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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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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0.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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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영상의학과 교수)

▲ 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영상의학과 교수)

산문(山門)으로 들어설 때 두 손 모아 공손히 합장(合掌)만 해도 따로 입장료 없이 경관 좋고 물 좋은 산사(山寺)를 구경할 수 있다.

어르신네 연세가 아흔이 되자 지병으로 앓고 있던 뇌 미세혈관염은 팔다리를 더욱더 무력하게 만들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되고, 말문조차 막혀버리기도 한다. 간병인 두 사람이 주야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먹거리를 챙겨 드린다.

낮에는 젊은 장정 2명이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워 동네를 돌고 목욕을 시켜드리기도 한다. 그러기를 십 수 년 이제는 지쳐버린 어르신은 만나는 사람마다 '편안하게 죽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소연 하신다. 죽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필자가 학생 때 M교수로부터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환자는 전이암으로 하체가 불구인 체 몇 달을 병상에 누워 생활해야만 했다. 어느 날 M교수가 회진 왔을 때 그 환자는 자기를 그만 죽여 달라고 하소연 했다. 편안하게 임종을 맞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도 검사도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죽음이란 죽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죽은 후에 죽음이 어떤 것인지 말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존재의 이유를 깨우쳐 낼 수 있는 시간은 육십평생으로도 불가능할 수 있지만 임종이 다가왔을 때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존재의 이유를 깨우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는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죽음이란 편안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M교수는 그 환자에게 '제가 휴가를 가거든요, 그래서 3일분 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하루 한 첩씩 드시면 되는데 만약 세 첩을 한꺼번에 드시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하고 그 환자의 진의(眞意)를 알고자 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그 환자에게 가 보았더니 그 환자는 M교수가 시키는데로 하루 한 첩만 드셨다고 한다.

몇 년 전 의사인 친구가 모진 병에 걸려 죽었다. 어린 두 딸과 십년이나 팔다리를 움직거리지 못하는 홀어머니를 남겨둔 채 아버지이자 아들인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친구의 부인은 어느 날 꿈속에서 성령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 후로 그 부인은 모든 행동이 대담해 지기도 했다. 남편이 죽자 병상에서 아들을 찾는 시모에게 '어머님, 아들은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이제 그만 아들을 찾으세요' 하고 흐느끼며 울었다.

그날 저녁부터 시모는 떠먹여주는 미음도 거절한 채 입을 꼭 다물고는 72시간 만에 아들이 먼저 가 있을 하늘나라로 길을 떠났다.

어르신네는 편안하게 죽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면서도 하루 세끼 떠 먹여 주는 밥도 잘 드시고 낮에는 휠체어에 실려 여기저기 나 다니시고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청결하게 가꾸신다.

밤이면 잠이 오질 않으신지 훌쩍 거리면서 편안하게 죽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두 손 모아 합장으로 인사하면 누워서도 두 손 모아 합장으로 답례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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