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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성감별 금지법 여전…"시대에 뒤떨어진 법 위헌"

태아 성감별 금지법 여전…"시대에 뒤떨어진 법 위헌"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3.08.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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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제20조 헌법소원 "남아선호·성비 불균형, 이젠 사회 문제 아냐"
태아 성감별 이전 임신중절 97.7%…고위험임신 X염색체 질환도 고려해야

ⓒ의협신문
[사진=freepik, prostooleh] ⓒ의협신문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 감별을 금지하는 법이 다시 헌법재판 도마에 올랐다. 의료계는 현실에 동떨어진 법은 '위헌'이라며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 감별 금지법은 남아 선호사상에 따른 성 선별적 출산과 성비 불균형이 심화하자, 1987년 의료법 제20조 제2항에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 또는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임부와 임부의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2005년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확인,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자격정지 6월 처분을 받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7월 31일 "인공임신 중지가 의학적으로 어려운 임신 후반기까지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부모의 태아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아니할 권리를 침해한다"면서 해당 조문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2009년 의료법을 개정, 임신 후반기인 32주 후부터 태아 성별 고지를 허용하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1년 면허자격정지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완화했다. 

2019년에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재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019년 4월 11일 형법 제269조 1항, 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산부인과 의사가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3명(단순위헌)·2명(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으나 현재까지 법률 개정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헌재는 지난해 3월과 올해 2월 태아성감별금지 조항과 관련해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대한의사협회에 의견조회를 요청했다.

의협은 남아 선호사상이 사라져 남녀 출생 성비가 자연성비로 유지되고 있어 성 감별 금지조항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32주' 규제는 국민의 기본권 제한과 관련된 사항을 명확한 의학적 근거 없이 결정한 것으로 사료돼 근본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며 "개정 이후 14년이 경과하며 우리나라 사회 환경 또한 급변, 태아 성 감별에 허용 가능 임신주수를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짚었다.

의협은 "고위험임신이 증가하면서 X염색체 의존성 질환 등 유전질환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태아 성 감별이 의학적으로 필요하다"며 폐지(위헌 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심판(의료법 제20조제2항) 관련 의견조회 의견을 통해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그 사전행위인 태아 성 감별금지법의 존재는 모순"이라면서 "시대의 변화에 입법목적이 상실되고, 위법 여부가 모호하며, 현재적 의의를 잃은 태아 성감 금지법은 폐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출생 성비 변화 양상에 대해서도 "총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수)가 가장 높은 해에도 첫째아 출생성비는 대체로 자연성비에 가까웠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과거에도 첫째아 출산에는 성선별 출산행위가 많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셋째아 이상 자녀의 성비에서 불균형이 심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셋째아 이후 남아 출산이 주요했다고 추정할 수 있으나 2014년 이후에는 셋째아 이상 자녀도 자연성비 범위에 도달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출산순서에 관계없이 자녀 성별에 따른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법리적 모순도 짚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현실적으로 태아의 성별 확인은 의료인의 이익이 아닌 부모의 희망에 따른 것으로, 부모의 요구에 의료인이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의료인에게만 위반을 적용한다. 기존의 낙태죄와 비교하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임부가 태아의 초음파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불특정 인물로부터 성별 정보를 얻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의료인이 아니기에 어떤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꼬집었다. 

(가칭)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구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비현실적 의료법 규정으로 인해 의사가 협박 또는 고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산모와 가족들이 출산준비와 태교를 위해 태아의 성을 미리 알려고 하는 욕구가 강한데, 알려주지 않았을 경우 진료 중에 항의가 많다"며 고충을 전했다.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과거엔 남아 선호로 태아 성감별이 사회적 문제가 됐으나 현재는 더 이상 아니다. 태아가 딸이라고 낙태 우려가 있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으로, 임부의 알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성별 고지 금지와 위반 시 처벌규정은 의료인 직업수행의 자유와 동시에 태아 부모의 태아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임신주차 '32주' 기준에 대해서도 "32주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데도 32주 이전은 일률적으로 처벌하고 32주부터는 합법이라는 절대성에 객관적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의학의 발달로 25주 이후 태아는 모체 밖에서도 생명력이 있는 시기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 신생아 집중치료실 입원 신생아 중 27주 출산 신생아의 생존율은 78%"라며 입법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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