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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정심 의사결정 문제" 정부기관도 '쓴소리'

"건정심 의사결정 문제" 정부기관도 '쓴소리'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08.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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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정부입장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 "심각한 문제"
의료계 주장과 일맥상통...건정심 개혁론 탄력받을 듯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연구기관에서도 나왔다.

의료계에 이어 국회·정부 연구기관까지 가세하면서 건정심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과정을 통해 본 건강보험 성과지표와 의사결정의 책무성 문제(연구위원 윤희숙)'라는 제하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현행 건정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건정심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건정심 의사결정, 정부 입장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

윤희숙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가입자대표와 공익대표를 건정심에 포함시키고 의결권을 부여하다보니, 계약관계에 기초한 보험자와 공급자간 협상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에 도덕적 우위를 부여해 그대로 관철시키는 구조가 됐다"고 진단했다.

건정심 의사결정 구조가 왜곡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금의 건정심은 △근로자와 사용자·시민단체 등 가입자대표 8인과 △의료계 등 공급자대표 8인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정부·심평원·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공익대표 8인이 '8:8:8' 동수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정심에 참여하는 모든 위원들은 직역에 관계없이 의결권을 가진다.

특히 중재 역할을 맡아야할 정부측 인사들까지 의결권을 가지다보니, 가입자와 공급자가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이들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 일쑤다. 때에 따라 중재자의 힘이 협상의 당사자를 압도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막상 정책이 결정되고 나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윤 연구위원은 "(구조적인 문제로) 정부안이 그대로 관철되지만, 명목상 건정심을 통과했기 때문에 결정의 원칙이나 근거에 대한 설명 의무가 불명확하다"면서 "국가 책임하에 결정되어야 할 많은 안건이 건정심을 통과하는 구조속에서, 설명과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은 책무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책임성이 모호하다보니 건강보험 정책이 그때그때 정치상황에 휘둘리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보장성 70% 달성이 제시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의료적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던 식대와 병실료 등이 급여화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

윤 연구위원은 "재량범위가 과다하다보니 단기적 정치상황에 손쉽게 이용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면서 "건강보험 혜택이 정치공약으로서 갖는 매력이 큰 상황에서 결정과정의 책무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는 향후에도 상존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꼬집었다.

보험료율은 국가-수가는 '재설계'된 건정심서 결정

KDI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건정심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해 운영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책임하에 결정되어야 할 사항과 건정심에서 보험자와 공급자간 협상에 의해 결정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그 첫번째 단계. 협상 사안에 대해서는 정해진 틀 안에서 동등한 협상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두번째다.

윤 연구위원은 "사회정책적으로 주요한 사안이라면 이해그룹이 대거 포함된 보험 관련 협상기구에 맡기는 것이 적절치 않으며 법률에 의거해 행정부 책임하에 관련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면서 "보험지출의 상한과 보험료율·급여포함 원칙 등은 사회복지의 근간인 건강보험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결정인 만큼 국가가 국민에게 책무성을 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구체적 급여 포함여부와 의료기관 유형별 보수 등은 보험자와 공급자간 협상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보험자와 공급자간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재설계된 건정심을 통하되, 협상은 정부가 정한 범위와 틀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의사결정과정의 책무성과 민주성을 균형있게 추구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수준과 주체에 따른 역할 범위를 재구조화한 법률 개정도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과 건정심의 역할을 법률적으로도 명확히 구분, 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위원은 "책무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질 뿐 아니라 협약 당사자들의 불만으로 건정심 개편 요구가 강화되고 있어 과거 운영방식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보험 당사자간의 민주적 협상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개편하는 것에 앞서 정부와 건정심의 역할 범위, 정부의 건정심 규제 틀을 법률로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보건부와 사회보험 연방위원회, 역할관계 '관심'

윤 연구위원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조합주의에 기반해 협약 당사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하는 '보충성 원칙'을 준수하는, 사회보험의 자율성이 높은 대표적 국가지만 국민에게 영향이 큰 사회정책적 결정과 사회보험 당사자간 협상으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를 수준별로 구분해 책무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고 있다.

예산 상한과 급여원칙·보험료 수준은 사회보험연방위원회 결정사항이 아니라 국가의 결정사항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의료적 필요와 비용평가 등은 사회보험연방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독일 보건부는 이에 대한 법적 감독기능을 가지며, 위원결정에 대한 거부권과 근거자료 요구권을 가진다.

앞서 설명한대로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국가결정 사항 이외의 비용평가 등은 연방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연방위원회는 보험자 대표와 공급자대표·중립위원으로 구성되며, 2004년 이후 환자대표를 포함시켰으나 의결권은 부여하지 않고 있다.

윤 위원은 "국가적 중요성을 갖는 결정과 보험자·공급자 협상에 남겨둘 사항을 구분하고, 입법과 정책 형성과정을 통해 정해진 원칙과 규제 틀 속에서 보험자·공급자 협상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사회보험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강화되는 추세"라고 부연했다.

의협-국회 행보 '주목'...건정심 구조개혁 힘 받을 듯

건정심의 문제점을 짚은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대한의사협회의 행보와 국회의 움직임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앞서 의협은 지난 6월 '정부 정책의 거수기로 전락한 건정심에는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며 건정심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의협은 "건정심이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전문가 단체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묵살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면서 "건정심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는 올바른 의료정책을 만들 수 없다는 판단에서 건정심을 탈퇴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포괄수가제 사태 때도 건정심 구조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

의협은 포괄수가제 수술연기 철회의 조건으로 건정심 구조개편을 주장했으며, 수술 연기철회를 중재한 정몽준 의원이 이에 동의하면서 국회 차원의 개선 노력을 약속한 바 있다. 정 의원은 9월 건정심 구조개혁을 골자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의협은 해당 보고서에 대해 논평을 내어 "건정심의 핵심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은 것으로, 우리 협회의 입장과도 맥이 통하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건강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건강보험제도를 오직 정치적 이해관계로써 결정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협은 "노사가 1:1의 동수로 협의구조를 갖춘 노동위원회와 같이 건정심 또한 의·약·치·한 등 각 단체와 정부가 1:1의 협의체를 갖추는 등 보험자와 공급자간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건정심 개편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면서 "국민건강을 위한 제도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전문가 단체의 의견이 무시돼선 안 되며,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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