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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행사 첫 주관…시마오 서울 총회

국제행사 첫 주관…시마오 서울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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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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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100년... 질곡을 넘어 새 시대로]

▲ 1971년 10월 13∼1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 총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400여명이 참석했다.

의협 창립 사료 발굴 역사 되찾다(1968)

1967년까지 의협의 공식 창립연도는 조선의학협회의 창립일인 47년 5월10일로 이날을 기념해왔다. 그러나 1967년 10월10일 상임이사회에서 창립연도 검토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이사회에서는 9인 자문위를 만들어 역사를 추적했으며 1968년 2월 일제치하에서 순수하게 한국의사만이 주축이 돼 활동한 의사연구회의 존재를 발굴해냈다. 의사연구회의 창립은 1908년 11월 6일이나 임원을 선출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11월 15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이를 소급해 당시 60주년를 기념하면서 창립일로 굳어졌다.

정치세력화 초석 '대한의정회' 창립(1969)

일본의사연맹의 대외활동에 착안, 명주완 회장 때인 1969년 12월 26일 10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가톨릭의대 강당에서 발기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1970년 1월 5일 1차 회의부터 본격적인 창립준비에 들어가 4월 29일 춘천에서 열린 의협 정기총회에서 역사적인 창립(초대 회장 이중설)에 이르게 된다. 의정회는 창간취지문에서 의협의 방계단체로 비여비야(非與非野)의 정치기능단체를 표방, 37여년간 의협의 대외활동을 지원해왔으나 지난해 4월 발생한 국회 금품로비 파문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의정회의 활동은 지난해 11월 15일 출범한 대외사업추진본부가 이어가고 있다.

회원정기신고 협회 경유 폐지(1971)

1971년 8월 20일 당시 보사부는 의사회원이 정기신고를 할 때 의협을 경유하는 원칙을 폐지했다. 정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긴 의료인 정기신고 서식에서 '중앙회 경유'란을 삭제했다. 당시 보사부는 "단체의 자율적인 육성 및 민원업무의 간소화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의협의 강한 반발을 샀다. 서울시 역시 "민주행정의 정도가 아니다"며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1971년 정기신고결과 의사는 62.53%가 신고를 마친 것으로 나와 의적부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의료계 요구가 거셌다. 의협은 "협회 경유 절차를 폐지해도 의사의 신고율은 별 차이가 없는데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시책을 폈다"고 반발했다.

국제행사 주역 부상…시마오 서울총회(1971)

 대한의사협회는 1971년 제7차 아시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CMAAO·시마오) 총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국제 의학계에 한국의학계의 가능성을 알렸다. 이 해 10월 13~1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시마오 서울총회는 2년동안 의협과 정부가 함께 준비한 '한국 의학계의 자존심'이었다. 1961년 시마오 정회원으로 가입한 의협은 1969년 시마오 총회 유치에 성공한다. 의협은 정부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데도 성공, 첫 시마오 서울총회를 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었다. 67년 세계 최초로 간이식 수술을 한 토마스 스타즐 미 콜로라도의대 교수를 비롯해 1964년도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페도르 리넨 당시 서독 뮌헨대학 교수 등이 참석해 이목을 받기도 했다.

10년 뒤인 1981년 두 번째 시마오 서울총회를 개최할 수 있었던 힘도 이때 쌓인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1981년 9월 14일 열린 제12차 서울총회는 의협이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역량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총회에서 문태준 의협회장이 제15대 시마오 회장에 취임했다.

전문의 자격시험 의협 이관(1973)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주관하던 전문의자격시험 업무가 1973년 의협에 이관됐다. 전문의료인 양성의 주도권을 의협이 갖게돼 의협이 공신력이 높아지게 된 변화였다.

1952년 전문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7년간은 서류심사만으로 전문의를 뽑는 방식이었다. 이후 1959년부터 자격시험을 통해 전문의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1964년 전문의 수련병원 인정제도를 채택하면서 의협이 매년 수련병원 운영실태를 조사하도록 했다가 이를 병협에 이관시키면서 의협은 1973년부터 전문의자격시험업무를 맡도록 했다.

이에 따라 그해 2월 13일 열린 제15회 전문의자격시험부터 의협이 주관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시험사상 자격시험을 민간단체가 주관한 최초사례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해 첫 시험의 성공 여부에 따라 의협의 공신력이 판가름나는 것은 물론, 다른 단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은 시험출제에서부터 보안까지 성공적으로 시험을 주관했으며, 그 해 6월 합격자 369명에게 합격증을 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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