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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박사의 클래식음악 산책]<2>

[이종구 박사의 클래식음악 산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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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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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구(이종구 심장크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적으로 모차르트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관심이 다시한번 고조되고 있다.

모차르트는 역사상 가장 천재적이며 인기 있는 작곡가였다. 많은 사람들은 베토벤을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뽑지만 그의 음악을 하루 종일 즐겨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언제나 어디서 들어도 우리를 즐겁고 상쾌하게 해준다. 그의 음반이 클래식 음악의 장르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의 부친 레오폴트(1719∼1789)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교사였으며 잘츠부르크 궁전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모차르트와 그의 누이 난넬의 음악 인생을 위해 자신의 음악생애를 희생한 사람이다.

난넬의 회고록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놀기를 좋아했고 5살이 채 되기도 전에 스케르초와 미뉴에트 곡들을 단 30분에 습득했고 6살 때는 최초의 미뉴에트를 작곡하는가 하면 9살 때는 심포니를 처음으로 작곡하였고 12살에는 최초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일찍이 아들의 천재성을 깨달은 아버지는 작은 잘츠부르크의 경계를 넘어 전 유럽에 모차르트를 알릴 목적으로 1762년 9월에 다뉴브 강을 통해 비엔나로 가는 도중 린쯔에서 대중을 상대로 첫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을 본 오스트로 헝가리 제국의 재무장관은 황제 요셉 2세에게 이 천재적인 두 아이들의 소식을 전한다. 비엔나 부두에 도착한 후 통관절차가 지연되자 여섯 살의 모차르트는 바이올린을 꺼내 즉흥적으로 미뉴에트를 연주하였고 이것에 감탄한 세관직원은 즉시 통관절차를 끝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해 10월 모차르트 남매는 궁전에서 공연을 하고 공연이 끝난 후 모차르트는 황후의 무릎위에 올라앉아 황후의 목을 껴안고 마음껏 키스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갑자기 이 두 아이는 비엔나의 천재 명사가 되었고 귀족들로부터 콘서트를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으며 하루에도 두번씩 연주를 했다. 물론 아버지는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때 모차르트는 열과 반점을 동반하는 성홍열(scarlet fever) 또는 결절성 홍반(erythema nodosum)에 걸리는데 이 병이 29년 후에 사망을 초래하는 병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 12월 31일 모차르트 일가는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새 마차를 구입하고 5일 후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이때 모차르트는 다시 류마티스열에 걸리며 관절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며 1주일간 누워있었다. 이 병은 rheumatic fever였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비엔나를 방문 중 프랑스대사로부터 베르사유궁전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은 바 있다. 그리하여 모차르트 일가는 1763년 6월 9일 파리를 향해 긴 여정을 떠나고 드디어 11월 18일 파리에 도착하였다. 이 여행 중 모차르트는 뮌헨과 만하임 등 여러 도시의 궁전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모차르트는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파리에서 11살의 난넬과 7살이 채 안된 모차르트의 연주를 보고 신문은 이 둘을 신동이라고 극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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