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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니까 보이는 거다

살아 있으니까 보이는 거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3.05.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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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누 펴냄/1만 5000원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버나드 쇼) "에이, 괜히 왔다"(중광)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어네스트 헤밍웨이) "살고, 쓰고, 사랑했다"(스탕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칼 마르크스)….

그들의 묘비명은 짧지만 지난한 삶을 견뎌낸 이력과 인생을 관조하는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비문을 적는다면 무엇이라고 적을까.

지금 이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멘토 스무명의 살아있는 비문을 담은 <살아 있으니까 보이는 거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그들의 비문을 통해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다가서고 있다.

배우 김수미는 "나팔꽃을 사랑한 여자, 잠들다"이다. 힘든 순간을 많이 겪어내고도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잠들었다는 의미를 담았다. 매일 두 곳의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우편가방안에 비상약까지 갖고 다니며 우편물을 전하는 박상식 집배원은 "나의 움직임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아픔다워졌기를"이라고 썼다. 국내 핵의학계를 이끌고 있는 정준기 서울의대 교수는 "이 사람은 유약하고 평범하였으나 순수한 열정으로 노력하였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일생동안 키우고 나눠주려 했다"고 전한다. 일식집을 경영하며 서울대병원 함춘후원회에 15년간 11억원 등 지금까지 50억원을 기부한 배정철 어도 대표는 "원 없이 살다갑니다"라고 적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막내아들을 입양한 신언항 한국실명예방재단 회장 겸 초대 중앙입양원장은 "이만하면 됐다"이다.

네 개의 손가락과 한 개의 발가락을 갖고 태어나 편견과 장애를 허물고 영혼의 울림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이희아는 "작아서 행복했습니다"라며 세상에 고마움을 고백했다. 58세에 찾아든 신장암·대장암을 극복한 의사 홍영재 홍영재산부인과의원장은 "아버지 열심히 살다왔다 행복하게 살다 왔다"고 밝힌다. 국내 최고의 갑상선 전문의로 일흔이 넘어서도 메스를 놓지 않는 박정수 연세의대 교수는 "사람 일생 금방이네"라며 하루하루 삶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SBS '솔로몬의 선택'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진형혜 변호사는 "정의에 웃고 정에 울던 무모한 하룻강아지 이제야 철들다"를 통해 '정의란 무엇이가'에 고민했던 삶을 돌아본다. 한국벨리의 여왕 최수지 한국벨리댄스협회장은 "잘 놀다 갑니다"이다. 그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전칠기 명장 김정열 선생은 "돌은 물로, 나는 나전칠기로"에서 좋은 돌은 오랜시간 수마(水磨)돼야 하듯이 나전칠기에 쏟아온 인생을 갈무리한다.

이밖에 빈곤아동의 부모 박경양 목사, 꿈꾸는 만화가 연하늘, 꽃을 찍는 사진작가 고홍곤, 진실된 미소를 주는 치과의사 신경민, 세계적인 암 전문가 김의신, 자연을 담고 싶어하는 서예가 박상찬,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 송성균, 암투병중에도 오롯이 성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수녀 최은희 등의 삶을 녹여낸 비문이 덧붙여 진다.

이 책은 스무명의 비문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고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간략하게 덧붙인다.

박용휘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숙명적으로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 다시는 죽지 않는 하늘길로 떠나는데 소용되는 땅위의 간절한 소원이 땀 흘려 돌덩이에 새겨지고 끝내 이낀 비문이 되어 비석에서 숨을 쉰다"며 "이 책에는 주옥같은 비문이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영혼들을 위해 오롯하고 조심스럽게 담겨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유력 언론에서는 오비추어리(부고기사)를 논설위원급 기자가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뉴욕 타임스>는 부고 기사만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며, <이코노미스트>는 마지막 페이지를 한 사람의 부고 기사에 할애한다.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에 유명인들의 그것 만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죽은 후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 뿐만 아니라 스스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남은 삶의 지표를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 02-3272-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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