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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발명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발명가'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8.07.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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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기획이사 서울의과학연구소)

WHO 사무총장을지낸 고 이종욱 박사도 아니고, 서울의대 학장을 역임한 이종욱 명예교수도 아니지만 발명계에선 '이종욱'하면 앞서 언급한 이들 못지않은 지명도가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 배리 마셜 박사조차 이종욱 서울의과학연구소 기획이사(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에게 한 수 양보할 정도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검출하기 위해 CLO 테스트를 하게 됩니다. 배리 마셜 박사가 처음 시약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석권했는데 나중에 제가 CLO 테스트 시약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가격을 1/3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배리 마셜 박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낮은 가격으로 정확도 높은 검사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요."

의사이자 발명가로 이름난 이종욱 기획이사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발명품으로 의사와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는데 기여해 왔다. 종근당에서 판매를 맡고 있는 CLO 테스트 시약은 수년째 독점하다시피했던 마셜 박사의 수입 시약을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배수환 인하대병원장 밑에서 전임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배 원장님은 뭐든지 직접 겪어보게 하고, 토론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사람과 사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권오헌·김현숙·이경원·김현옥 연세의대 교수를 비롯해 조한익 서울의대 교수 등도 이 기획이사의 각별한  탐구심에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마셜 박사도 두 손들어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다 보니 채혈실에서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피 뽑는게 겁이나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는 발명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죠."

 그래서 착수한 것이 울지 않는 아이들만 골라서 만든 동영상 모음집. 동영상을 보여주자 거짓말처럼 채혈실에서 아이의 울음이 뚝 그쳤다. 남자 아이는 씩씩한 로봇트 태권브이가, 여자 아이는 항상 밝은 캔디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로보트 태권브이나 캔디를 모르는 4살 미만의 아이에게는 동영상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지혈대에 아이가 좋아하는 원숭이·토끼·병아리 인형을 붙이게 됐습니다. 지금도 몇몇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동물 지혈대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합니다."

이 기획이사는 틈틈이 환자의 불편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한다. 잠시 동안 몸이 아파 입원을 하고 있을 때 생각해 낸 것이 '휴대용 수액가방'.

"수액병을 들고 화장실을 오가며 이렇게 불편한 받침대를 매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휴대용 수액가방'입니다. 가방에 인공장치를 부착해 수액이 자동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한 가방입니다."

밤 마다 가방을 뜯어보고 바느질을 다시 하는 일이 반복됐다. 특허청 실용신안 특허를 받기까지 가방을 뜯었다 붙였다 하는 일이 수없이 계속됐다.

"말 없이 남편 옆에서 바느질하고, 이리저리 특허내러 다니느라 아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이 기획이사가 가장 아끼는 발명품으로 수액가방을 꼽는 이유는 아내를 고생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발명을 하면서 숱한 좌절을 겪기도 했다는 이 기획이사는 환자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 수가를 받지 못해 사라져야 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가장 아끼는 발명품 '휴대용 수액가방'

이 기획이사는 최근 진단검사장비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멘스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멘스는 CBC 장비인 'ADVIA'에 패혈증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DN(Delta Neutrophil)지표를 장착한 'ADVIA2120'을 내년부터 생산키로 했다고 밝혀왔다. DN지표는 이 기획이사가 특허출원한 패혈증 진단법.

"지금까지 패혈증은 38℃ 이상의 고열과 1만 2000∼1만 4000 미만의 백혈구 수치·X-선 촬영에서 나타나는 폐렴 등 10여가지 증상을 확인한 후에야 진단할 수 있어 2∼3일이 걸렸습니다. 진단기간이 길다보니 치료기간을 놓쳐 패혈증으로 진행하거나 일부 패혈증 환자는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ADVIA2120'에 장착되는 DN지표는 환자의 패혈증 진행여부를 30초만에 판별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증도까지 파악할 수 있어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획이사는 건양의대에 몸담고 있을 때 환자를 구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DN지표를 이용해 15명의 중환자가 패혈증이라는 진단을 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임상의사들이 패혈증 조기발견 기술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환자들은 정상 혈장을 투입해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죠."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하나로의료재단 부설 서울의과학연구소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이 기획이사는 요즘도 틈틈이 환자를 위한 발명품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완성 단계에 있는 '기침을 멎게하는 마스크'는 수익금이 발생할 경우 불우이웃을 돕는 기금이나 장학금으로 내놓을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이 기획이사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며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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