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8 12:22 (일)
시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나아갈 길

시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나아갈 길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2.01.13 10:0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대석(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서울의대 교수 서울대병원 내과)

▲ 허대석(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서울의대 교수 서울대병원 내과)

2008년 12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설립된 후 첫 원장으로서의 소임은 새로운 조직이 자리를 잡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3년의 임기를 마치면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큰 나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소식지의 이름인 <근거와 가치>라는 말에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해야 할 일이 압축되어 있다. '근거와 가치'는 어떤 의미인가 ?

먼저 우리나라 보건의료가 발전하려면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보건의료분야에서의 뿌리는 객관적인 '근거'이다. 의료정책을 결정하고 관리하는데 있어 근거자료가 없는 접근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근거가 없는 접근방식은 정책결정의 임시방편은 될 수 있으나, 지속가능한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거자료가 불충분하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9년 국내에서 280여명이 사망한 신종플루 사태를 들 수 있다.

일부 언론들의 과장된 보도로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통계청 사망자료·심평원 청구자료·질병관리본부 인플루엔자 표본감시자료를 연계해 분석한 결과, 해마다 인플루엔자(계절 독감)와 연관해 사망하는 사람이 2370명 규모임을 밝혔다.

이 자료에 근거하여 2010년에도 신종플루로 사망환자가 발생하였으나, 보건복지부는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근거'는 정책을 이해시킬 수 있는 '공용언어'로 다양한 직종이 일하는 의료분야에서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목표는 보건의료분야에 필요한 근거를 연구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한국의료가 꽃을 피우게 하는 튼튼한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의 시각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2009년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제거사건이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기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공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동일한 근거자료도 사회적 혹은 문화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윤리적 문제까지 연계되어 있는 경우, 합의점에 도달하기 힘들고 정책결정도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 의료기술에 대한 경제성평가 문제에서도 이해당사자들의 가치는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데, 1년간의 생명연장을 위해 건강보험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환자·의사·제약회사·정책결정자 등이 모두 다른 입장을 보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선서만으로는 현대 의료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2400년 전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의사와 환자만이 참여하는 관계였으나, 지금의 의료문제는 건강보험이라는 3자가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제약회사 등 다양한 이해단체들이 참여하는 다자간의 관계로 변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분야에도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연구기관'의 역할이 필요하고, 의료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본질적인 가치와 이에 수반되는 문제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풀어나가는데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실제 의료제도에 반영하는 것은 여러 관련기관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 의료기술평가과정을 예로 들면, 신의료기술 평가에 관련된 사항은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어 큰 논란이 없었지만, 기존 의료기술에 대한 재평가는 많은 벽에 부딪혔다.

글루코사민이 골관절염에 효과가 없음을 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결과에서 밝혔지만 그 결과는 바로 제도에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더 이상 글루코사민을 보험급여로 처방할 수 없게 될 예정으로 연간 100억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절감이 가능하게 되었다.

보건의료연구원의 목표는 연구결과를 국민보건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료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다. 환자 질병정보를 이용해야 하는 연구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공공기관이 아니면 자료에 대한 접근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단위의 공익적 연구는 국가기관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

따라서 보건의료연구원이 공익목적의 의학연구의 중심기관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적·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

하루가 다르게 의료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21세기는 보건의료분야에도 새로운 가치와 제도를 필요로 한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보건의료 환경 속에서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창출하는 연구기관으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전하기를 바라며, 관련 행정기관 뿐만 아니라 의료계의 이해와 지속적인 후원을 부탁드린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