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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감도는 의료계...'시한폭탄' 터지나

전운 감도는 의료계...'시한폭탄' 터지나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2.05.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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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수가제 거부 등 국지전 진행...수가결정구조 깨기 위한 '핵폭탄' 예고

대한민국 의료계에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10여 년 전 의약분업 사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있다.

현재 대한의사협회는 사실상 전시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2000년 당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같은 기구는 없지만 조직 전체가 비상 대기 중이다.

군의 대북경계태세에 빗대면 전 군의 휴가·외출이 금지되는 '데프콘 3'을 지나, 장병들에게 실탄이 지급되는 '데프콘 2' 수준. 동원령이 선포되는 '데프콘 1'만 남았다.

의료계의 현 분위기는 이미 제37대 의협 집행부 출범 전부터 예고된 것이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선거 직후인 4월 8일 당선인 신분으로 의협의 예하 부대격인 16개 시도의사회 대표들을 긴급 소집, 만성질환관리제도와 의료분쟁조정제도에 대한 의료계의 '전면 거부' 결의를 이끌어 냈다. 취임식도 열기 전에 대정부 선전포고를 날린 셈이다.

당선인 신분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의협 예산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킨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의협은 회장선거와 예산편성 시기상의 불일치로 인해 신임 회장이 자신의 취임 첫 해 예산에 관여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노 회장은 2012년도 예산안에 '전국 의사의 날'(가칭) 행사 비용을 배정할 것을 대의원회에 직접 요청했으며, 대의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총회에서 통과됐다. 전회원의 결집을 통한 대정부 항전을 예고케 하는 대목이다.

불합리한 의료 환경을 행동으로 거부하겠다는 노 회장의 의지는 지난 9일 열린 각과별 개원의사회 긴급 연석회의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노환규 회장 "싸울 각오 되어 있습니까?"
정부의 포괄수가제 강제·확대 시행을 반대하기로 결의한 이날 회의에서 노 회장은 "정부가 이미 시행을 예고했는데 우리가 과연 막을 수 있겠나, 이런 생각 절대 하지 말라. 우리 의사들은 지금까지 권리는 잊은 채 의무에만 충실했다. (정부에) 늘 끌려 다니기만 했다. 포괄수가제 막기 위해 저항할 각오가 되어 있나? 있다면 막을 수 있고, 없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결의해 달라. 막기 위해 싸울 의향이 있나?"라며 강한 어조로 물었다.

이에 이날 참석한 20개 과별 개원의사회 대표들은 단 한명의 이견 없이 '포괄수가제 거부'를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향후 의협의 구체적인 거부방안에 적극 동참할 것을 다짐했다.

특히 노 회장은 정부가 지금까지 대 의료계 전술로 구사해 온 '각개 격파'에 대응하기 위해 일체의 과별 정부접촉을 금하고, 모든 대정부 협상의 창구를 의협으로 단일화 하는 특명을 내렸다.

노 회장은 "앞으로 내가 의협 회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복지부가) 각 과별 이해관계를 이용해 내부 분란을 일으키고, 의협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행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는 강력한 대외 정책 추진에 앞서 내부 단속을 공고히 하겠다는 다짐이자, 더 이상 의료계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는 정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의협, 건정심 탈퇴...초강수 둘까?
의협은 현재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대불금 강제징수에 대한 법적 조치에 착수한 상태다. 또 만성질환관리제의 부당성을 알리는 대국민·대회원 홍보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만성질환관리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보건소의 진료기능 차단을 위한 법률개정 작업에도 들어갔다.

이들 사안이 '국지전' 형태로 진행 중이라면, 포괄수가제를 비롯한 수가 현안에 대한 대처는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의료의 왜곡이 시작되는 근본 지점이 바로 수가제도, 특히 기형적인 수가결정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22일 예정된 기자회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협은 오는 22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괄수가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이날 발표되는 내용의 수위에 따라 향후 의협의 대응 강도와 속도가 결정된다.

일각에선 의협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탈퇴라는 초강수를 던질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건정심 회의 예정일인 24일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는 다는 점도 이 같은 예상에 무게를 얹는다.

만일 의협이 건정심 탈퇴를 선언한다면, 이는 200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김재정 의협 회장은 정부가 발표한 수가 인상률 2.65%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건정심 탈퇴를 선포했다. 그리고 두 달 뒤 5만여 명의 회원이 여의도에 결집한 가운데 의료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궐기대회를 열었다.

연말 대선 앞둔 정부 '전전긍긍'
신임 의협 집행부가 출범한지 불과 3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의료계의 급격한 분위기 변화에 정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의협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눈치다.

정부로선 연말 대선이란 정치적 상황까지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수가협상 시기를 앞당길 것을 요구하고 나선 대목에서 확인된다.

수가결정 시기를 앞당기자는 주장은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안이다. 현재 건강보험 예산 요구안 제출시기(6월말)와 수가·보험료율 조정 시기(11월) 사이의 시차가 존재, 보험료 인상액을 국고지원액에 정확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고지원금이 늘어나는 게 달갑지 않은 정부는 그동안 의료계 요구를 외면해 왔다.

그런데 16일 제12차 건정심 회의에서는 정부가 먼저 나서 건강보험 수가·보험료율 조정 시기를 매년 11월에서 6월말까지로 변경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연말 수가 협상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경우 민감한 대선 정국에서 결코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 엿보인다.

의협은 정부가 처한 이 같은 상황을 의료계에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일각에선 의협이 과거 의쟁투와 같은 극단으로 치닫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회원들의 정서와 국민의 인식 변화,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들을 감안할 때 중요 사안별 강온전략을 통해 실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같은 전망은 노환규 회장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힌 "협상은 주고 받는 게 아니라,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것", "적절한 시기가 되면 복지부와 대화 시작", "정부와 대화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 등 발언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의협이 어떤 노선을 추구하든 과거와는 다른 강도일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과거 의협 집행부에 몸 담았던 한 회원(경기도 개원의)은 "의약분업 사태 이후 요즘처럼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는 처음이다"며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이 드디어 폭발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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