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
원가에도 못미치는 의료수가로 희생을 강요하며 시작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그렇고, 의약분업에 반대하고 나선 의사들은 도둑놈 취급을 당해야 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의료비 쥐어짜기에 나서더니 의사의 진료권을 약사에게 떼어내 주려는 성분명처방을 실시하겠다며 시범사업을 강행했다. 의사를 가해자로 규정한 채 의사가 과실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가칭)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의료정책이 강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의료를 공공재로만 규정하고, 강력한 정부 개입을 통해 의료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1970년대식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평등주의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수가·저보험료의 틀을 고집해 온 지난 10년 동안의 허송세월이 빚어낸 결과, 국민·의사·정부 모두에게 불만과 불신의 골만 깊게 했다.
의료계는 대정부 투쟁도 불사하겠다며 참여정부 임기말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의료계가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인다고 해도 국민 여론과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의협 집행부가 밤낮없이 뛰어다닌다고 해도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데는 한계가 있다. 회원 각자가 국민과 사회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질병 뿐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의 문제에 참여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더불어 지방의회와 국회의원 후원에 이르기까지 진료실에서의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다.
1정당 가입하기 운동을 벌이는 지역의사회의 적극성이, 보건의료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시민사회단체를 만든 희생정신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