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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길여 회고록 : 길을 묻다

[신간] 이길여 회고록 : 길을 묻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1.0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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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지음/샘터 펴냄/2만 7000원

망백(望百)의 여의사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일생을 담은 회고록 <길을 묻다>가 출간됐다. 

김충식 가천대 교수(한일미래포럼 이사장)와의 2년여 대담 여정이 512쪽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한 세기에 걸쳐 의료·교육·문화·봉사·언론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공익재단인 '가천길재단'을 설립한 이길여 총장에게는 수많은 '최초'라는 수식이 붙는다. 한국의 근·현대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도 끊임없는 도전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수 많은 역사를 만들어 낸 시간과 경험의 편린들이 조각조각 모였다. 한국 의료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 삶의 이력이다. 

이길여 총장은 일제 강점기,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 한국전쟁 중 서울의대 입학. 이후 미국 유학 후 한국 최초 여의사 의료법인 설립,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 수 기준 수도권 사립대학 4위 규모인 '가천대학교' 설립, 국내 최대 공익재단 '가천길재단' 발족 등을 이뤄냈다. 

이 책에는 이길여 총장의 인생을 견인한 동력들, 끊임없이 도전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불굴의 의지, 다음 세대에게도 존경받는 교육자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다. 

일제강점기 고난의 시대는 이길여 총장을 오늘에 이르게 했다. 

"일본어만 써야 했던 초등학생 시절, 무심코 우리말을 썼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뺨을 맞았다. 그것도 같은 조선인 교사로부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무렵 일본군 '정신대' 징발로 온 동네에 난리가 났다. 나이가 서너 살만 많았다면 진작 결혼을 했을 것이고, 지금의 길병원 설립자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이길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해방 후 전라북도 이리여중에 입학했을 때 좌우익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전쟁 중 서울의대와 병원이 부산 국제시장 부근에 있던 시절에는 세 명이 비좁은 방에 누워 잘 수 없어 돌아가며 한 명은 앉아서 공부를 해야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리여고를 거쳐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의 메리 이머큘리트 병원과 퀸스 종합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일본 니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휴전 후 인천 용동에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선진 의료를 배우고 싶어 미국으로 갔지만, 조국과 환자들을 위해 다시 귀국한다.  

"1968년 미국에 남으라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귀국을 결단했다. 가난한 한국보다, 더 가난한 조국의 환자들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책에는 일제 강점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과 휴전, 전후 폐허와 가난 등과 함께 '기록 유산' 같은 그의 삶이 덧대진다.  

1978년 그는 국내 여성의사로서는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했다. 

"의료 법인이 아니면 '병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고 한 단계 낮은 '의원(醫院)'이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의료 법인 설립을 기피했던 이유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가천의대를 설립했으며, 경원대학교를 인수했다. 2012년에는 4개 대학을 통합해 '가천대학교'를 출범시켰다. 사재 포함 1600억원을 들여 뇌과학연구소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을 설립했으며, 2009년 정부로부터 최고 등급의 과학기술훈장을 받았다.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그의 삶을 반추한다. 

▲미운 오리 새끼 ▲왈가닥 모범생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의대생 ▲봉사 활동에 눈을 뜨다 ▲낯선 천국 미국으로 ▲이길여 산부인과 ▲종합 병원을 꿈꾸다 ▲길병원의 성장 가도 ▲성공시대 ▲어미새의 노래 ▲가천의 이름으로 등이다(☎ 02-763-8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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