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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0.02.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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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우·박윤재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1만 5000원

1884년 9월 20일 인천 제물포항에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파견한 의료선교사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마친 후 새로운 선교지로 조선을 선택하고 첫발을 내딛는다.의사 알렌에게 그 해 12월 4일 일어난 갑신정변은 이 땅에 현대의학을 뿌리내리는 단초를 만들어준다. 정변 가운데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자 독일인 외교 고문 뮐렌도르프는 알렌에게 그의 치료를 맡긴다. 조선에서는 이뤄지지 않던 새로운 형태의 서양 외과 의술로 민영익을 완치시키면서 서양의학에 대한 조선인의 신뢰를 확인한 알렌은 입국한 지 네 달여만인 1885년 1월 27일 조선 조정에 서양의학을 시술하는 병원 설립을 공식 제안한다. 고종의 윤허로 병원설립이 빠르게 진행돼 같은 해 4월 10일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재동(현 헌법재판소)에 문을 연다. 고종은 4월 12일 병원 이름을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광혜원(廣惠院)'으로 지었지만, 2주일 후 '사람을 구제하는 집'을 의미하는 '제중원(濟衆院)'으로 바꾼다. '제중'은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준말로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한국 근대의학의 시원 제중원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중원을 통해 한국 의학의 근대화 과정을 되짚어 본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이 출간됐다.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연세의대 교수·해부학)과 박윤재 연구조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가 쓴 이 책은 제중원을 중심으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국의학 100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와함께 서양의학 등 서구 문물을 수용하면서 과거의 모습을 탈색시키며 스스로 외모와 체질을 바꾸어 나갔던 우리의 근대화 과정도 담았다.

이 책은 먼저 사료에 근거한 제중원의 역사를 짚어간다. 제중원이 개원한 이후 운영 책임을 맡았던 알렌은 1887년 9월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으로 임명되면서 선교사직을 사임했고, 이어 부임한 헤론은 1890년 7월 이질로 사망했다. 이후 빈턴에 이어 1893년 에비슨(Oliver R. Avison)이 제중원의 운영을 맡게 됐다.그 사이 제중원은 협소한 공간을 확장해 구리개(현재 을지로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지역)로 이전했지만 재정난으로 조선 조정의 지원이 여의치 않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에비슨은 재정적인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제중원 운영주체를 미국 북장로회로 이관시키기로 하고 조선 조정과 협상 끝에 1894년 9월 귀속시킨다.개원 이후 조선 조정이 예산을 지원하고 미국 북장로회가 의료진 파견을 맡아 이원화 체제로 운영해오던 제중원이 미국 북장로회 소속 민간 병원이 된 것이다.1899년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로 돌아간 에비슨은 낙후된 제중원을 현대식 병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친구인 건축가 고든으로부터 병원 설계도면을 기증받게 된다.이어 1900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만국 선교대회에서는  '의료 선교에서 우의'라는 그의 강연에 감명받은 클리블랜드의 대부호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가 1만달러를 기증하면서 제중원 현대화 계획은 무르익는다.그러나 선교사업의 방향에 대한 선교회 내부 이견과 조선 조정의 병원 부지 무상제공 약속 등이 지연되면서 성과를 얻지 못하다가 1902년 세브란스가 부지매입대금 5000달러를 추가로 지원하면서 남대문 밖 남산 기슭의 복숭아골(현 서울역 앞) 대지를 확보하게 된다. 1902년 첫 삽을 뜬 복숭아골 제중원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 세브란스기념병원으로 이름지어졌고, 2년여의 공사끝에 1904년 9월 23일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으로 문을 열게 된다.

이어 책에서는 러·일 전쟁이후 조선 침략을 본격화한 일본 통감부 주도로 1908년 문을 연 대한의원과 1909년 전주에 처음 문을 연 이후 1910년부터 각 도에 본격적으로 세워지게 되는 자혜의원 등 관립병원의 역사도 돌아본다. 이와함께 의학교의 발전과 역사, 한국어 해부학교과서 발간,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와 독립운동, 의사회 조직 생성, 근대화 초기 의사들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서양의학이 도입되면서 함께 만나게 된 서양 약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제중원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약은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금계랍)이었는데, 진통제나 해열제로도 쓰였다. 1896년 <독립신문>에 퀴닌광고가 실렸는데 국내 약품광고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어 일본인 매약상을 통해 인단·용각산·건위고장환·오타위산·중장탕·건뇌환·대학목약 등 서양 약이 전해졌고, 국내에서는 1897년 동서의학을 절충한 소화신약 '활명수'가 나오게 된다.약과 관련한 각종 제도와 대형 약방의 출현, 제약업계의 태동 등도 살펴본다.

이와 함께 의료선교가 가져온 허와 실을 되짚어보고 각종 두창을 몰아낸 우두법 시행과 콜레라와 검역 등 각종 전염병과 연관된 사회상을 의료사와 함께 엮어낸다.또 한센병·결핵·성병에 얽힌 시대상황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의학사 산책'코너에 연재된 글을 모아 모두 5부 334쪽으로 꾸민 이 책은 각 장마다 가득한 역사적 사료가 눈길을 모은다. 100년이 훨씬 넘은 설립 초 제중원의 모습과 의학교 교육과정을 담은 사진을 볼 수 있고, 서양의학 뿌리내리기에 중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면면도 그대로 옮겨져 있다. 또 1885년 작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알렌의 의학진단서와 각종 교육자료, 제1회 의사시험 합격증, 각종 언론 광고문 등 사료가치가 높은 희귀 문서도 볼 수 있다.이 책에 소개된 사료 대부분은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소장품이다(☎02-5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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