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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에서 맞은 한가위

블라디보스톡에서 맞은 한가위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6.10.0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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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그린닥터스 실크로드 의료봉사팀 4~8일 러시아 진료
낙후된 블라디보스톡 의료환경…의사월급 청소부보다 적어

▲ '실크로드 의료대장정' 의료봉사팀이 지난 4~8일까지 4박 5일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인근 의료낙후지역을 찾아 5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러시아 연해주에 위치한 외곽지역 따브리찬까.한국에서는 한가위 날이기도 했던 지난 6일, 군데군데 창문이 깨지고 냉기가 감도는 따브리찬까 병원에 이른 아침부터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쯔네쯔나 베나라는 한 여성은 한국인 의사가 혈압을 재기 시작하자 손을 바르르 떨었다.그녀는 "숨이 차고 위가 안좋아 속이 쓰리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의사의 청진과 처방을 받은 뒤 그녀는 "스빠씨바(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의사의 볼에 제 볼을 비비며 감사함을 드러냈다.

의협과 그린닥터스가 의협 100주년을 기념해 공동으로 주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진행한 '실크로드 의료대장정'의 의료봉사팀이 지난 4~8일까지 4박 5일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찾았다.

진료팀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외곽지역으로 가 의료환경이 낙후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진료했다.이들은 라즈돌로예 병원·따브리찬까 병원·블라디보스톡 동부교회 등 세 곳에서 총 5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번 러시아 진료팀은 내과·외과·안과 의사 등 4명과 치과의사 2명 등 총 16명으로 꾸려졌다.특히 이들은 유난히 길었던 이번 한가위 연휴도 고스란히 의료봉사에 반납한 채 오지의 러시아인 및 한국 교민들에게 훈훈한 인술을 펼쳤다.

장동수 진료단장(장동수치과원장)은 "추석연휴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의료봉사의 길에 선뜻 동참해준 단원들이 자랑스럽다"며 "특히 따브리찬까 지역에서 환자가 쇄도해 일손이 모자랄 정도였지만 열심히 진료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료팀을 찾아온 환자들의 연령대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중년층 이상의 환자들은 대부분 안색이 좋지 않고 비만·천식 등의 질환에 많이 노출돼 있었다.

양세정 전공의(고려대의료원 내과 R4)는 "이곳 환자들은 식생활 특성상 비만 환자가 많았고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많이 앓고 있었다"면서 "환자들이 약을 자체적으로 수급, 일시적으로 복용하고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서승석 교수(인제대백병원 정형외과장)는 "비만으로 인해 피부에 지방 덩어리 등 혹이 난 환자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안과 및 치과에는 연일 환자가 넘쳤다.박영기 원장(부산·서면메디컬안과)은 "단순히 안경처방을 받기 위한 환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백내장이나 녹내장이 꽤 진행된 환자들도 있었다"며 "한 환자는 한쪽 눈이 실명된 채로 의료진을 찾아 안타깝게 했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진이 찾은 지역의 병원장들은 일제히 고마움을 전했다. 쎄르게이 나제진스키병원장은 "라즈돌로예 지역의 의료환경이 21세기 문명에 걸맞지 않을 만큼 낙후돼 있어 미안하다"며 "한국 의료진이 찾아와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이리나 빠비르즈나야 따브리찬가 병원장 역시 "이렇게 외진 구석까지 찾아와 환자들을 돌봐줘 감사하다"며 "한국 의협과 그린닥터스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진료한다니 같은 의사로서 대단하다"고 칭송했다.

한편 이번 의료봉사에는 러시아 그린닥터스 소속 안과·소아과 의사 및 약사 등이 참여해 일손을 도왔다.

 

블라디보스톡의 낙후된 의료환경

 

"의사월급은 청소부보다 적을 정도"


블라디보스톡에서 병원을 가려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한다.80만명에 이르는 인구수에 비해 병원이나 의사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데다 그나마 있는 병원들의 시설과 의료시스템도 매우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15년동안 블라디보스톡에 거주한 한국인 정호상 씨는 "병원에서 오전에 진료를 받으려면 아침 7~8시부터 줄을 서야 한다"며 "대개 일반 병원은 아파트 1층을 개조해 만들어서 통로가 매우 좁고 화장실도 비좁은 등 줄을 서 있기에도 힘이 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블라디보스톡에는 '뜨랑뿡'이라는 응급치료병원이 있고, 외래병원과 입원병원이 구분돼 있는 게 특징이다.외래병원은 각 구역별로 소아과·산부인과 등 전문과목 병원이 있고, 입원병원은 아파트 1층에 주로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의사들은 1주일에 3일 오전·오후로 나눠 진료를 하는데다 그나마 의사들이 지역마다 번갈아가며 진료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을 이용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정씨는 "한국 의료팀이 진료했던 라즈돌로예나 따브리찬까 병원처럼 낙후된 병원이 많으며, 30년이 넘도록 의사를 만나지 못했거나 평생 의사를 보지도 못한 지역도 꽤 있다"며 이곳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귀띔했다.

블라디보스톡에 대형병원이 있기는 하다.10층 빌딩에다 1000병상을 자랑하는 이 병원은 병원이름이 '뜨이시치 꼬에츠네 발리사(1000병상 병원)'일 정도로 유일무이한 대형병원이다.

민간병원은 최근 들어 점차 생겨나고 있는데 주로 치과 위주다.오래된 병원은 대부분 공립병원이라 시설 및 의료시스템이 열악하다.

이곳 의사들의 처우 역시 좋은 편은 아니다.한 교민은 "육체노동을 존중하고 지식노동을 덜 존중하는 사회주의 유습 때문에 아직도 소위 부르주아 계층인 의사의 월급보다 육체노동자인 청소부의 월급이 많을 정도"라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안과 의사인 류드밀라(어린이 시력보호센터장) 씨는 고급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9000루블(36만원)을 간신히 손에 쥔다.이는 블라디보스톡 시 전체 평균 임금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류드밀라는 "이곳 의사들은 수입이 적어 서너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의사 1명당 환자 1만명을 진료해야 하는 실정이어서 의료인이 부족한 상황이고 의료기구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이번 실크로드 의료봉사팀에 대해 "러시아의사회에서는 아직 자선활동에 공적인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외국의사회와 협력해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데 한국 의협에서 세계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펴 뜻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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