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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관리, 흩어진 업무

혈액관리, 흩어진 업무

  • 김인혜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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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4년 국립혈액원을 보사부 산하에 개설하면서 혈액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정부는 58년 국립혈액원의 시설과 장비를 대한적십자사에 이관, 혈액사업의 직접적인 업무를 적십자사에 위임함으로써 혈액관리 업무에 상대적으로 덜 관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이르러 매혈 등 혈액수급의 안정이 시급히 요구되자 정부는 70년 6월 혈액관리법을 제정해 혈액사업의 관리 감독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으나 10년 뒤인 80년 혈액관리법 개정을 통해 대한 적십자사에 혈액사업을 전적으로 위임, 실질적인 정부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시켰다. 이후 현재까지 헌혈 조직 육성 및 혈액제제 생산 공급 등 헌혈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업은 대한적십자의 주도하에 관리되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혈액사업을 적십자 단독으로 추진하진 않는다. 아직까지 혈액관리법에는 혈액관리 사업의 책임이 복지부에 있음이 명시돼 있으며 운영 조직도 복지부와 산하 단체간의 유기적 협조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 산하 자문기관으로 국가혈액관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으며 대한적십자사에도 자체 혈액관리국 및 혈액수혈연구원과 혈장분획센터, 검사혈액원, 검사의뢰혈액원 등의 기구를 운영토록하는 등 복지부와 각 시·도의 적십자사 혈액원과 관계를 맺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혈액관리법에 혈액사업 감독의 책임이 복지부에 있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혈액사업관리를 위한 복지부 자체의 구체적인 지침이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복지부내 혈액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도 보건정책국의 보건산업정책과와 보건자원정책과, 국립보건원내 방역과에 분산돼 있는 등 혈액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조차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혈액제제와 관련된 업무는 보건산업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혈액원 육성이나 혈액수가와 관련된 업무는 보건자원정책과에서, 또 혈액분획제제의 수급조절 및 원료혈장 수입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각각 처리하고 있다.

결국 복지부 보건정책국의 46개 분야 업무중 하나가 혈액수급대책 수립과 혈액수가 관리에 해당하며 보건자원정책과도 15개 업무중 하나로 혈액수급 관리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복지부내의 잦은 인력 교체에 따른 혈액사업 전문 담당자의 부재는 정부 주도하의 일관된 혈액 사업 정책을 추진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연구자는 지적하고 있다.

한편 81년부터 국가 혈액사업을 위임받은 대한적십자사의 형편도 복지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십자사는 지난 81년 이후 국내 전체 헌혈의 98.5%에 해당하는 혈액을 헌혈받고 있으며 전국 모든 지역에 혈액성분제제를 공급하는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때문에 적십자사 자체적으로 혈액관리국을 운영하도록 돼 있으나 전국에 분할된 총 16개의 혈액원에서는 정해진 구역에 한해 채혈과 공급을 조절하고 있어 혈액수급이 신속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국 대한적십자사도 전국의 혈액원에서 확보한 혈액을 대상으로 표준·확인검사 등의 업무를 전담해야 하나 조직의 한계상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혈액분획제제의 수급조절 업무를 맡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식약청 혈액제제과는 혈액학적 생물학제제·진단제제의 기준 및 시험방법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도록 규정돼 있으나 현재 국내에서 실시중인 혈청학적검사만으로는 항체형성이전 바이러스 검출확인에 한계가 있어 품질관리 수준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외에도 연구자는 식약청이 외국의 회수·폐기 조치 혈장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점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혈장분획제제 제조업소의 사후관리를 일반 지식만 가진 지방청의 약사감시 인력이 담당하고 있다고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혈액관리 체계의 미비는 혈액사업 관련 전문가의 응답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연구팀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중 단 한명도 혈액관리에 `적절한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고 응답하지 않았으며 `임상에서의 혈액사용에 관한 국가 정책 및 지침'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수혈 감염 모니터와 감시·평가, 혈액 운송 등도 적절히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답해 혈액사업에 있어 정부 역할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같은 정부의 혈액관리 체제의 미비는 정부의 지도 감독 규정의 미비에 연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 현행 관리법에 따르면 국가는 헌혈자선별 및 관리나 혈액제제의 품질관리 등에 대해 지도 감독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실제 제출되는 보고서는 단순한 헌혈 인구조사나 공급 혈액 수량 및 불량사유 등에 국한된 것으로 나타나 정작 중요한 헌혈자 사후관리와 혈액검사의 정도관리, 혈액 제제의 품질관리 등 주요 항목에 대한 관리·감독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현행법상 혈액 및 혈액성분제는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어 이를 제조하는 업소는 반드시 GMP 기준에 의한 허가 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혈액제제의 품질관리는 제조업 허가와 유사하게 혈액원 인가제도로 실시되고 있으며 인가기준 또한 매우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각 혈액제제에 대한 별도의 제조품목 허가제도가 실시되지 않아 혈액성분제제의 최종산물에 대한 품질검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문제는 수혈과정과 사후관리도 허술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99년 개정된 혈액관리법에 따르면 수혈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신고토록 돼 있음에도 실제 수혈부작용에 대한 보고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는 실제 부작용 발생빈도가 낮은 것이 아니라 기관 자체에서 보고를 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의 수혈부작용에 대한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는 거의 집계되지 않고 있으며 역학조사시 필요한 자료도 전무한 실정이다.

연구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몇 년동안 수혈로 인해 간염이나 에이즈, 말라리아 등에 수혈자 일부가 감염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해 수혈로 인한 말라리아 환자가 1례로 보고됐으나 작년 한 해 동안 말라리아 발생 위험지역에서 헌혈한 사람은 모두 66,47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적십자 혈액원 조사 결과 전체 헌혈자의 혈액중 4.1%는 출고 부적격 혈액으로 밝혀졌다. 100,936단위의 혈액이 간염이나 매독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검사 이상 혈액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편 연구자는 혈액사업의 허점이 정부의 재정지원 열악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의 재정은 대한적십자사 보건기관 특별회계 규정에 따라 대부분 의료기관에 공급한 혈액대금에 의존하고 있다. 각 지역 혈액원에서 정해진 분담금을 적십자사에 매년 납부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전체 수입의 15% 불과할 뿐이다.

중앙 정부에서 소액의 보조금이 지급되긴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은 그나마 없다. 게다가 지난 95년부터 3년동안 혈장 성분 헌혈 활성화를 위해 매년 8억원씩 지급되던 보조금 마저 끊긴 상태여서 혈액사업에 투입되는 재정은 극히 열악한 형편이다.

때문에 적십자사는 현재 알부민 완제품을 생산하는 제약산업에 진출할 의사를 밝혀 재정난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연구자는 적십자사가 알부민 완제품을 생산할 경우 기존 제약업체와 중복 투자하는 셈이 돼 채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수요가 줄고 있는 알부민 완제품의 과잉공급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혈액제제 공급의 독점권을 쥐고 있는 적십자사가 알부민만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게 되면 적십자사를 통해 공급되던 12가지의 혈액 추출 성분의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알부민을 제외한 11가지 성분의 분획제제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부의 혈액관리 사업 체계 미비와 열악한 재정 지원, 또 적십자사의 사업 진출 등에 대해 연구자는 정부가 강력히 국가 혈액사업에 관여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분산돼 있는 업무를 전체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조직을 지정, 혈액 사업의 효율화와 안정화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는 우선 복지부내 혈액담당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혈액관리원(가칭)의 역할을 중점으로, 혈액원의 헌혈과 의료기관의 수혈 업무 등 실무와 기술적인 측면의 지도감독 업무를 수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혈액 및 혈장분획제제를 맡도록 하는 등 기존 기관들의 역할을 강화하도록 규정을 개선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는 결국 혈액관리를 국가 지도 감독체계하에 구축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부가 혈액관련 정책을 수립함과 동시에 그동안 공공서비스에 의존했던 혈액원을 민간에 개방,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연구자는 또 혈액안전과 관련된 국내 법 규정을 신설함과 동시에 적십자에 혈액사업을 위한 독립적 예산을 배정, WHO 권고안인 2%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 외에 연구자는 혈액사업의 안정적 지속을 위해 채혈과 검사 등 모든 비용에 혈액수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제안과 함께 혈소판 성분 채혈 제도를 확립, 성분헌혈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헌혈자 관리 강화와 수혈부작용 보고체계 구축은 전문인력 확보와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제언, 혈액사업 전반에 관한 연구를 통한 국가 혈액사업의 안정적 정착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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