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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전진찰 바우처 제도..선물인가 족쇄인가?

시론 산전진찰 바우처 제도..선물인가 족쇄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11.2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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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안나(서울 아이온 산부인과)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모든 임산부가 e-바우처 카드를 이용하여 지정 요양기관에서 20만원 한도 내에서 산전 진료비 및 분만비로 사용할 수 있다고 공표하였다.

▲최안나 원장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정부가 임산부를 지원하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누구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가장 환영하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이 때문에 매우 큰 어려움에 처했으며 지난 15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의원 총회에서는 투표를 통해 이 제도를 거부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바우처 제도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모든 임산부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서 산부인과에는 조건을 걸어 지정병원만 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첫째, 초음파를 비롯한 산부인과 비급여 수가를 공단과 위탁기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가격비교 사이트처럼 공시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으로 복지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임산부들이 자유로운 수가비교를 통해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둘째, 바우처 제도를 위한 임신 확인서를 무료로 발급하도록 하였다.

진료비 비교 공개는 주유소 가격 공개와 다른 문제이다. 의료 수가를 기름 값처럼 가격비교해서 찾아가라는 정부의 발상도 황당하지만, 문제는 이를 통해 수가 경쟁을 유도하여 비급여 수가를 하향평준화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정부는 산부인과에게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 기관은 참여하지 말라고 선택권을 주었다지만 언론을 통해서는 모든 임신부가 전국의 산부인과에서 임신 42주까지 전 기간에 걸쳐 분만비를 포함하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어, 임산부 진료를 하려는 산부인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가의 공시적 공개와 이를 통한 수가 경쟁이라는 족쇄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제도는 과연 임산부를 위한 제도인가?

병의원간 덤핑 경쟁은 악순환의 고리를 타고 의료의 질 저하를 일으키며 편법 진료를 양산하여 그 피해가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이 제도로 수가 경쟁력이 있는 대형 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게 되어 의료계중 양극화가 가장 심한 산부인과 현실에서 소규모 의원 폐업이 가속화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며, 이로 인한 피해는 병원 선택권이 없어지고 가까운 지역에 분만병원이 없어 대도시 원정출산이라는 현실에 내몰리는 임산부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또한 이 바우처 제도는 산모들에게도 불편하다. 20만원을 지원 받기위해 병원에서 임신 확인서를 받아 공단 또는 위탁받은 금융기관에 제출하고 이용권을 발급 받아야 하며, 임신 기간 내에 비용이 남으면 못쓰게 되고 진료를 원하는 병원이 참여안하면 지정병원을 찾아 옮기거나 혜택을 못 받게 된다.
임산부를 지원하는 좋은 제도를 왜 지정병원에서만 하게 하여 차별적으로 운용하는가? 이번 정책이 진정한 임산부 지원 정책이라면 조건 없이 모든 산부인과가 참여하게 하여 모든 임산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가 산부인과만의 문제인가?

당장은 아니지만 이번 바우처 제도의 전제 조건인 비급여 수가 특히 초음파 수가의 공시적 공개는 초음파 급여화를 앞당기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는 보장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계속 초음파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현재 초음파 수가의 범위가 다양하고 재원이 충분하지 않아 미뤄지고 있다. 타과 초음파에 비해 입체 초음파 등 고가의 장비를 쓰면서도 과당 경쟁으로 인해 수가는 가장 낮은 게 서글픈 산부인과의 현실이다. 여기에 이번 바우처 제도로 수가가 공개되어 자체 경쟁에 의해 수가의 하향 평준화가 이뤄지면 그 다음엔 산과 초음파의 급여화로 이어질 것이며 나아가 다른 진료 과목의 초음파 급여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또한 비급여 수가 공개는 비록 이번에는 산부인과에만 적용이 되겠지만 이것이 효과적으로 수행이 된다면 다른 과에도 그런 요구가 번지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려워 비급여 수가 공개 바우처는 산부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의료계의 족쇄로 이어질 수 있다.

비급여 수가는 지금도 보건소에 신고하고 진료하고 있으며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에게 당연히 알려드리고 진료한다. 수가를 환자들에게 비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격비교 사이트처럼 공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병원 홈 페이지 등에 비급여 수가를 공개하는 것은 의료법상 환자유인행위로 금지되어 왔는데 정부가 이를 장려하고 나선 것이고,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데 조건을 걸어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직업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적인 요소가 있다.

또 임산부 지원을 별도의 복지 예산에서 지급하지 않고 진료비 형태로 지급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임신이 항상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약 20%정도 유산과 조산이 되는데 이로 인해 지원금이 낭비될 우려가 있으며, 비급여 진료비를 임산부에게만 보험기금에서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도 있다.

정부는 분리하고 통치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그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것이 의료계인 것은 그동안의 정책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안다. 이번에 산부인과는 대형과 소형, 바우처를 신청하는 병원과 신청하지 않는 병원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산부인과 개원가는 정부의 바우처 안에 대하여 함께 단합하여 거부해 나가고 있으며 정부가 산부인과 의료계의 희생이나 감시를 전제하지 않아도 되는 출산 장려금 정책으로 변경할 것을 원하여 신청 하지 않은 곳이 더 많다. 한명의 환자를 잘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시스템을 막는 것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데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며 다음과 같이 정부에 요구한다.

“ 임산부 지원정책은 적극 찬성하지만, 비급여 수가의 공시적 공개를 전제로 한 바우처 신청은 거부하며 정부는 모든 임산부에게 제한 없이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라. ”

이는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진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으로 산전 진료를 받던 안 받던, 병원에서 분만하든 조산원이나 집에서 분만하든 분만을 한 모든 임산부를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출산장려정책일 것이다. 정부는 열악한 급여 재정으로 비급여 수가까지 통제하려는 정책을 포기하고,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으로 심각한 만큼 별도의 예산 편성으로 출산한 산모들에게 조건 없이 출산장려금을 지급해야 한다. 임산부 진료를 담당하는 일선 산부인과가 이렇게 반발하는 정책이 진정으로 임산부를 위한 정책인지 정책 입안자는 지금이라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이 위기를 우리 모두의 단결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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