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회장, 박 대통령에 공개서신..."저수가로 동네의원 무너져"
노 회장은 서신문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외래 이용율과 연간 입원기간이 OECD 국가 평균의 약 2배에 달하지만, 지출되는 총 의료비 OECD 평균의 약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는 의료행위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진료수가가 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저수가체제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 건강의 폐해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낮은 진료비로 인해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의료기관 경영이 가능하고, 높은 수준의 의학교육 과정을 거친 전문의들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포기하고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회장은 "모성사망률이 2008년도에 비해 2011년도에 2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술이 발전하고 경제수준이 좋아지는데 사망률이 오히려 높아지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지나치게 낮은 수가 때문에 진료현장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낮은 진료수가는 동네의원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킨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1990년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관 지출비 가운데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에 지출된 비율이 각각 55%와 45%였던 것이, 2011년 78.4%와 21.6%로 바뀌었다면서 "이는 동네의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라고 밝혔다. 수가가 낮다보니 대학병원은 '선택진료비'와 비급여 항목을 통해 수익을 보전하고 있어 이로 인한 비용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노 회장은 "우리나라는 '재난적 의료비'(가구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경우)의 발생비율이 OECD국가 중 가장 높다"며 "이는 정부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책임을 국민에게 미뤄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지원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병원의 문턱을 낮추어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의료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저수가 저부담'을 원칙으로 설계된 제도"라고 설명하고 "적정수가의 보장성 확대를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대대적인 건강보험 개편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서한은 노 회장이 의료건강 인터넷 매체인 '코메디닷컴'에 제공한 것으로서, 노 회장은 앞으로 5회에 걸쳐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박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
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대한의사협회장 노환규입니다. 지난해 10월7일 제1회 한마음의사가족대회에 당시 대통령 후보 신분으로 찾아와서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늦게나마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후보시절부터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도 줄곧 '안전한 대한민국'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경제의 부흥도, 문화의 융성도, 그리고 국민의 행복도 모두 국민의 건강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이 곧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첫걸음이므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한마음의사가족대회에서 "1977년 첫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난 36년이 흐른 지금 건강보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지금의 건강보험제도는 마치 깨어진 달걀에 반창고를 붙여놓고 색칠을 해놓은 달걀과 다름이 없습니다. 의료의 소비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보건의료인들이 다 함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저수가 제도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원가에 못 미치는 진료수가, 문제가 없을까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진료수가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 드리면, 미국에서 약 120만원 받는 위내시경 검사료가 우리나라에서는 4만원입니다. 이 비용은 환자의 본인부담과 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을 합한 금액입니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4만원씩 받아 어지간해서는 약 1억 원에 이르는 내시경 장비의 원금과 이자를 낼 만큼 이익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수억 원을 배상해야 하므로 위내시경을 하는 병의원들은 상세한 검사보다는 가능한 많은 검사를 해야만 하는 실정입니다. -"낮은 진료수가로 동네의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1990년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관 지출비 가운데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에 지출된 비율은 각각 55%와 45%였습니다. 그런데 2011년 이 비율은 78.4%와 21.6%로 바뀌었습니다. 동네의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국민도 의료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들은 의료비를 자기 호주머니에서 내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OECD 34개국과 6개 주요 국가를 포함한 40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의료비의 국민부담률이 2009년 두 번째로 높았다가 2011년 5위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국민의 자가부담률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비를 내느라 가정이 경제적 파탄에 빠지는 '재난적 의료비'(가구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경우)의 발생비율이 OECD국가 중 첫 번째가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책임을 국민에게만 미뤄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지원을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재정파탄, 건보공단은 천문학적 이익 발생"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은 2012년 결산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의료비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데, 국민으로부터 건강보험료를 강제로 걷어 운영하는 건강보험공단은 무려 4조원 가까운 흑자를 낸 것입니다. -"새판을 짤 때가 왔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적정진료를 위한 적정수가를 책정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적정수가의 보장성 확대를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대대적인 건강보험 개편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장 노환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