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선각자이자 벤처투자가인 비노드 코슬라는 2012년 "미래에는 80%의 의사가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다"라고 주장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했던 이 주장은, 마침내 인공지능의 영향이 가시화 된 지금은 더 이상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

알파고 사태 이전에는 한국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인공지능은 돌연 국가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 부처별로 인공지능 관련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나섰으며, 각종 도서·학회·강의에는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 열풍이 이제는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장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인공지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의료계에서도 알파고 사태 이후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알파고 직전인 지난해 2월 개원의사 대상의 강연에서 "인공지능이 향후 의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는데도 결국 원격의료에 관한 질문만 쏟아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의료 인공지능, 어디까지 왔나

의료는 이미 예전부터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우선적으로 활발하게 적용돼 온 분야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서는 그 발전 속도와 범위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암 환자 진단, 영상 의료 데이터 분석, 유전체 분석, 임상 시험 등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의료 분야 활용을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본다.
첫번째는 전자의무기록(EMR), 유전 정보, 헬스케어 데이터 등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 권고안이나 건강 조언을 하는 역할이다. 대표적으로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가 여기에 속한다.

전자의무기록에 저장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암 환자에 대한 최적의 치료법을 의사에게 권고해주는 것이다. 뉴욕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센터(MSKCC)와 IBM이 개발한 왓슨 포 온콜로지는 치료 권고안과 함께 이에 대한 논문, 임상 연구 결과, NCCN 가이드라인 등의 근거까지 제시한다.

최근 길병원과 부산대학병원이 각각 왓슨을 도입해 기존의 다학제 진료에 접목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길병원에서 왓슨을 이용해 진료한 100여명의 환자 중에, 의사와 왓슨이 권고한 치료법에 차이가 있을 경우 환자들은 왓슨을 오히려 선호한다고 해서 이슈가 됐다.

하지만 왓슨 포 온콜로지는 의학적으로 정확성이나 효용에 대한 추가적인 증명이 필요하다. 지난 12월 초에 인도 마니팔 병원이 지난 3년 간 진료한 4가지 암종에 대한 1000명의 암환자에 대한 왓슨의 진료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를 보면 인간 의사와 왓슨은 80% 정도의 경우에 치료 권고안이 일치했다. 하지만 일치율은 암종별로도 차이가 있었으며(직장암이 가장 높고, 폐암이 가장 낮았다), 동일 암종의 세부 유형 별로도 차이가 있었다(삼중음성 유방암은 일치도가 높았으며, HER2 음성 유방암은 낮았다).

두번째는 방대한 학습량을 기반으로 특정 종류의 의료 데이터를 해석하고 판독하는 역할이다. 엑스레이, MRI 등 영상의학 데이터나 암 조직 검사와 같은 병리 데이터, 안저 사진이나 피부과 데이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알파고 덕분에 이제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딥 러닝 기술은 2012년 경부터 특히 이미지 인식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는 기존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병리학과 전문의가 하던 데이터 판독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분야에는 구글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뷰노, 루닛과 같은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국내 딥러닝 의료 스타트업도 주목할만하다.

구글은 작년 11월 JAMA에 출판한 연구에서 13만 장에 달하는 안저 데이터를 딥러닝으로 학습해, 당뇨성 망막 병증을 인간 안과 전문의보다 더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스탠퍼드 연구진들은 지난 2월 네이처 논문을 통해 피부과 병변 이미지를 분석해 흑색종 등의 판독에 대해 역시 피부과 전문의보다 인공지능의 성적이 더 좋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 3월에 구글은 또 다른 논문을 통해 생검한 암환자의 병리 데이터 판독 성적 역시 병리과 전문의보다 인공지능이 더 정확함을 증명했다.

세번째는 심전도, 혈당, 혈압 등의 연속적인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거나 예측하는 역할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대부분의 데이터는 연속적인 데이터로, 특히 만성질환 환자의 예방, 예측 의료를 구현하려면 이상적으로는 데이터를 24시간, 365일 실시간 모니터링 및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결국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IBM과 캐나다 온타리오 공과대학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센서로 측정한 조산아들의 생체 신호 패턴을 분석해 패혈증을 24시간까지 조기 발견에 성공했다.

또 2016년 1월 IBM은 최근 메드트로닉의 연속 혈당측정계로 측정한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 수치를 왓슨이 분석해 저혈당증을 3시간까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뷰노에 따르면 중환자실에서 측정한 심전도 데이터를 딥 러닝으로 분석해 약 90%의 정확도로 부정맥 발생을 10분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아주대병원과 뷰노는 외상센터,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서 산소포화도, 혈압, 맥박, 뇌파 등 8가지 데이터를 측정하고 실시간 분석함으로써, 부정맥, 패혈증, 급성호흡곤란증후군 등을 3시간까지 미리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2016년 사이언티픽 레포트에 출판한 논문에 따르면, 심전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정맥을 1시간 미리 예측하는 문제에서도 AUC 수치가 0.93에 이르는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환자를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분석 및 진단하며, 영상 의료 데이터를 판독하고, 환자의 위험 징후를 예측해주는 등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종양내과·영상의학과·병리과·피부과·안과 등의 일부 업무들은 이미 인공지능의 영향이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 그 영향은 향후 다른 분야로도 확대될 것이며, 이에 따라 진료 방식과 '인간' 의사의 역할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으리라고 본다.

의사,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의료를 혁신하는 이러한 미래는 피할 수 없다. 더 이상 그러한 미래가 올 것인지, 오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올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알파고 사태에서 충분히 보았듯이 그런 미래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미래가 피할 수 없다면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므로, 전문가들이 협력해 새로운 길을 조심스럽지만 선도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인공지능 의료기기 규제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세계 최초로 만들고 있으며, 필자를 포함한 여러 의료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실제 진료 프로세스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때문에 미래에는 의사의 역할과 갖춰야 할 역량과 소양도 변화한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의 교육 과정과 수련의사의 훈련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하버드 의과대학 등은 이미 이런 요인을 고려해 플립 러닝을 도입하는 등 커리큘럼을 대폭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곡점의 시기에 의료계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선도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기계와 함께 달리는 미래는 결코 피할 수 없으며, 이 새로운 파트너와 어떻게 달릴지를 규정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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