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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절망의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내민 따뜻한 손

절망의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내민 따뜻한 손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10.03.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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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50년간 의사로서 버려진 아이들·입양아들을 위해 묵묵히 진료실을 지키면서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한 평생 뒷바라지를 한 의사가 있다. 아이들을 진료하다 사망진단서를 쓸 때 친자식을 잃은 것 같아 가슴아파했고, 입양된 부모 밑에서 열심히 생활해 훌륭한 의사가 되거나 사회사업가가 된 것을 보고 내일 처럼 기뻐했던 조병국 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조 원장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기록을 찾을 때 상처를 입을까 걱정해 서류에 '버려진 아이'라는 말대신 '발견된 아이'라고 용어도 바꿨다. 몇해전 75세의 나이로 퇴임을 하고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또 다른 봉사를 시작했다. 오랜시간 동안 부속의원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조 원장을 거쳐간 입양아들은 6만여명이 넘는다. 그렇다보니 '6만 입양아들의 주치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제26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인 조 원장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만났다.

버려진 아이들·입양아 위해 진료

조 원장은 어릴 때 몸이 많이 허약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생활 때 2명의 동생을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 때는 의료시설이 부족했던터라 동생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의과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조 원장은 1958년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3년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후에는 서울시립아동병원(현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의과대학 시절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인연 때문에 1974년 곧바로 진료를 할 수 있었고, 버려진 아이들·입양아들과 함께 했다.

1993년 정년을 맞아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을 퇴임했으나, 후임자가 나서지 않아 전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계속 일을 해왔다. 그러나 정년 퇴임 후 무려 15년이나 아이들을 위해 진료를 더 했지만 어깨 통증으로 진료를 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해 2008년 10월 완전히 퇴임했다. 다행히 부속의원에도 후임자가 정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조 원장은 "몇십년도 더 된 얘기를 가슴속에서 끄집어내다보면 때로는 눈앞에 닥친 일인 양 왈칵 눈물이 쏟아져 당황스럽기도 하며,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다시 겪으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또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음을, 준 것보다 받은게 훨신 많은 사람이었음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선경 기자 photo@kma.org

'아메리칸 스타일'의 시스템 도입

조 원장은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질환 정보를 정확히 기록하는 일에 매진했다. "아이에 대한 정확한 건강정보를 입양부모들에게 알려줘야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조 원장은 낮시간에는 진료를 하고, 밤에는 어깨를 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그 때 너무 무리한 탓에 오른쪽 어깨와 오른팔이 마비되기도 했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입양기관으로서의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도 일조했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시스템을 도입한 것. 이밖에 입양이 되었다가 되돌아오는 아이들, 장애등의 이유로 입양이 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복지타운을 만드는 일도 도왔다. 한국으로 되돌아 온 입양 1세대는 5명인데, 중증질환으로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이밖에 아픈 아이들이 입양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입양 의사를 밝힌 가정에 대한 조사도 철저히 했다. 보험혜택을 줄 수 있는지 여부를 서류를 작성할 때 꼭 표기하도록 한 것.

조 원장은 "입양기관에 부속의원만 있어서는 안된다"며 "아동심리학자, 벌률전문가가 상주하면서 아이들의 건강과 입양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적인 문제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입양 부끄러운 일? "아니다"

"한동안 국내입양보다 해외입양이 많다는 것이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뉴스가 나왔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해외입양이 많다는 것이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조 원장은 고아로 생활하다가 사망한 아이와, 가정에서 입양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사망하는 아이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가정에서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홍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13장의 사망진단서…마음 아파

조 원장은 부속의원에 근무하면서 13장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을 때와 친 자식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의사로서 생명을 구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는 '인간적인 의사'. 조 원장도 친 자식이 아플 때에는 평범한 어머닐 수밖에 없었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아예 보따리를 싸서 고아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그럴 때 식구들에게 가장 미안했어요." 조 원장은 그 때의 미안한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은 자식들 눈치보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사이에 2명의 아이가 사망할 때, 공항에서 아이가 입양을 가지 않겠다며 나뒹굴 때가 가장 가슴 아팠지만 기쁜 일도 많았다. 입양이 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다른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찾을 때, 입양부모들이 아이의 고향을 함께 방문했을 때, "내가 이일을 잘 하고 있구나"라며 보람을 느꼈다고.

조 원장을 인터뷰하는 날 수잔 순금 콕스를 우연히 만났다. 수잔 순금 콕스는 1세대 입양아로 미국에서 생활했으며, 미국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해외입양아로는 처음으로 홀트이사회 멤버로 활동 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절 사회부문 자문위원을 하기도 했다. 이날은 입양을 하기 위해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았다. 조 원장은 "수잔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는 달라

조 원장은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는데에도 큰 몫을 했다. "외국에서는 서류작성할 때 '버려진 곳'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버려진 곳'이라는 표기를 하더라구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자신의 기록을 볼 때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바로잡는 길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경찰서에서 처음으로 아이에 대한 기록을 작성할 때 '버려진 곳'으로 표기하지 말고 '발견된 곳'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입양서류에 'OO에서 버려졌음'이라고 쓰지 않고, 'OO에서 발견되었음'이라고 쓰고 있어요." 그녀가 왜 입양아들의 '대모'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사람을 통해 듣고·보고·배운다

"72년인가, 시립아동병원에서 근무할 때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을 급하게 진료하는 일로 동분서주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전신마비될 상황에 놓일 만큼 상태가 심각했어요. 불구로 살거면 아예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조 원장은 다행히 건강을 회복 했다. 교통사고 이후에는 더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봉사요? 아직 부족하죠. 봉사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조 원장은 지금도 여러 사람을 통해 듣고, 보고,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 77세. 예전만큼 진료를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할 일이 많다.

조 원장은 "여기가 세상의 끝인가 싶을 때 누군가 내미는 따뜻한 손, 그 작은 온기가 세상살이에 큰 힘이 된다는 걸 안다면, 그리고 내 손에도 누군가를 데워줄 온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가 조금은 더 따뜻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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