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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성숙한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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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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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안철우<연세의대 교수·내과학>


 지난 겨울 나는 피곤하였다. 늘 부족한 능력과 과중한 현실의 괴리에서 외화(外華)에 초조하고, 무미한 일상에 연연하여 정신과 육체는 깨지기 쉬운 유리알이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조언으로 반신반의하면서 반신욕을 시작하게 되었고 책을 읽었는데, 우선은 나름대로 오롯하게 30분 정도를 나를 위한 시간을 적신다는 것이 참 소중하였다. 또한, 오랜만에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책들을 읽으면서 잊었던 절박하고 수다한 사변의 향기에 잠기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영문모를 참을 수 없는 우울한 고독과 더불어, 마치 소가 초원의 풀을 여기 저기 뜯어 먹듯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예전에는 수상발표와 동시에 바로 달려가 서점에서 구입하여 그 당시 까닭없이 소중하게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이상문학상 수상집들을 다시 찾아서 최근 29회 수상집인 한강의 <몽고반점>까지 포함된 단편들을 포함해서 읽었고, 김훈의 <칼의 노래>, 이인화의 <하비로> 등의 장편도 읽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다시 빨려들 듯이 삼킨 책은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였다. 아마도 그때의 여러 가지 심상과 맞아 떨어져 <연금술사>는 더욱 깊고 짙은 색깔로 다가와 잃어버렸던 유년의 훈장을 찾은 기분을 던져주었는데, 특히 주인공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고독하고 아름다운 여정의 길은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만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우주의 언어'를 파악해서 '자아의 신화'를 찾는 과정은 바로 <연금술사>의 인생이며, 이는 어쩌면 '산티아고' 뿐만 아니라 정녕 우리의 인생의 사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나의 인생의 여정은 어떠하며, 급속하게 지치고 쇠잔해진 나의 피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행운과 성공에 대한 집착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체성 부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등이 그 저변에 와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쇳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부글거리는 후회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슬며시 지워보지만 어떻게 극복하고, 또한 끝까지 견지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나의 뽀얗게 쌓인 먼지 쌓인 화두에 <연금술사>의 촌철같은 글귀들은 해답을 주었다.

 즉, 과거의 행운과 성공의 집착을 극복하고, 현재의 고단함을 인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찾아나서는 도전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다' 등의 글귀가 평온함을 주었다. 일에 대한 애정의 확신 없음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그녀의 존재를 알기 전에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의 글귀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현재의 상황과 관계들과 소중함에 대해서는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다', '하루 하루의 순간 속에서 영겁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는 글귀가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보다 성숙한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서는 지난한 연습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삶도 자동적으로 운위되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쉬운 것은 없다. 마음은 비워두자. 그리고 압지가 물을 흡수하듯 앞으로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며 내면화시켜야 한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삶이 감동치며 느껴질 때, 현란한 외화는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흰 눈이 쌓인 오두막에 혼자 난로 지피며 말없이 그 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나 혼자만의 생각에 침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왜 그 동안 동이불화(同而不和) 같은 어수선한 휩쓸림에 천착했던가. 이제부터라도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더 이상 미혹되지 말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대지위에 내일의 견실한 씨를 뿌려라. 유치한 신경들의 언희에서 초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당당한 솔직함이 우선된다. 열려진 가방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 해도 그 앞에서 열려진 가방이 되자. 누군가 그안에 무엇을 빼고 또 그 무엇을 넣는다해도 상관없는 난, 열려진 가방이다. 각오의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음을 편하게 두자. 왜냐하면 난 열려진 가방이니까.

 진실로, 이제는 나의 은근한 각오를 존중하면서, 다시 차근하게 걸음마를 시작할 것이니, 그럼에도 앞으로 펼쳐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에 대해서는 '천지의 모든 일들은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마크툽'이라는 말, 즉 '우리의 삶과 세상의 역사가 다 같이 신의 커다란 손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는 읽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추측하는 것이다'라는 글귀와, '어느 한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뜻을 모은다'는 연금술사의 핵심 모티브로 마무리를 대신하며, 적막하고 피곤한 겨울에서 찬란하고 은성한 봄으로 이르는 길목에서 만난 반신욕과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게 다시 한번 정숙한 벚꽃같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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