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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든 공부든 뭐든지 즐겁게 하세요"

"연구든 공부든 뭐든지 즐겁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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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1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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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영 회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

<고규영 회원>

이름

고규영(49)

소속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

경력

1983

전북의대 졸업

 

1991

전북의대 박사학위 취득

 

1990. 8~1992. 2

코넬대학 생리학교실 박사후 연구원

 

1992. 3~1995. 2

인디애나대학 심장연구소 선임연구원

 

1995. 3~2001. 3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부교수

 

1994. 12~2003.9

과학기술부 창의적진흥사업 연구단장

 

2001. 5~2003. 8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부교수

 

2003. 9~

한국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

 

"기초의학 연구 위해 세상속으로 뛰어든 의과학자"
김용림 회원(경북의대 신장내과 교수)
고규영 교수님은 분자생물 분야에서 이미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국내 최고 의과학자 중 한명으로 꼽힙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기초의학을 하는 의사 과학자의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고,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초 의과학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 교수님은 의과대학 졸업과 동시에 기초의학 연구를 시작하셨는데, 이후 혈관질환에 대한 세포치료제와 관련해 획기적인 연구 결과물들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셨죠.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당뇨병으로 인한 족부궤양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을 발견해 화제가 됐습니다. 이밖에도 그동안 수많은 연구 업적으로 대한의학회에서 주는 '화이자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노벨의학상에 근접한 한국인 의과학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하셨죠.
독특한 점은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서 근무하다가 포항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로 옮겨 본격적으로 생명과학에 투신하셨다는 겁니다.
사실 고 교수님을 몇 번 뵌적은 있어도 개인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만, 기초 연구에 대한 고 교수님의 애정과 열의를 보면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든 구글이든 야후든, 당신이 선호하는 어떤 포털 검색사이트든, 한번  '고규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쳐넣어 보자. 요즘같이 눈만 들면 깜빡이는 버퍼링 문구를 접하는 '정보의 바다' 시대엔 그리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이름 석자 아래 수십 페이지에 걸쳐 경력이나 업적이 나열된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게다가 대중이 궁금증의 촉수를 뻗을만큼 시시콜콜한 사생활 같은 종류와 무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고 교수는 참 '연구 농사'를 잘 지었다. 2002년 대한의학회에서 주는 '화이자 의학상' 수상,  같은 해 대한의사협회가 선정한 '노벨의학상에 근접한 우수 한국인 의과학자 20인'에 선정, 2005년 세계적인 바이오저널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과학자에 꼽히기도 했다.

"사실 한눈을 팔 시간이 없었어요. 트레이닝 기간에조차 실험실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했죠. 그동안 어떤 후회나 유혹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확고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되겠다고 의대에 진학했던 고 교수가 생명과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 건 당시 의대 은사님의 영향이 컸다. 본과 1학년 방학을 틈타 우연히 실험실에 구경갔다가 피펫을 들고 연구에 몰입한 교수님의 모습에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그뒤 은사님의 연구 도우미를 자청하게 됐고, 대학 시절엔 전국 의과대학생 연구 발표회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고.

"당시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네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한다면 환자 한명한명을 고치겠지만, 기초의학자가 돼서 좋은 약을 개발하면 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고칠 수 있을 거라고요. 그 말이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십만, 아니 수천만명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혈관을 재생하는 물질 '콤프앤지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최근에는 당뇨병 합병증의 하나인 족부궤양을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단백질에 대한 동물실험을 마치고 내년 하반기쯤 임상1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실험실로 직행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지만, 어찌 험난한 시절이 없었으랴.

"어려웠던 시기를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만 힘든 미국 유학시절이 생각나는 군요. 어렵사리 들어간 실험실이 간 지 얼마안돼 문을 닫는 바람에 새로운 실험실을 찾아 헤맸었는데, 그 때 찾은 곳이 인디애나의대 심장연구소였습니다. 덕분에 우연히 심장 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알고보니 그는 14년전에 이미 세계 최초로 심장에 세포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내 5~6곳의 다른 연구실에서 계속해서 실패만하던 일을 동양의 작은나라에서 온 과학자가 9개월만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포 이식 연구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다.

"줄기세포라는 게 참 위험합디다. 이식 연구 보다는 분화에 대한 연구가 우선시 돼야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허혈성 심장 혈관을 치료하는데로 관심을 돌렸죠."

짧게나마 공군 군의관 시절 심장 임상을 경험해보기도 한 터라 그는 요즘 뜨는 중개연구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적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몸담고 있는 KAIST 의과학센터를 반석 위로 올리고 후배들을 양성하는데도 애정을 쏟고 있다.

"과학자나 의사나 연구비가 적거나 일이 힘들어서 괴롭다기 보다는, 자신이 평생을 들여 갈고 닦은 분야에 배우려는 후배가 없다는 사실이 정말 괴로운 겁니다. 전북의대에 있을 때 5년간 단 한 명도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없었다는 게 참 가슴 아팠거든요."

요즘은 그래도 많이 달라졌단다. KAIST 생명과학부에 의사 출신 교수가 자신을 포함해 두 명으로 늘어났고, 의대를 마치고 석사 과정에 들어온 학생도 10여명쯤 된다. 학부를 졸업하고 의대에 편입한 학생이 마치 연어가 제고향으로 돌아오듯 다시 연구에 투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과학 연구에 대한 미래성을 점쳐 보기도 했다.

"생명과학 분야는 천재보다는 성실하고 끈기있는 과학자가 성공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해서 이제 막출발하는 기차표가 10장쯤 된다고 할까요?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값진 보람을 손에 넣을수 있을 겁니다. 단,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쉬 지쳐버리지 말고 무엇이든 재밌게 즐기면서 하세요. 인생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자,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요."

그런데 10장쯤 되는 기차표 중 하나를 그의 아들도 낚았다는 점이 재밌다. 하여간 세상이 '퍽도' 좋아진 바람에 두어번의 손가락 까딱거림으로 그를 따르고 있는 2세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촉망받는 첼리스트, 하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를 따라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하버드대학 생물학도. 고 교수가 연구 농사 뿐만 아니라, '자식 농사'까지 잘 지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권유할 정도라면 '생명과학'에 정말 뭔가 있긴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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