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둠은 깊고 푸르다
1.
요즘은 건강이 좋아 보이네요, 라고 환자로 내원한 그가 의사인 나에게 오늘 낮에 인사를 건넸었다 밤이 깊어 이제 길에는 귀가하는 인적도 끊긴, 몇 개의 가로등만이 밤길을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나는 지금 벤치에 앉아 고층 아파트 빌딩 사이로 보이는 초여름의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밤이슬은 이미 내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어둠은 깊고 푸르다 잠시 눈한 번 깜빡였었던 것 같은데 폭풍 같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처럼 좀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 인사에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바깥, 그 바깥은 어떤가요? 라고 되물었었다
2. 바람이 잦아드는 검은 골짜기에는 아직도 *한 아이가 살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가 가지를 게으르게 늘어뜨리고 있고 서늘한 달빛이 어둠의 귀를 열면 바람은 허공에 몸을 기대고 잠들지 못하는 영혼을 풀잎 위에 낮게 누이는, 비어있음으로 무궁無窮처럼 풀벌레 소리가 하늘 끝에 가닿는,
태어날 때부터 눈처럼 흰 그의 눈썹에 대하여 생각한다
3.
폐사지廢寺址 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노자老子
▶ 경기 광명 우리내과의원장/<문학사상> 신인상 등단/시집 <노랑나비, 베란다 창틀에 앉다><물토란이 자라는 동안>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