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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이런 법 아시나요? '의심처방, 성실응대법'

coverstory 이런 법 아시나요? '의심처방, 성실응대법'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10.01.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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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의심스럽다" 약사 전화 안받으면 벌금 300만원
시행 2년 반동안 처벌건수 '0' 악용 소지만 남겨

Cover Story

제17대 국회 임기를 1년여 앞둔 2007년 4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법 개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장향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은 '처방전 내용이 의심스럽다는 약사의 문의 전화에 즉시 응하지 않은 의사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

이른바 '의심처방, 성실응대법'으로 불리던 이 법안은 7월 2일 본회의 의결을 거쳐 27일 공포, 시행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2년 6개월째를 맞고 있는 이 법은 과연 의-약사간의 업무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법적 실효성 및 기대효과는 얼마만큼 달성되고 있는가. 본지는 의료계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의료법 제18조의2 제4항' 신설을 둘러싼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

약사가 불리하니 의사도 처벌하라?

당시 법안을 심의한 복지위에서는 개정안의 법적 타당성·실효성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의심스런 처방에 대해 의사에게 문의하지 않고 조제한 약사를 처벌하는 규정이 약사법에 있으므로 의사의 응대의무도 두는 것이 형평에 맞는다는 입장과 ▲단순히 전화를 받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병용금기 등 '의심처방'은 이미 전산시스템에서 걸러지므로 법적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맞섰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의원들 사이에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상당히 깊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찬성측 논리는 딱 한가지였다. 약사법상 의심처방을 확인하지 않고 조제한 약사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의사의 응대의무와 처벌 규정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것. 또 징역형은 너무 무거우므로 의·약사 모두 벌금형만 내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의사의 처벌규정을 신설함과 동시에 약사의 처벌수위는 낮춤으로써 의약사간 형평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안의 근본적인 타당성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K의원은 "대한민국 어느 법에 전화 빨리 안받는다고 300만원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나? 너무 원시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A의원은 "의사가 환자를 보다 말고 전화를 받으라고 법적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은 의료현장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성토했다.

법안에는 응급환자 진료 등 의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도 면책되는 규정들이 포함돼 있지만, 복잡다양한 진료실 상황을 단지 몇 개의 예외규정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철저히 무시된 '반대' 논리들

의-약사간 처벌의 형평을 맞추자는 논리는 얼핏보면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의 판단은 현행 법 조항이 가지고 있는 애초의 목적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내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시 법안소위 회의에서도 한나라당 K의원은 "당시의 약사법 입법취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회의실 안에 있던 국회의원·전문위원 그리고 복지부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했으며, 결국 법안소위는 입법취지를 알아보는 수고 대신 K의원의 주장을 묵살하는 쪽을 택했다.

장향숙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과 동시에 약사법 개정안도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는 약사가 의사에게 의무적으로 문의해야 하는 경우로서 ▲의약품 품목 허가 또는 신고를 취소한 의약품이 기재된 경우 ▲의약품의 제품명 또는 성분명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병용금기·연령금기 의약품이 기재된 경우 등 세 가지를 적시했다.

2007년 4월 17일 열린 법안소위에 의료계를 대표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윤창겸 경기도의사회장은 "이들 경우는 모두 전자처방시스템으로 다 걸러지는 유형들"이라며 "현재 전자처방시스템을 사용하는 의료기관이 95%에 달하므로 약사가 처방전 내용이 의심스럽다며 문의할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 이 모씨는 "컴퓨터 시스템이 있더라도 연령·병용 금기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생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통계를 말해보라는 한 의원의 요구에는 "그런 통계는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대체조제 요구 전화 안받아도 벌금형?

윤 회장은 특히 "약사로부터 문의 오는 경우의 80~90%는 대체조제에 동의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이 시행될 경우 의사는 대체조제 문의 전화를 응대하느라 환자 진료에 큰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복지부 이 본부장은 "의사가 과연 그 정도로 대체조제 관련 전화를 받는지에 대한 통계자료를 (복지부가) 갖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윤 회장의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주장할 때는 통계가 필요없고, 다른 사람에게는 객관적인 근거를 요구한 것이다.

이같은 복지부 공무원의 일관되지 못한 자세는 국회 내에서 정부의 공신력을 실추시키는 매우 불미스런 행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이날 법안소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 윤 회장의 주장은 이 개정안의 결정적인 취약점을 꼬집는 것이었다. 진료실로 걸려온 전화의 목적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의사에게 '즉시 응대' 의무를 부여하고 처벌 규정까지 두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K의원과는 다른 한나라당의 K의원은 "의사 입장에서는 처벌 받는 전화와 처벌을 받지 않는 전화가 구분되지 않는다"며 "(법이 시행되면) 의사는 약사의 문의에 굉장히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 역시 쟁점화 되지 못한 채 강행처리 분위기에 희석돼 버렸다. 법안소위는 이날 장향숙 의원과 복지부의 강한 요구에 떠밀리듯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처벌건수 '전무'…의사 90% "달라진 것 없다"

그렇다면 법 시행 이후 2년 반 동안 과연 변화된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1월 20일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가 의사의 응대의무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당 의사를 형사고발한 건수는 법 시행 이후 2010년 1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복지부 의료자원과 전해성 사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형사고발은 개인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는 (복지부가) 통계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본지가 의사 독자 2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9.6%(253명)가 '응대의무 위반으로 처벌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해 이 법조항이 실질적으로 기능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처벌사례가 거의 전무한 것에 대해 복지부는 오히려 의사의 응대의무 규정이 강력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처벌이 무서워서 의사들이 약사의 문의에 성실히 응대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

그러나 본지 설문조사 결과는 이같은 주장이 억측임을 드러내준다.

'최근 1~2년 사이에 처방전 내용이 의심스럽다는 약사의 문의를 받아본 적이 없는가?'란 질문에 응답자의 46%(118명)는 '없다'고 답했으며, '연간 1~2회'에 불과하다는 답변이 35%(89명)에 달했다.

특히 '이 법 시행 전후를 비교해 약사의 문의 횟수나 내용에 변화가 있었는가?'란 질문에는 '전혀없다'는 응답이 49%(125명), '거의없다'가 41%(103명)로 조사됐다.

무엇보다도 '의심처방, 성실응대법'이 시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의사가 58%(147명)에 달한다는 점은 일선 의사들에게 이 법의 존재감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갈등 조장 법' 만드느라 중요법안은 뒷전

그렇다면 '의심처방, 성실응대법'은 시행과 동시에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과정이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아도 되는 것일까?

윤창겸 회장은 "가장 큰 문제는 의사와 약사를 대결구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의심처방의 확인 문제는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사안인데, 굳이 약사에게 의사 고발권을 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17대 국회에서 '의심처방, 성실응대법'이 만들어지는데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두 번, 복지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세 번,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두 번, 법사위 산하 법안소위가 두 번, 총 아홉 차례에 걸쳐 회의가 열렸다.

이처럼 시간과 정력을 들여 개정된 법률이 공포와 동시에 무용지물됐다면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제17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은 무려 305개.

그 가운데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료급여와 함께 자활급여·주거급여를 줌으로써 최저생활을 보장토록 하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고경화 의원 대표발의), 수혈로 인해 억울하게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 사람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토록 명시한 혈액관리법 개정안(김원웅 의원), 노인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학대행위를 금지한 노인보호법안(안상수 의원), 장기기증자에 대한 취업 등 차별대우를 금지한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 개정안(장향숙 의원) 등이 들어 있다.

지난해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서둘러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존엄사법도 이미 4년 전에 안명옥 의원이 의료법 개정안으로 제출했던 것이다. 이들 법안은 '단 한차례'도 심의받지 못한 채 휴지통 속으로 버려졌다.

임기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제18대 국회, 1월 20일 현재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모두 708개에 이른다. 한정된 기간 동안 모든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의원에게 옥석을 가리는 혜안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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