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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혈우병치료제와 에이즈감염 인과관계 있다"

대법원 "혈우병치료제와 에이즈감염 인과관계 있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9.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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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분석] 혈우병환자 패소 선고한 원심 파기
"소송 소멸시효는 HIV 아닌 AIDS 기준으로"

혈우병 치료제를 통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며 혈우병환자들이 제약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29일 혈우병 환자 이모(22)씨 등 16명과 가족 53명이 제약사 녹십자홀딩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혈우병 환자인 이씨 등은 녹십자홀딩스가 설립한 한국혈우재단 회원으로 등록한 뒤 재단을 통해 녹십자홀딩스가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를 유·무상 공급받았는데, 이후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되자 2003년 녹십자를 상대로 총 3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혈액제제 투여와 에이즈 감염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해 이씨에게 3천만원을, 가족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나머지 원고들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안지 10년이 넘어 손해배상 소송 시효가 소멸했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은 혈액제제 투여와 에이즈 감염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씨를 포함한 모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혈액제제의 결함과 피해자의 감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결우, 증명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즉 일반인이 의약품의 결함이나 제약회사의 과실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자연과학적인 명확한 증명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혈액제제의 사용과 감염의 시간적 접근성, 통계적 관련성, 혈액제제의 제조공정, 해당 바이러스 감염의 의학적 특성, 원료 혈액에 대한 바이러스 진단방법의 정확성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단순히 피해자가 감염추정기간 동안 다른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를 투여 받았다거나, 수혈 받은 사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제약회사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녹십자홀딩스가 1990년 초반 무렵부터 B형 혈우병 치료제인 '훽나인'을 본격적으로 제조·유통시켰는데, 그 무렵 우리나라의 B형 혈우병 환자에서 HIV 감염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했던 사실에 주목했다.

또 혈액제제를 만드는데 사용된 혈액의 출처가 HIV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김 모씨, 오 모씨 등이었다는 사실, 환자들이 혈액제제를 투여받기 전에는 HIV 감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녹십자홀딩스의 혈액제제가 HIV에 오염됐거나 오염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와함께 원심 재판부가 인정한 제약회사측 서류들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시점에 대한 심리도 부족했다며 원고 파기 이유를 밝혔다.

특히 손해배상 소송 시효에 대해 재판부는 "민법상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감염 자체로 인한 손해 외에 증상의 발현 또는 병의 진행으로 인한 손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손해는 증상이 발현되거나 병이 진행된 시점에 현실적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즉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가 되었다는 손해는 HIV 감염이 진행돼 실제 AIDS 환자가 되었을 때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HIV에 감염된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따진 원심의 판단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원고측 소송대리인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원심 재판부는 혈액제제와 HIV 감염에 대한 의학적 인과관계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입증책임을 상당부분 완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금까지 약화사고의 경우, 의학적 인과관계, 소멸시효에 대한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이 없었다"며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입증의 정도, 부작용 발생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해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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