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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용 의협고문의 서거를 애도하며

박만용 의협고문의 서거를 애도하며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10.0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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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김익수 전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호곡

▲ 고 박만용 대한의사협회 고문
오호통재라! 고문님께선 왜 이렇게 바삐 가셨단 말입니까.

바로 며칠 전에 식사하기가 힘들다며 병원에 입원하면서 빨리 퇴원해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환자들은 어떻하라고 그리 빨리 가셨단 말입니까.

80이 넘었어도 꾸준히 환자 곁을 지키시던 그 열정을 어떻게 이리 쉽게 버리셨단 말입니까.

당신을 바라보는 후배들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고문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않고 그저 허무할 뿐입니다.

고문님께서는 일찍이 골프계에 입문해 의사의 신분으로서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일궈 내셨습니다.

한국의 명문골프장이라는 한양컨트리클럽에서 무려 4번씩이나 챔피언을 거머쥐셨고, 오산컨트리클럽 챔피언은 물론 한국시니어(아마) 챔피언을 3회나 차지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브로드모어골프장에서 열린 세계시니어 골프대회에 한국대표선수로 출전해 3회나 국가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한국골프협회 규칙분과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의료계 뿐만 아니라 골프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고문님께서는 1980년대 초부터 한원컨트리클럽에서 매달 월례회를 개최하고, 후배들의 골프 실력 향상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또한 후배들이 챔피언을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소위 '박만용 군단'을 만들어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결과, 14년 만에 홍영재(1998년 용평컨트리클럽)·장원의(1999년 한양컨트리클럽) 챔피언을 배출시켰습니다. 더 이상 대를 잊지 못하고 세월만 가는 것을 마냥 아쉬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음은 저희들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문님! 고문님의 회갑기념으로 영국 세인트 앤드루 올드 코스를 라운딩한 것이 벌써 20여년이 지났군요.

"골프를 한다면 한 번 쯤은 골프 성지를 순례해야 한다"면서 1년 전부터 예약을 하고, 그해 11월 쌀쌀한 날씨에 7명의 후배들을 커플로 데리고 라운딩을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8명 중 4명이 70대 스코어를 기록하고, 행운의 이글을 기록하자 고문님께선 너무도 기분이 좋아 모든 캐디들을 데리고 19홀(?)에서 성대한 만찬을 내기도 했습니다.

고문님께선 의료계 발전을 위해 종로구의사회장을 3번이나 연임하면서 2000년 의권쟁취 투쟁에 앞장서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개원의들의 미용외과에 대한 열망을 받아들여, 일본미용외과학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지역의 미용외과학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초석을 다짐으로써 오늘날 미용외과의 발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고문님께서는 이미 30여년 전 부터 의료계의 미래를 예견하고,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계의 어려움과 생활환경의 발전에 따라 미용의 욕구가 커질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갖고 계셨습니다. 일본미용외과학회에 후배들과 함께 참여해 미용외과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일본학회에서 연자로 참여하고, 일본어를 잘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새벽 3∼4시까지 학회에서 발표된 연제들을 놓고 설명하고 토의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처럼 일본 나들이를 한 우리들은 학회를 핑계삼아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하고 싶었지만 공부 외에는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일본 미용외과병원들을 찾아가 수련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고문님의 학구열은 정말 그칠 줄 몰랐습니다.

나날이 배울 것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 면서 70세가 넘어서도 외과·이비인후과·피부과·안과·산부인과 전문의 후배들을 모아 '만학회(晩學會)'를 만든 것도 고문님입니다. 매월 공부하는 모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열악한 조건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직 실력 밖에 없다"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채찍질을 하던 고문님의 끝 뜻에 미쳐 따르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고문님의 유지를 잊지 말고 계속 이어가자고 다짐해 봅니다.

이번 10월 월례회가 16일 열립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왜 참석을 하지 않으려 하시는 것입니까.

고문님은 재경 전남의대 동창회장을 연임하면서 동창회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으며, 회원들과의 친목을 더욱 공고히해 경인지역 1500여 동창회원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데 앞장섰습니다. 올해에는 몸이 불편해 처음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재경 동창회장배 골프대회에는 130여 회원이 참여해 성대한 축제가 되었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지요. 시상식에 선배님의 빈자리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고문님께서는 재경 전주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하면서 사회 각계층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동창회 발전에 큰 힘을 보태셨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더 많은 일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먼저 훌쩍 가버리셨습니까?

미천한 후배들은 고문님께서 못다 이룬 일 들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 고문님을 모시고 옛날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부디 편안한 길 가시기 바랍니다.

2013년 10월 1일 후배 김익수 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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