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나는 일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고 싶다 
[기고]나는 일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고 싶다 
  • 박경신 원장(충남 서산시·굿모닝의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ksmd@naver.com
  • 승인 2019.06.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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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원장(충남 서산시·굿모닝의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경신 원장(충남 서산시·굿모닝의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는 일개 의사이다. 안민석 의원의 말처럼 필자는 그냥 일개 의사이다.

그러나 대부분 의사들은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사명감으로 일 한다. 아무리 의료현장이 왜곡되고, 피폐해져 의사로서의 자긍심을 찾기 힘들다 하더라도 의사가 된 이유를 찾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필자의 진료실 공간은 낡고 초라하다. 그러나 이렇게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친다 해도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살다 가는 것도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청춘을 보냈고, 앞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이곳에서 의사가 된 이유를 찾으면서 살고 싶다.

인턴을 하면서 생명이 오가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며칠씩 못자는 날도 있었고, 과중한 업무에 녹초가 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전문의 지원을 앞두고 응급환자나 중환자가 없는 피부과를 지원하려 했다. 편해 보였다.

한 사건이 정신건강의학과로 인생을 바꾸게 했다.

인턴 때 담당한 한 알코올 중독 환자의 아내는 공장에서 일하며 3살 난 딸과 같이 생활을 꾸렸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집안에 돈 되는 모든 물건을 술과 바꾸어 먹었다. 연탄조차 술과 바꾸어 먹는 바람에 한 장 이상 사놓을 수 없었다.

아내가 야근하고 새벽에 돌아오는 추운 겨울밤, 남편은 하나 남은 연탄조차 술과 바꿨다. 술에 취해 자고 있었고, 어린 딸은 체온이 떨어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는 가출했고, 환자는 결국 식도 균열 파열이라는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한 가족이 삽시간에 불행에 빠진 사건을 보면서 평탄하게 성장한 필자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특히 아무 것도 모르고 죽어간 3살 난 아이의 죽음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지망했다. 지금도 알코올 중독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치료는 참 어렵다. 열심히 치료한 환자가 퇴원 당일 병원 앞 슈퍼에서 퇴원 기념으로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치료자로서 절망하게 된다.

안과 전문의 친구는 "알코올 중독은 죽어야 낫는 병"이라고 놀린다 . 정말 치료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가? 답이 없는 데 답을 찾는 바보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자책하기도 한다.

안민석 의원에게는 일개 의사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필자는 의업을 길을 끝까지 걷을 생각이다.

3살 난 아이가 왜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아니 막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 된다면 일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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