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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들여다 보며 아련한 추억을 반추한다"

"접시를 들여다 보며 아련한 추억을 반추한다"

  • 편만섭 기자 pyunms@kma.org
  • 승인 2008.07.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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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래(서울 강동구 성누가산부인과)

개원가가 그런대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20여년 전쯤만 해도 정 원장은 여의사 두명을 두고 의원을 꾸려 나갔다. 의사가 세명이나 되니 혼자서 하는 것 보다야 좀 편한 맛이 있어야 하는 것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두명 다 여의사다 보니 여기 저기 걸리는 게 많았다.

특히 너무 늦게까지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허구 한날 밤낮 없이 병원을 지켜야 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당시만 해도 한달 분만 건수가 70∼80건 정도는 됐으니까. 이게 아니다 싶었다. 과감하게 일상에서 탈출하기로 맘 먹었다. 일년에 한두번 쯤 2주에서 4주 정도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첫 여행지가 미국이었고 그 곳에서 접시 수집에 심취해 있던 이민 간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해서 접시 수집이 시작됐다.

"왜 하필 접시냐구요. 예술적인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각 나라의 접시를 들여보고 있노라면 여행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곤해 일상의 스트레스가 풀리곤 합니다"

정 원장은 접시 한장을 고르더라도 꼭 그 곳을 알 수 있는 지명이나 상징물이 새겨져 있는 것만 고른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추억을 되살리기 쉽기 때문이란다.

"아직 정확하게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접시와 컵이 어림 잡아 1만개는 될 겁니다. 국내에서 개인이 이만큼 갖고 있다는 얘긴 아직 못 들었습니다"

병원 3층에 있는 살림집에 들어 서니 빈자리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벽이란 벽은 모두 접시가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했는데 이제는 이 놈들한테 발목이 잡혀 아파트로 이사도 못갑니다. 이 접시를 다 전시해 놓을만한 아파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끝까지 이곳에 눌러 앉아 있을 수 밖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매우 뿌듯하다는 표정이다.

수 없이 많은 접시를 수집했으면서도 유독 애착이 가는 것이 있기 마련. 핀란드 헬싱키에서 구입한 대형 접시가 그렇다. 그 접시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모스크바 바실리크성당이 새겨져 있었다.

혼자 벽에 걸어 두고 보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동료 의사에게라도 보여줄 요량으로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옥상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 그만 바람 때문에 애지중지하던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고 말았다.(정 원장은 사진촬영에도 일가견이 있다. 주위에서 아마츄어 수준을 벗어 났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정 원장이 오랜동안 접시를 수집해 오면서  실수로 깨버린 건 단 두장. 한장은 접착제로 붙여 지금도 전시해 놓고 있지만 핀랜드제 접시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려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제가 갖고 있는 접시중에 가장 큰 겁니다. 귀국할때 가방에 들어가지 않아 세워서 가져 올 정도로 정성을 들였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새 정 원장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요즘은 심심치 않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 온다. 그러나 이사람 저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아 왠만하면 사양한다. 며칠전에도 신문사에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곧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어렵겠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을 했다고 귀뜸했다.

스위스를 여행할 때의 일.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로 알려진 '뮤렌'이란 동네를 지나가다 맘에 드는 접시 한장이 눈에 들어 왔다. 단체여행길이었기에 대열에서 이탈할 수 없어 일단 눈도장만 찍고 지나쳤다.

그러나 아뿔싸 돌아 올 때 보니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접시를 사러 다시 스위스를 올 수도 없는 일. 다음 행선지로 떠날 기차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데 마침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 가게 문이 다시 열리는 바람에 허겁지겁 가까스로 접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접시를 갖고 돌아오다 공항에서 짐 검사를 받기도 한두번이 아닐 정도로 접시에 얽힌 에피소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터어키는 도무지 아닌 것 같고, 남미는 약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이집트나 유럽은 괜찮은 편이죠" 접시를 수집하다 보면 그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엿볼 수 있다는 정병례 원장은 "오랜동안 접시를 수집하다 보니 각국의 도자기문화 수준을 어느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며칠 있으면 떠나게 될 발틱 3국에 대한 기대에 벌써부터 한껏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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