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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의약분업 10년…예고된 실패

coverstory 의약분업 10년…예고된 실패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0.06.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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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불법진료 임의조제 등 여전
객관적 평가 통해 해결책 제시해야

Cover Story

의약분업 제도 시행 10년이 지났다.

의약분업 제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었음에도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사전 연구와 논의는 물론 국민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강행했다.

특히 민간 전문가·전문위원·정부 공무원 등이 참여한 의료개혁위원회에서 125회에 이르는 회의·토론회·공청회를 거쳐 '한국형 의약분업 모형'(단계적 시행안)을 제시했음에도 이를 묵살한 채 정략적으로 밀어붙였다.

철저한 준비없이 강행한 의약분업은 시행초기부터 의-약-정 간의 극한 대립과 불신을 조장, 의료대란까지 촉발하며 엄청난 부작용을 양산했다.

더욱이 의료보험 통합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특정한 이해관계와 비리척결이라는 정치적 명분이 결합, 반대 입장에 섰던 전문가인 의사들을 비리집단으로 낙인찍어 사회통합에 역행하고, 국민-정부-의사-약사 등 이해관계자들 간에 불신과 대립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 비용의 과다 지출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나자 정부는 의료제공자에 대한 각종 규제조치를 통해 자율성과 전문성을 억압하는 후진적 행정을 서슴지 않았다.

의약분업 시행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의-약 갈등과 후유증이 적지 않다.

<의협신문>이 의약분업 10주년을 맞아 전자우편을 사용하고 있는 전국의 의사 8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하거나 문진하는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62.6%가 "경험했다"고 답했다.

약사가 처방전을 변경하거나 수정한 경우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3.2%에 달했다. 약사가 대체조제를 한 경우 "사후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80.0%였다.

의사들의 상당수는 "의약분업 시행 10년이 지났음에도 기본원칙 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의·약사 간의 역할 분담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분업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의약분업의 가장 큰 목적은 약사들의 임의진단 및 처방에 근거한 무분별한 약제의 조제 및 판매를 근절해 국민의료를 정상적인 의료제도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정책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의약분업 평가와 관련한 연구에서 약사의 임의조제 실태에 대한 조사와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위기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 말 2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누적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약분업 제도 시행 10년을 맞는 시점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문제점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평가·보완해 나가는 것은 정책평가의 기본이다. 국민을 위해 정부와 국회는 의약분업 정책집행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을 도출, 해결책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김한중 연세대 교수는 2002년 '의약분업 정책의 평가와 대안 모색' 주제 논문을 통해 "모든 정책과정과 마찬가지로 의약분업 정책도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정책의 환류가 필수적"이라며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 뒤 평가를 통해 결과가 좋으면 계속 유지하고, 약간 문제가 있으면 보완·수정하고, 당초 기대했던 정책목표가 전혀 달성되지 않았거나 부작용이 심각한 경우에는 시행한 정책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중단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복지부, 의약분업 10년 만에 객관적 평가 약속

지금까지 의약분업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산발적으로 이뤄져왔다. 하지만 연구수행 주체에 따라 의약분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르다 보니 대부분의 연구가 객관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객관적인 종합평가가 거론되기는 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지난 6월 9일 열린 의-정 간담회에서 "의약분업이 실시된지 10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제도 도입 때부터 진통이 있었고, 지금도 이 제도가 과연 국민건강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경만호 의협 회장의 발언에 대해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 30년 성과에 대해서는 정부 입장에서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강보험 제도와 의약분업에 대하여 연구기관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추진하되, 어떤 의제를 갖고 연구·평가할 것인지는 공단·심평원·의협·병협·학계·시민단체 등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해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응답, 객관적인 평가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의 '선시행, 후평가' 약속이 10년 만에 지켜 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복지부 10년 전 "의약품 오남용 방지" "추가부담 없다" 공언

10년 전 보건복지부 의약분업실무추진본부는 '의약분업 제도를 왜 실시해야 하는가'라는 대국민 설명자료를 통해 "의사와 약사가 전문성을 상호 보완·발전시켜 국민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되며, 항생제 과다사용 등 국민건강 위협 요인 감소 및 의약품으로 인한 부작용 예방이 가능하고, 그동안 왜곡돼 왔던 약가와 의료수가의 올바른 조정과 의약품 사용으로 인한 분쟁의 신속한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약분업에 따라 의약품 소비가 감소되고, 약국의료보험제도 폐지에 따른 재정절감, 의료전달체계 시행에 따른 재정절감 등 6800~7800억원의 재정 절감 요인도 발생하므로 추가부담은 없거나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적인 국민부담은 크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약분업이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낼 것"이라며 "국민 불편 및 부담 가중의 문제점이 내제된, 득보다는 실이 많은 제도"라면서 "선보완-후시행을 통해 제반 사회적·경제적·제도적 검증절차를 거친 후에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하자 의료계는 19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 집회를 시작으로 6차례 전국규모의 집회와 4차에 걸친 파업을 통해 정부 정책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 집회와 파업 와중에 9명의 의료계 지도자가 투옥되고, 수많은 의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국민은 불편과 제도 시행에 따른 사회비용까지 지불해 가며 정부와 의·약사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약사들도 5명 중 1명 "불법 대체조제 있다" 응답

복지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의약분업 제도의 목적과 제도 시행에 따른 효과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의료계와 의약분업 실태를 연구한 일부 연구자들은 약사의 불법 진료와 의약분업 위반 행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조사에 따르면 의료인의 88.8%가 의사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약사가 임의로 판매하는 임의조제를 인지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07년 3월 본지가 창간 40주년을 맞아 전국 1757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의약분업 위반실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3.7%(1312명)가 "약국에서의 문진을 비롯한 불법진료와 전문의약품 판매행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약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불법 임의조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보사연이 약사를 대상으로 임의조제를 인지한 경험이 있는가를 물어본 결과, 24.0%에서 인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08년 조사에서는 22.3%에서 임의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다.

약사들 스스로 답한 조사에서 약 5명 가운데 1명이 의약분업 원칙에 반하는 불법행위를 인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의약분업의 목적과 기본 원칙을 흔드는 불법행위가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의약분업 이전 1억 7000만 건으로 추정되는 약국 임의조제 환자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도별 요양급여실적 통계를 살펴보면 의약분업 전후의 환자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의약분업 이전인 1998년 의료기관의 청구건수는 2억 3239만 건에서 1999년 2억 7195만 건으로 3956만 건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년에는 2억 9473만 건으로 1999년에 비해 2278만 건이 늘어나는데 머물렀다.

의약분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001년에는 3억 2636만 건으로 2000년에 비해 3162만 건이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의약분업 이전과 이후 의료기관의 청구건수가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약분업 이전 1억 7000만 건으로 추정되는 약국 임의조제 환자들의 절반만이라도 의료기관으로 이동했다면 의료기관의 청구건수는 2001년 4억 건 이상이라야 한다. 의약분업 이후에도 여전히 상당수 환자들이 약국 등에서 약을 구입하거나 아파도 참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05년 7월 9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의료정책포럼에서 '의약분업 5년 평가'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 정상혁 이화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1997년 1월부터 2005년 3월까지의 보험청구 후 심사결정된 전국 병의원 월별 외래 이용자료를 이용한 시계열분석결과를 통해 의약분업 시행 이전과 시행 이후의 의료이용률을 비교했다.

정 교수는 "연간 자연증가율을 감안해 볼 때 별 차이가 없다"고 분석했다. 약국 임의조제 환자들이 의약분업 이후에도 의료기관으로 이동하지 않고 여전히 약국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문정림 의협 대변인은 "의약분업 시행의 주된 목적이 약물 오남용 방지, 건강보험 재정절감 등과 함께 약사의 불법 진료·조제 행위 근절이었음에도 의약분업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약사의 불법적인 문진 등 진료행위와 임의 조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정부가 내세운 의약분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정형외과 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한 개원의는 "처방한 약과 다른 약을 조제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환자가 '약이 이상하다'며 약 봉지를 들고온 경우도 있었다"면서 "몇 번 주의해 달라는 전화를 했지만 그때 뿐"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병원의사로 근무하는 한 의사는 "약사가 대체조제를 하면서 사전 동의는 고사하고, 사후에 통보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며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처벌이 미온적이다 보니 의약분업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임의조제 없어지고, 정착단계" 자평

'약사의 불법 임의조제 근절'이라는 의약분업의 가장 큰 목적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복지부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국의 임의조제가 없어지고, 전문적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면서 주요 질병의 체계적 관리가 강화되고 있다"며 "의약분업은 이제 정착단계에 와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약사들이 스스로 불법 임의조제를 경험하고 있음을 밝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슨 근거로 1억 7000만 건에 달하는 불법 임의조제가 근절됐다고 하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연구기관인 보사연은 2008년 6월 <의약분업 종합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통해 "약사들의 24%가 임의조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응답한 것은 임의조제가 일정 수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약계의 자체 정화활동과 더불어 임의조제 통제를 위해 환자들의 일부를 표본의 선정해 문진행위 등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후 해당 약국에 대해 점검을 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분업 5년 평가에 관여한 정상혁 이화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복지부 의약품정책과가 의약분업 정책 집행과정과 평가 과정을 모두 담당하다 보니 자화자찬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며 "정책 집행부서와 정책평가 부서가 같아 올바른 평가가 수행되지 못하였고, 결국 올바른 정책 집행방법과 시기를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 스스로 입맛에 맞는 평가는 할 수 있겠지만 평가결과에 대해 객관성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의료공급자와 소비자를 비롯한 민간과 전문가가 주도하는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사 불법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의약분업 시행 10년 지난 현재까지도 약사의 문진과 전문의약품 판매를 비롯한 불법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의료계는 불법행위를 근절해야 하는 정부가 책무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아울러 약사가 의약분업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 수위가 약한 약사법이 아니라 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들의 일부를 표본으로 선정, 약국에서 문진행위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보사연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불법행위의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 이외에 현행처벌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임의조제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며, 환자가 전문의약품의 조제나 판매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경우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사연은 제도적으로 불법 대체조제를 통제할 수 있도록 환자용 처방전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약국에서 실제 이뤄진 조제내역을 환자용 처방전에 반드시 기록하고, 환자가 재진을 할 때 의사에게 제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표 1> 약사 조제료 및 약품비 지출 현황

<표 2> 2000년 대비 2009년 요양기관종별 건당진료비

<표 3> 2000 대비 2009년 요양기관별 연간(외래+입원) 급여비 규모 (단위:천원)

 조제료·약품비 급증…재정 위기 초래

정부는 1999년 9월 17일 의약분업 최종 시행안을 발표한 자리에서 "의약분업 후 기존의 의료비(진찰료+약값)를 병원에서는 진찰료만 내고, 약국에서는 약값만 나주어 내기 때문에 의료비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약분업을 시행하면 재정절감 효과가 발생해 국민의 추가부담이 없거나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보험급여비가 보험료 수입을 해마다 1조원 가량 앞지르는 적자 상황에서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비용이 추가되면서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초래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재정 통합을 추진하는 동안 2000년 1조 3671억원이던 누적수지 흑자는 2001년 1조 8109억원에 이어 2002년 2조 5716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의약분업 이전 매년 1조원 가량 증가 양상을 보인 요양급여비(환자 본인부담 제외)는 2000년 8조 9569원에서 2001년 12조 9548억원으로 3조 9979억원으로 급증했다. 매년 요양급여비가 1조원 가량 증가 추세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급격히 늘어난 3조원은 의약분업에 따른 영향임을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증가한 3조 9979억원의 요양급여비 가운데 의료기관이 1조 5141억원(37.9%)을, 약국이 2조 4837억원(62.1%)을 차지하고 있다.

의협 의사국은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원인을 의사들의 고가약 처방등으로 인한 약제비 증가에 두고 있으나 약제비 증가는 의약분업 이전에는 없던 약사의 조제료에 기인한 바 크다"고 분석했다.

2000년 3896억에 불과하던 조제료는 2001년 1조 4349억원으로 268%(1조 453억원) 증가했다. 2000~2009년까지 약품비를 제외한 약사 조제료로만 18조 4324억원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과학대학 보건행정학과)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제비가 증가한 이유는 기술료가 높기 때문"이라며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조제료·의약품관리료 등 다섯 가지 항목으로 기술료를 주는 나라는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약국관리료가 있는데 왜 의약품관리료가 별도 보상돼야 하는지, 조제료와 조제기본료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급여의 타당성 문제를 거론했다. 아울러 "조제료와 의약품관리료를 처방일수에 따라 91일까지 산정해 주는 것도 약제비를 증가시키는 큰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개원의는 "100정이 들어 있는 약 한 통을 건네주면서 약국관리료(550원)·조제기본료(740원)·복약지도료(680원) 명목으로 1970원을 받아내고, 여기에 별도로 조제료와 의약품관리료를 투약일수에 따라 할증해 받아가고 있다"며 "장기처방을 할 경우 약값보다 조제료가 더 많은 배보다 배꼽이 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이자 변호사인 박형욱 연세의대 교수(의료법윤리학과)는 최근 열린 한국의료법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의사에게 지불된 조제료는 건당 100~500원에 불과했으나 의약분업 이후 약사의 건당 조제료는 2008년 5468원에 달한다"며 "약사의 조제서비스 가치가 의사의 조제서비스 가치에 비해 1000~5000%의 가치를 갖고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재정안정 대책 의원 타격…건당진료비 마이너스

의약분업 시행 10년의 결과는 초라하다. 약사에 의한 의약품 오남용이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고, 건강보험 재정은 위협받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외국에서도 지급하지 않는 조제부문의 급여비 항목과 약품비 증가를 부추긴 약가제도와 정책의 타당성과 비용효과성을 충분히 검증받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등이 노인인구 증가와 의료이용 증가와 맞물려 빚어낸 합작품이다.

복지부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진찰료·처방료 통합(8745억원)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 실시(3158억원) ▲야간가산율 적용 시간대 조정(2076억원) ▲주사제 처방료 및 조제료 삭제(5350억원) ▲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4397억원) 등의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대책을 통해 2조 3726억원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심사기준 강화(9331억원)·급여기준 합리화(5485억원)·약제비 적정성평가(2744억원) 등을 통해 1조 7560억원의 재정을 절감한 것을 감안하면 4조 1286억원의 급여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 상황에서 단기간에 적자에서 벗어난 것은 담배부담금 지원과 함께 의료계에 집중된 건강보험재정 절감 대책이 주효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대책이 의료계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고, 의료계에서도 의원급 의료기관에 영향이 큰 진찰료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2000년 대비 2009년 요양기관종별 건당진료비 가운데 유일하게 감소한 유형이 의원급이라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약국의 건당 약제비가 2000년 1만 628원에서 2009년 2만 3470원으로 121% 급상승할 동안 의원은 2만 4871원에서 1만 8147원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요양기관별 연간급여비 규모에서도 의원은 전체 유형 가운데 가장 낮은 증감률을 보이고 있다. 약국이 10년 동안 685%라는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나머지 유형이 세 자릿수 성장을 구가할 때 의원은 40%대에 머물러야 했다.

국회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설치해야

2008년 보사연 보고서에서 국민 1001명을 대상으로 '선택분업 도입시 어디에서 조제를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87.5%의 환자들이 "의료기관에서 조제를 받겠다"고 응답했다. 의료기관에서 조제를 받겠다는 응답자들이 의료기관을 선택한 이유로는 82.0%가 "약국에 가는 불편과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을 꼽았다.

이런 맥락에서 의협 대의원회가 지난 4월 25일 정기총회에서 제기한 국민선택분업은 직능 전문화를 유지하는데 문제가 있지만 국민 불편을 줄이고, 재정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택분업 형태는 이미 상당기간 검증을 거쳤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약사들의 집단 반발이 변수다.

박양동 '의료와사회포럼' 공동대표는 "현행 의약분업 정책은 기대했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지도 못하면서, 국민에게 심각한 불편과 비용 부담을 안겨주고 있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객관적인 재평가를 통해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의약분업 정책 평가를 통해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거나, 중단하거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은 정책과 행정의 기본"이라고 박 공동대표는 지적했다.

국민 불편의 최소화와 건강보험 재정 증가 문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단순의약품을 판매하는 방안이 현실성이 있다.

약국의 판매독점권이 소비자의 선택권이나 편의성 보다 우선이다 보니 모든 약을 독점하고 있는 약국이 문을 닫은 이후에는 소화제나 두통약 한 알 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윤희숙 KDI 재정사회개발연구부 연구위원은 "상시적인 의약품 재분류 시스템을 도입해 안전성이 확보된 의약품은 약국 이외의 장소에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반소매점 판매약 ▲약국내 자유진열약 ▲약국내 약사약품(BTC) ▲처방약 등 4가지 의약품 분류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의약분업을 평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도 자체가 비용효과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의약분업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나기도 했고, 또다시 재정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첫 걸음은 객관적인 의약분업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규식 교수는 "증가하는 국민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2020년 이후에는 신성장동력은 고사하고 건강보험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국회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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