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8 12:19 (일)
AI 망령 살아나나

AI 망령 살아나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3.16 09:0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상훈(동아일보 기자.복지의학팀장)

2003년 12월. 충북 음성지역에서 닭들이 집단 폐사했다.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홍콩조류독감 바이러스로 확인되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며칠 후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졌다. 예상했던 대로 홍콩조류독감 바이러스였다.

2004년 1월. 조류독감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판데믹(Pandemic·대유행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국민의 공포심은 극도로 커져 급기야 공황상태에 빠졌다. 닭고기 소비는 뚝 떨어졌다. 가금류 업체들은 줄 도산했으며 어떤 자영업자는 시름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제야 익힌 닭고기는 조류독감과 연관이 없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소비자단체들이 닭고기 소비를 촉구했고 매주 수요일을 '치킨 데이'로 정하자는 캠페인이 이어졌다. 가금류 업체들은 국산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리면 2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3월. 경기 안성지역 고병원성 AI 발생 농가에서 닭의 살 처분과 매립작업에 투입됐던 30대 후반의 한 공무원이 AI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사는 이 공무원을 'AI 의심환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2003년 '조류독감 공황'이 지난 후에도 조류독감은 여러 차례 발생해왔다. 그러다보니 '내성'이 생긴 것일까? 이제 소비자들은 과거처럼 닭고기를 멀리하지도 않으며 양계농가나 유통업자가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조류독감이란 이름이 마치 사람에게 바로 전염될 것 같다는 이미지를 준다고 해서 조류인플루엔자(AI)로 바꾸기도 했다. 차분해진 대응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다시 AI의 인체 감염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술렁임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기사에 따르면 이 공무원은 극심한 독감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AI 감염을 의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의 설명 자료는 많이 달랐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공무원이 AI 감염자의 가장 흔하고 큰 특징인 고열이나 폐렴 등의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어 AI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공무원은 배 부위가 굳어지고 열이 나는 등 뇌수막염 증세에 더 가깝다"고 덧붙였다.

여러 '정황'을 봐도 AI 감염은 아닌 것 같다. 보통 AI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10일 정도다. 그러나 이 공무원은 살 처분 작업을 마친 후 한 달 이상 '멀쩡한' 상태다. 또 작업에 투입되기 전에는 항 바이러스제제인 타미플루도 복용했다.

그렇다면 기사는 'AI에 감염된 가금류를 살 처분하는 작업에 투입됐던 한 공무원이 독감 증세를 보여 조사를 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AI 인체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라고 작성해야 옳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오히려 '공포 조성하기'에 앞장선 듯한 느낌이었다. 살 처분에 참여한 안성지역 공무원들이 살 처분하기 최소한 2주 전에 독감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살 처분이 끝난 후에도 10시간이 지나서야 접종을 했다고 비판하는 보도를 접하면서 필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다시 '무조건 터뜨리고 보는' 경쟁을 하려는 것인가?

독감예방접종은 일반 독감과 AI가 동시에 인체에 감염될 경우 새로운 돌연변이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람 간에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물론 예방접종이 빠를수록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10시간 정도는 큰 무리가 없다.

결국 이 '사태'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무원이 뇌수막염으로 판정받았기 때문이다. 차분한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3년 전의 공황 상태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corekim@donga.com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