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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막으려다 정말 아픈 재소자 방치되면?

'사모님' 막으려다 정말 아픈 재소자 방치되면?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9.2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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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의사협회·변호사협회 공동주최 토론회서 재소자 인권 침해 우려 대두
현행 형집행정지 심사 실질화 필요성 제기…"의료인 윤리의식 강화" 자성도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수형자가 중대한 질병에 걸리면 어떡할까. 수형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확정된 형 집행을 정지하는 처분을 신청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검사의 형식적인 심사를 거쳐 단 한 명의 의사가 발부한 진단서만으로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모 방송국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 여대생을 청부살인한 기업 회장부인이 호텔 같은 병실에서 생활한, 이른바 '사모님 사건'이다.

형 집행정지 제도의 악용 방지와 재소자의 건강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전문가단체가 합리적인 해결책 모색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23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회관 지하1층 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재소자의 치료받을 권리' 토론회에서다. 

▲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주최한 '재소자의 치료받을 권리' 토론회. ⓒ의협신문 김선경

이날 토론회에서 의료적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고찰한 손영수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장은 현행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며 2개 이상 종합병원 전문의의 진단·소견이 일치해야만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손 위원장은 "'사모님 사건'을 보면 형 집행정지 과정에서 임의적·독단적인 의사 평가로 수차례 이상한 진단서가 발급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형 집행관련 진단서 발급기관을 제한하고, 2개 이상 종합병원의 전문의 진단과 소견이 일치하는 등의 요건이 확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형 심사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의사 등 전문가가 포함된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필수요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지금도 위원회가 형 집행정지의 적절성을 심의할 수 있지만, 필요적 사항이 아니라서 하나의 참고자료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석배 단국대 교수(법학과)는 "형식적인 결정과정에서 수형자, 교도관, 의무관, 변호사, 외부 의사 사이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있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며 "질병을 이유로 한 심의에서 복수의 의사 진단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2인 이상의 감정인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에만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소자 치료받을 권리 보장해야" 전담 교도소·체계 확충 주장

사태가 낳은 파동 때문에 자칫 재소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간과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궁극적으로는 자체 교정병원을 설립하거나 의료체계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기본권인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병석 의협 법제이사는 "형 집행정지 제도를 개선한다는 명목 아래 제도를 강화해서 결과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수용자를 치료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심각히 우려한다"면서 "군 의료기관이 전투력 확보를 목표로 운용되듯, 의료전담 교도소 또한 재소자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이사는 "아파서 더 이상 수용생활할 수 없는데, 이를 견딜 수 없어서 꾀병 부리는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면서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에 각 과 전문의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시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재욱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도 "재소자가 4만 8천명이라고 하는데, 태백시 인구가 5만명 정도다. 태백시만 가도 보건소와 중소병원, 개인의원이 다 있다"면서 "그 정도의 의료체계가 교도소에 갖춰져야 하고, 이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소자의 인권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축사하는 노환규 의협회장. ⓒ의협신문 김선경
결국 제도 운용은 사람 몫…전문가 윤리의식 고양해야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와 법조계 인사들은 제도와 관련 법을 뜯어고친다고 문제점이 깨끗이 사라질 수는 없다고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결국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석배 교수는 "형법을 전공한 법학자로서 사건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형 집행정지가 필요한 재소자들이 앞으로 정지를 받기 힘들겠다는 것"이었다며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전문가들이 고도의 직업윤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영수 위원장 또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 개개인이 지니는 전문직업인 윤리의식의 고양이 필요하고, 의사의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의료인 집단의 확고한 대처의지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환규 의협회장은 축사에서 "전공의 때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방치돼 있다가 폐암수술을 받은 사례를 경험했다. 반면 이번 사건처럼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도 호화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재소자의 권리는 반드시 정의롭게 실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균형을 잡고 모두가 공감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게 법조인과 의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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