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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창립 97주년 특집] e-Health 기회인가 위기인가

[의협창립 97주년 특집] e-Health 기회인가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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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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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동 의료와 사회포럼 공동대표(경상남도의사회 부회장)

보건복지부는 IT기술을 이용해 각 병·의원 및 의료인이 진료과정에서 생성하는 각종 진료자료와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체계 즉 'e-Health'의 구축을 위해 수년전부터 진료지원 및 정보공유시스템을 개발하고 전자건강기록(EHR) 핵심기술을 개발하는데 투자해 왔다.

복지부가 최근 마련한 '국가보건의료 정보화 계획'에 따르면 "2010년까지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국민 전자건강기록시스템을 구축해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이용을 보장한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복지부는 의사가 환자의 과거 진료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전자건강기록이 구축될 경우 의료비의 10%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한국에서 매년 약 4조원의 의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개인의 질병정보와 개인신상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e-Health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듯해 우려가 앞선다.

의료기관의 진료정보를 하나로 엮어내고, 공유하기 위한 e-Health 구축 계획은 대통령직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핵심 과제로 선정돼 전문위원회까지 구성한 상태다. 지난 10월 25일 'e-Health 전문위원회' 첫 회의에서는 ▲전자건강기록 확산전략 수립 ▲보건의료정보 표준화 추진전략 수립 ▲원격의료 시범사업 추진전략 수립 ▲공공보건 정보화 추진전략 수립 ▲소비자 건강정보 제공 전략계획 수립 ▲의료정보화 추진 관련 법률 제정 등을 검토대상 정책과제로 확정했다. 복지부는 e-Health 촉진을 위해 전자건강기록에 사용되는 용어·서식·전송방법 등에 관한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의료기관 간에 환자진료정보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복지부는 앞으로 '의료정보화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을 마련하고, e-Health와 관련된 사업을 전문가집단이 전담 추진할 수 있는 '보건의료정보지원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문제는 개개인의 민감한 프라이버시인 건강정보를 광범위하게 구축하고 집중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의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국가가 모든 개인의 병력을 관리하는 개인의료정보전산망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의료기관간의 코드표준화와 진료정보의 공유는 결국 통합 전자건강기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복지부는 보건소 246곳, 보건지소 1271곳, 보건진료원 1899곳에 6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8년까지 EHR을 구축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대학병원 14곳과 공공병원 41곳에 EHR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공공의료기관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진료정보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진료비 청구를 위해 거의 대부분 의료기관이 사용하고 있는 EDI를 청구 데이터를 이용해 환자의 진료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대형 컴퓨터에서 관리되고 있다. 심평원은 축적된 진료정보를 토대로 주사제 사용실태·제왕절개 분만율·항생제 처방실태·급성심근경색증 및 허혈성심장질환자에게 실시한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관상동맥우회로술의 급여적정성 평가 등 공급자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심평원은 평가자료를 근거로 진료비 가감 지급까지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 않아 불필요한 의료이용이라는 낙인 아래 국민의 의료이용에 대한 평가도 이뤄질 것이다.

전자의무기록의 표준화를 달성한 후 표준진료지침을 만들어 진료행위 전반을 규격화할 경우에는 환자의 개인차나 진료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소위 '붕어빵 진료'의 강요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진료정보의 유출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전 공단 직원이 가입자 정보의 일부를 민간보험사에 빼돌린 사건을 비롯해 인터넷을 이용한 주민등록번호·아이디 도용은 물론 인터넷 뱅킹 자료의 유출 등 해가 갈수록 개인정보의 침해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 한 곳에 접수된 개인정보 침해 신고건수는 2000년부터 2005년 7월까지 6만437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개인정보 침해는 지난 5년새 10배나 증가할 정도로 최근 들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개인진료정보의 전산관리는 언제든지 내부는 물론 해커에 의한 외부정보 유출 문제를 안고 있어 철저한 보안장치와 인권 및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대책이 요구된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주민등록 자료의 유출이나 개인정보의 도용 등의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건강자료를 통합하고 공동으로 이용하게 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인권침해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보건의료 정책이 인간의 자유와 인권보호를 우선으로 하지 않고 편리성과 비용 절감만을 생각한다면 영화 아일랜드와 같이 복제 인간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환자는 자신의 질병을 의사에게 보임을 허락함으로써 의사의 진료가 시작된다. 환자가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 개인의 의사를 존중함이 마땅하다. 자신의 몸을 살펴볼 수 있도록 허용한 의사 이외에 자신의 몸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정부라고 할지라도 허락 없이 개인의 몸을 살펴볼 권한은 없다. 개인의 건강 정보를 개인의 허락없이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체주의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일 것이다.

자율성이 없어서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아이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보호자의 허락이 있어야만 의사가 그 환자를 볼 수 있듯이 정부도 허락없이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경우를 최소화하는 것이 인권보호의 기초이고, 자유보장의 기본일 것이다.

누구든 허락없이 개인의 질병 정보를 통합하고, 관리해서는 안된다. 개인정보의 통합·관리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며,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열게될 우려가 높다. 독재의 탄생은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개인의 허락 없이 질병정보를 관리하는 것은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의료제도가 인간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편리성과 비용 절감을 위한 통제'보다는 '제도의 자율성'과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의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된다. 인간과 제도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개개인의 민감한 프라이버시인 개인 건강정보를 광범위하게 집중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 정보의 집중문제는 교육정보시스템(NEIS) 논란에서 이미 심각하고 부정적으로 다뤄진 적이 있는 만큼 개인의 건강정보를 집중하는 문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지적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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