앞으로 '서울성모병원'은 가톨릭의대 출신이 아닌, 다른 대학 출신들의 차지가 돼버릴 것"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여교수는 "예과 교육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4+4 학제를 문제 해결의 좋은 방안으로 선택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서울대, 연세대가 (의대 체제로) 돌아간다니까 우리도 가야한다는 주장은 너무 쪽팔린 이야기"라고 복귀론을 거칠게 비난했다.

그는 "의전원 도입한지 2년 밖에 안됐다. 아직 실패를 이야기 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기일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귀론' 우세하지만 교수들은 '불안'
이날 공청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의대 복귀론'이 우세했다. 그런데 참석한 교수들의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교수들의 입장이 곧장 대학의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대 복귀에 수반되는 재정적인 부담이 대학의 학제 결정에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교수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생화학교실의 J교수에 따르면 가톨릭의전원이 의과대학 체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의예과 복원을 위해 교수 10명을 더 뽑아야 한다. 이밖에 강의실·실습실·연구실을 확충해야 하고 예과 1~2학년생의 최소 25%에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

반면 의전원은 국가재정지원 사업, BK21 사업, MD/PhD 사업 등으로 1년에 10억원 이상을 지원받을 수 있다. 순전히 재정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대학 당국의 결정은 사실상 결론 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급기야 공청회 말미에 한 여 교수는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는가?"라며 의무부총장·학장 등 보직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물었다. 대학측이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공청회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항의성 요구였다. 이에 대해 "교수들의 의견을 최대한 참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가톨릭의료원장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다"
교수들의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이동익 가톨릭중앙의료원장(신부)은 "의대 학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대학내에 퍼지고 있는 '음모론'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의료원장이 4+4제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당동(※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의미)에 사시는 신부님들이 다 결정해 놓고, 공청회는 요식행위라는 말도 들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사제의 양심으로 분명히 말하건데, 사제관 신부 17명 중 어느 누구와도 이 문제를 놓고 상의해 본 적 없다"며 "어째서 '카더라'하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선 교수들의 의견을 충실히 듣기만 할 것"이라며 "적절한 시점에 이사회에 상정할 의료원의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청회는 비단 가톨릭의전원 뿐만 아니라 의전원 체제로 전향했다 다시 의대로 회귀하는 혼란 속에서 일선 의대 교수들이 품고 있는 의중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을 병행하고 있는 곳은 고려대·동국대·동아대·서울대·성균관대·아주대·연세대·영남대·전남대·중앙대·충북대·한양대 등 12개 대학. 이들 가운데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의대 등 거의 모든 대학들이 의대 복귀 쪽으로 방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이 어느 쪽으로 최종 결론을 도출하든, 교수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가에 따라 의대 학제를 둘러싼 대학 내부의 갈등 수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