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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과 희생만큼 열매를 거둔다"

"정성과 희생만큼 열매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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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1.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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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일 회원(인천 세일정형외과의원장)

<강수일 회원>

이름

강수일(53)

소속

인천 세일정형외과의원장

경력

1978

연세의대 졸업

 

1983

연세의료원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 수료

 

1986~1990

인천기독병원 정형외과장

 

1990~

인천 세일정형외과 개원

 

1997~1999

인천광역시 서구의사회장

 

2006~

대한정형외과학회 인천지회장

 

 

대한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인천지회장

"솔선수범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김현숙 회원(연세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모름지기 의사칭찬릴레이의 주인공이 되려면 마음이 따뜻하고 남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수일 원장은 그런 사람입니다.
동기동창으로 오랜 시간 봐 왔는데, 환자한테도 잘하고 선후배 관계도 돈독해 두루두루 인기가 많은 친구입니다. 발이 넓고 친화적인 성격이다 보니 동기회장부터 시작해서 인천시 서구의사회장, 정형외과학회 인천지회장 등 조직의 리더로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또 성격 뿐 아니라 업무 처리 능력도 뛰어나 무언가 일을 맡기면 깔끔하게 해결하니까 리더 역할을 맡기지 않을 수가 없죠. 크게 돈이 되거나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 시간과 노력을 쪼개 항상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솔선수범, 바로 강 원장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죠.

그런데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강수일 원장은 각종 대표를 두루 지냈다. 동기회장부터 해서 인천시 서구의사회장·대한정형외과학회 인천지회장 등등. 그것이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원래 학생회장보다 학급반장이 더 잔 일이 많고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므로 내가 집요하게 물어야 할 것은 한 가지였다. 왜? 어떻게? 손을 들었냐 이거다.

"어떤 조직에서든 한 번 발을 들여 놓게 되면 계속해서 더 큰 일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소한 위원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총무가, 부회장이, 그러다가 어느날 회장이 되어 있는 거죠. 아무래도 겪어본 사람이 많이 안다고, 조직 업무를 잘 아니까 스스로 익숙하기도 하고 남이 봤을 때도 믿음이 갈테고요."

강 원장은 "선배들이 귀여워해주고 후배에게는 너그러운" 전형적인 마당발형이다. 대인관계 원만하고 친화적인 사람은 어딜가나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각광받는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셋 만 모여도 접시가 깨지는 세상인데,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대표로 밀어주려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힘들지 않겠나. 넓은 인맥만으로는 부족한 2%를 채우는 것은 '희생'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남들보다 조금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겠죠. 뭘 맡으면 최대한 끝까지 성심껏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일단 빠짐없이 참석하고 관심을 갖다보면, 소속감이 생기고 왜 우리 조직이 필요한지도 알게되고요. 그러다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열심히 하다보면 남들이 좋게 봐주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회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환자를 보다말고 후다닥 달려갔다 돌아오는 일이 숱했고, 짬짬이 회원들에게 안부를 묻느라 언제나 전화통 붙들고 살았다. 이게 다 '정성'이고 동시에 '노하우'다. 지역의사회장 6년쯤 하니까 서서히 지쳐가더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평소에 회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쌓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모임이 있다고 칩시다. 개원하고 있자면 바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도록 시켜도 별 탈이야 없겠지만, 내가 직접 전화해서 정성을 들이고 관심을 보이면 회원들의 시선도 달라집니다. 한 번 해서 안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하는 거죠. 자꾸 대화를 해야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어려운 점도 살피게 됩니다. 자기가 희생한만큼 열매를 맺는달까요."

2001년 인천시의사회로부터 받은 공로패와 2002년 대한의사협회로부터 받은 표창패 등 수많은 공로·감사패가 자랑스럽게 진료실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의약분업 투쟁에서 수훈갑으로 활약한 증거다. 당시 인천시 서구의사회장을 맡고 있었던 강 원장이 긴밀한 연락망과 형·동생 할 정도로 돈독한 의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회원 단결에 큰 몫을 했던 것이다.

"아마 그때처럼 의사회가 활발하게 활동한 적이 없을 걸요. 허구헌날 회의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곁에서 도와줬죠. 요즘 의사사회가 위축돼 있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예전에는 모임을 한 번 해도 화기애애한 맛이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들 어려우니까 소주 한 잔에 신세한탄이나 안주로 삼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다시 선생님이 나설 때인가보다"란 반강제의 권유를 강 원장이 거듭 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조용히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서고 싶다는 이유인데, 사실 그 역할은 이미 2000년부터 시작됐다. 2000년부터 그는 매년 여름방학을 전후해 의료선교활동을 떠난다. 처음은 몽골로 갔지만, 2004년부터는 보다 환경이 열악한 우즈베키스탄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먼지가 폴폴 날리고 누운 자리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오지에서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얻는 보람과 소중한 경험은 무엇과 비할 수 없단다.

"지금 맡고 있는 일들에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의료선교활동에 계속 집중할까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일들은 이제 후배들에게 넘겨야죠. 아무리 세상이 어렵다고 해도 저는 사람들을 믿어요. 의료 사회주의적인 정책으로 안팎으로 힘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의 없는 진료의 질을 자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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