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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면허박탈, 전문가 탄압 도구인가…

시론 면허박탈, 전문가 탄압 도구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5.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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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주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실장

보건복지부는 현직 의사협회장인 김재정 회장과 한광수 전 서울시의사회장 2인에 대하여 5월 10일자로 의사면허 취소처분을 결정하고 공식 통보했다. 이로서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전면시행을 앞두고 <의-정간 갈등>으로 초래된 의료파업사태는 징역형 등 의사들의 대규모 형사처벌을 낳았고, 의협 대표 2인의 의사자격 박탈이라는 세계의료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번 면허취소 행정처분이 의료전문직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해악과 그 파장을 정부가 제대로 알고 내린 조치인지 의심스럽다. 이제부터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프라이드슨(Freidson)에 의하면, 의사 같은 '전문직'은 일상적 지식으로는 여전히 편입되지 않은 '전문화된 포말(formal)한 지식'을 요구한다. 이런 '전문화된 형식적 지식'은 직업을 위한 특수 학교교육을 통해서 획득된다. "일반 대중, 국가, 혹은 일부 권력을 가진 엘리트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이런 재량적 전문직들은 자신의 노동을 독점, 혹은 통제하는 특권 신분을 부여받는다. 이런 독점적 통제는 모든 것의 출발점인 순수 전문주의에 필수불가결한 특성"이라고 말한다. 전문직과 그 동업집단인 '협회'는, 바로 이러한 전문지식에 대한 독점적이고 자율적인 통제를 통해서만 직업적 소명을 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장의 통제와 정부의 관료주의 통제, 그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을 '전문직 자율성'이란, 그것이 없으면 발전이 어렵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문직의 속성이다.

이 말은 사회적 설득을 통해 시장과 국가로부터 전문직 권한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행위는, 단순히 전문가집단의 이기심이 아니라 전문직의 '직업적 사명'에 고유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설득에 실패한 전문가 집단은 기술직으로 전락하여 직업적 사명으로부터 멀어진다.

2000년 '의사의 난'은, 의사들이 정부의 부당한 법적 강제에 저항함으로써 의료전문직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비록 그 저항 형태가 거칠고 자연발생적이며 전략적인 지향을 갖기 힘든 조건 속에서 '사회적 설득'에 실패한 한계가 있었지만, 당시 의사라면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에 대항해 강한 동업자 의식으로 저항함으로서 한국의료 역사상 최초로 의사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최근 10년여 동안, 소위 '의료개혁'이라 불리는 평등주의적 개혁정치의 대두로 의사의 '전문적 통제권한'조차도 마치 정의롭지 못한, 의사만의 잇속을 위한 '기득권' '특권'인 양 인식하고 분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의약분업 정책은 의사와 약사가 1차 의료시장에서 서로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전근대적' 의료 환경을 무시하고 그동안 의사가 독점해 온 전문적 권한을 제 3의 집단을 내세워 수평적으로 재분배함으로서 의료를 통제하려 한 것이었다. 약대 6년제라든가, 의사의 감독 시야에서 벗어난 '수발보험'의 추진, 물리치료사 간호사 단독개원, 그리고 비전문적 심사제도의 강화 등도 그러한 경향을 말해 준다.

이로 인해 전문직의 자율적 통제권한은 갈수록 형해(形骸)화 되고 의료에 대한 국가의 관료적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 8만 한국의사의 직업적 양심을 대표하고 있는 의사회장의 자격이 박탈된 것도 이러한 위기의 실상을 말해준다.

국민의 안방을 독차지한 TV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현대의학의 전문지식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전문적 의학지식과 권한은 이제 인간해방을 인류공영의 무기로서 사회적 소명을 수행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정부의 이번 행정처분은 법리적으로 '합법적'이다.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처분의 근거는, 의사파업을 주도했던 의협 지도부 9인에 대한 대법원 판결(2005년 9월)에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법체계는 의사가 정부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민간인 신분'인 경우에도 단지 '의사라는 이유'-국가로부터 의사자격을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한 단체행동을 금지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일방적인 보험계약과 조건을 감수하도록 강요한다. 또한 건강보험 상의 '청구행위'도 '의료행위'로 간주되어 면허정지나 취소의 사유가 된다. '보험실사'를 받는 의사 대부분이 이 때문에 범법자가 되고 의사자격까지 취소된다.

의협회장에 대한 면허취소는 바로 이러한 전문직의 국가 예속화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프라이드슨의 말을 빌자면, "전문주의는 사회적 계약의 토대이다. 사회는 전문직의 개념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합적 서비스의 제공을 조직하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전문주의는 계약의 기초이고, 또한 의료전문직이 가지는 기대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의사협회장의 면허를 박탈함으로서 이 사회적 계약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 의사들에게 정부는 '사용자'나 마찬가지이다. 사용자인 정부가 정부 정책을 문제 삼는 단체행동을 이유로 면허까지 박탈한 것은, 그 면허로 유지되는 전문동업집단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자 정치탄압이다.

정부가 이렇게 자율성을 유린하고 '의사면허'를 전근대적 통제도구로 삼게 될 때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제도실패 사례인 의약분업은 과거 일로 치자. 정부는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의료현장의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누가 정부 정책이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경쟁자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사가 정부의 전근대적 '면허관리'사슬에 묶인 노예 신분이라면, 어떻게 의사가 환자 입장에서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으며, 전문가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이번 면허박탈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비록 '법대로'의 절차였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그 결과에까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의료(관련)법체계의 전근대성과 관치(官治) 행정은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 의사의 무슨 전문가적 '사명'이나 '역할'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을 터이니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 라고 정부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우리사회의 포퓰리즘 정치판 속에서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사들이 이 '기술직' 노예의 삶을 언제까지 감내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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