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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낙태, 의사 책임만 물을 수 없다"

법원 "낙태, 의사 책임만 물을 수 없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0.06.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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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용인' 현실 반영한 판결 잇달아...기소유예·집행유예·감형 등

낙태죄로 기소된 의사에게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형법 규정이 이미 사문화됐다는 방증이다.

부산지방법원 서경희 판사는 지난 5월 25일 임신 7주된 태아를 낙태시켜 달라는 촉탁을 받고 낙태를 실시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A씨에 대해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판결 후 2년 기간 동안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형법 제270조는 의사·한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토록 하고 있다. 이같이 엄격한 처벌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고유예라는 사실상 '무죄 선고'가 내려진 까닭은 무엇일까?

서 판사는 판결문에서 "의사의 촉탁낙태 행위는 부녀의 낙태행위 보다 더 중한 처벌을 내리도록 규정한 형법 정신에 비추어 피고의 범행의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서 판사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절대적 보호 의견과 함께 임신 초기 태아의 낙태와 관련한 부녀의 권리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경제적 사유 등에 따른 여성의 낙태권에 대한 옹호론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의미다.

특히 "그동안 낙태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공권력의 처벌의지가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경험적 사실에 기초한 형평성의 문제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낙태죄에 대한 일선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0월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강을환 부장판사)는 임신 31주째 태아를 낙태수술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산부인과 의사 B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형의 선고 유예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강 판사 역시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낙태행위를 금지하는 형법정신에 비춰 범행이 가볍다고 할 수 없고 비교적 쉽게 낙태 시술을 결정·시행한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을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도 "사실상 낙태가 용인되는 사회분위기상 피고인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2008년도에도 원심의 형량을 크게 낮추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2008년 12월 임신 7개월인 산모의 부탁을 받고 낙태를 시행한 의사 C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원심 형량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자격정지 1년이었다. 이 재판부도 마찬가지로 "죄질이 무겁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분위기상 낙태가 사실상 허용되고 있는 만큼 책임을 의사에게만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낙태죄를 바라보는 사법부의 일관된 시각은 현재 사회적 합의가 진행 중인 관련 법 개정 논의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괴리된 형법 조항을 폐지하고, 모자보건법상 낙태의 허용범위도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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