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첩약보다 필수의료 보장성 강화가 더 시급하다
한약 첩약보다 필수의료 보장성 강화가 더 시급하다
  •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1.2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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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정부는 최근 한방 첩약급여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오는 2월 6일 개최 예정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의 한방 첩약급여 시범사업의 근거는 지난해 6월 발표한 건강보험정책 심의위원회의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종합계획)에 따른 한의약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일환이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한약 첩약에 대한 국민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대한약사회, 대한한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를 포함한 이해관계자간 협의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구체적인 첩약 시범사업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바에 따르면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은 첫해 500억원 규모로 그 중 환자본인부담률은 50%로 하고 공단과 환자가 반반씩 비용을 부담하는 형태다. 

그런데 첩약 급여화를 위해 지난 2018년 건강보험공단 의뢰로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수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치료용 첩약 규모가 1조 4천억원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향후 첩약 건보급여 전환 시 급격히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대해 한의사협회를 제외한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약사회 등 관련 단체들은 시범사업의 안전성·유효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나 정부는 오는 2월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첩약 시범사업을 밀어붙일 모양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국민의 질병, 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원의 한계로 인해 무한정 보험급여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조의2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하여 요양급여대상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양급여 결정에 관한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요양급여대상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한 요양급여의 근거'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국민의 의견을 먼저 묻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한방 첩약과 관련하여 어떠한 과학적 근거자료도 제시한 바가 없었고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묻는 절차도 시행된 바가 없다.

지난 2017년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2017년도 건강보험제도 국민 인식 조사'(문성웅 등)에 따르면 국민이 희망하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75.9%이나 이를 위해 건강보험료를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59.5%로 나타나고 있어서 단순히 보장률을 높이는 쪽으로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펼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관련하여 지난 해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행한 <보건복지포럼>에 기고한 '건강보험 보장성의 정책과제'(권순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낮은 보장성과 인구 고령화를 고려할 때 '보장성 확대의 지표로 평균 본인부담률 대신 재난적 의료비용이나 빈곤화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보장성 확대 정책과정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가치를 더욱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국민의 참여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는 제1차 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 보장성 강화뿐 아니라 의료 질과 적정 진료를 보장하기 위해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하고 '생명·건강에 직결된 중증·공익 의료가 지역·기관·과목, 분야 별로 균형 있게 제공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필수의료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규정은 아직은 없는 상태나 이상무(건강보험심사평가원)는 대한의사협회지에 발표한 자료(JKMA 2019 April; 62(4): 231-237)에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나 GRADE(Grading of Recommendations Assessment, Development and Evaluation)의 의사결정을 참고하여 필수의료를 '근거를 기반으로 하여 비용효과성 및 사회적, 윤리적 요인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의4에 명시된 '선별급여'에 관한 조항에 따르면 '요양급여를 결정함에 있어 경제성 또는 치료효과성 등이 불확실하여 그 검증을 위하여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거나, 경제성이 낮아도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건강회복에 잠재적 이득이 있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예비적인 요양급여인 선별급여로 지정하여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선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경우 환자본인부담률을 50%에서 90%까지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한방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적용하는 환자본인부담률도 50%정도로 산정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정부 스스로도 한방 첩약이 '경제성 또는 치료효과성 등이 불확실하여 그 검증을 위하여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거나, 경제성이 낮아도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건강회복에 잠재적 이득이 있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해당함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의료전달체계는 붕괴 직전에 와있다. 매년 2% 남짓 인상되는 쥐꼬리 건보 수가에 비해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3년 연속 16.4%(2018년), 10.9%(2019년), 2.87%(2020년)로 누적 32% 이상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극심한 경영 압박을 받는 가운데 극심한 인력난으로 인해 지방 중소병원은 병동을 제대로 운영하기조차 버겁다. 응급의료는 응급의료대로 지칠 대로 지쳐 있고, 외상센터는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과 급격한 인건비 상승이 겹치면서 중소병원들은 매출의 증가가 지출증가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여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의료취약지역이나 군지역과 같은 지방 중소도시뿐만이 아니라 수도권의 견실한 병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만일 이와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한다면 그동안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지역사회의 필수의료를 담당해온 중소병원들이 붕괴하면서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되고 곧바로 한국의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의협신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의협신문

상황이 이런데도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고 비용효과성 및 사회적·윤리적 논란이 많은 한방 첩약을 서둘러 급여화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해 국감에서 제기된 '한의협이 문재인케어를 지지하는 대가로 첩약급여화를 요구하고, 청와대는 한의협과 결탁해 이를 강행하려 한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잘못된 新적폐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이 시행된다면 향후 건강보험제도의 왜곡과 의료일원화를 저해하여 궁극적으로 국민건강 증진에 역행하고 인구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방해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처럼 문제투성이인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먼저 국민의 생명과 밀접한 필수의료 보장성 강화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고사 위기에 빠진 지방 중소병원을 살려내고, 응급 상태의 응급의료를 정상화하고,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의료 체계 구축을 위한 의료개혁에 한정된 건보재정을 투입하는 등 필수의료에 총력을 집중하여 의료전달체계를 유지하고 인구 고령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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