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40년 만에 전화하셨다
첫 시집을 보내드렸더니
안부 차 전화하셨다
내 시집에는
살아온 이야기 외에 특별한 것이 없듯이
선생님도 그냥 살아오신 당신 이야기를
느릿느릿 오래오래 하시다 끊으셨다
통화의 여운을 따라
느릿느릿 오래오래 40년을 돌아보니
젊은 담임선생님께서
반백의 나를 보듬어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2011년에 모 문예 잡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후 2015년 가을에 첫 시집을 펴냈으니 벌써 2년이 지났다.

1000부를 인쇄해 출판사에서 쓸 300부를 주고 700부 정도 받은 시집이 이제 스무 권 남짓 남았으니 나와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는 거의 다 보내드린 셈이다. 여러 분들로부터 시집을 잘 받았다고 인사를 받았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두 차례나 담임을 맡으셨던 최준걸 선생님이시다.

고향을 지키며 소설을 쓰시는 당숙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락을 보내셨는데, 지방 신문인 강원일보에 보니까 홍지헌이라는 시인이 시집을 냈다는데 그 지헌이가 당신의 제자 그 지헌인지 물으시며, 그렇다면 시집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당숙이 보내준 선생님의 주소로 시집을 발송해 드렸더니 며칠 후 직접 전화를 주신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행사 때 은사님으로 모셔서 건강하신 모습을 뵙긴 했지만 개인적인 통화는 4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기억됐다.

시집을 읽으신 소감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고 주로 당신의 근황을 말씀하셨다. 뇌졸중으로 반신이 마비돼 거동이 불편하시고, 아직도 계속 병원에 다니고 계시며, 발음이 또렸하지 못해 말씀하시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포목점을 하시던 활달한 성품의 사모님과 사별하신 이야기, 큰 딸이 당신 뒤를 이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멀리 지방에 근무하는 관계로 자주 보지 못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 가끔 막내딸이 당신을 돌보러 다니지만 너무 면목이 없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느릿느릿 오래오래 하셨다.

반갑고도 고마운 전화였지만 끝날 줄 모르는 긴 전화가 난감하고도 지루했다. 하지만 환자 봐야한다고 먼저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을 보내준 제자가 그동안 다섯 명 정도 되는데, 옛날 생각이 날 때마다 책을 꺼내 읽고 또 읽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책을 펴낸 제자들을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한 제자라고 판단하시며, 성공한 인물을 가르치시던 옛 생각에 젖어 은사님으로서의 뿌듯한 보람을 느끼시는 듯 했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별스러울 것 없는 제자들의 책을 읽고 또 읽으셨을까 하는 안쓰러움도 느껴졌다.

예전에 동시를 지으면 칭찬해 주시던, 농담 잘하고 말씀이 많으시고 쾌활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동시 여러 편 중에 한 편은 내 이름으로, 다른 몇 편은 친구들 이름으로 솜씨자랑 게시판에 걸어주시던 선생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중의 한 명은 공부를 못하는 친구였다. 왜 내 동시를 그 친구 이름으로 게시하실까 속상해 했던 철부지 나의 모습도 떠올랐다. 선생님께 칭찬 받는 재미로 동시를 쓰다가 이렇게 시인이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께서 은퇴 후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위로가 되어드리는 것 같았고, 나도 위로를 받는 심정이었다. 선생님의 외롭고 불편하신 모습이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만약 그런 경우 나는 누구에게 느릿느릿 오래오래 전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반갑지 않은 연상도 저절로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