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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안락사 허용할 것인가, 말것인가?

[집중취재]안락사 허용할 것인가, 말것인가?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4.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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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주·네덜란드 안락사 입법…미·일·대만 존엄사 인정
"국내 안락사 논쟁 시기상조"…'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논의가 현실적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해오다 법원의 판결로 급식튜브가 제거돼 지난 3월 31일 숨진 테리 샤이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 안락사법 논란이 뜨겁다. 이를 계기로 국내서도 97년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잠잠했던 안락사 논란이 재점화됐다.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수명 100세를 현실로 만들었지만  첨단기기들이 발달하면서 수십년 전만 해도 같은 상황에서 사망했을 환자들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수일에서 수년까지 연장하면서 무익한 연명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부작용 역시 낳았다.  

이에 따라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안고 있는 안락사의 문제는 환자 입장에서는 '죽을 권리가 있는가'의 문제로,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에 대한 치료 의무는 언제·어떤 조건 아래서 면제되는가'의 문제로 떠안겨 졌다.샤이보 사건으로 다시 한번 수면 뒤로 떠오른 안락사에 관해 각국의 현황을 살펴보고 국내 현실을 짚어 본다.

◆ 외국에서의 안락사 논란

 국 가

 내       용

미 국


판례법 위주의 미국법에서는 1983년 낸시 크루젠의 판결을 관습적으로 따르고 있다.이번 샤이보 판결도 낸시 크루젠의 판결과 유관하다.이 판결에서 미 연방법원은 사전에 환자가 자신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명확한" 의사표시를 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 치료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연방법원에서는 아직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린 바 없다. 
 

▲1998 오레건주 안락사법 입법='인간적이고 존엄한 방법으로 삶을 마감하기 위한 투약 요청서'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통과된 의사 조력 자살법. 의사가 형사 고발을 당할 위험 없이 말기 환자에게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

네덜란드

안락사 합법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시행해 집행하고 있으나 엄격한 조건을 거쳐야 한다.

호 주

노던 테리토리주에서 말기환자의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법안을 채택, 제안됐다.이 법에 의해 4명을 안락사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폐기됐다.

독 일

독일연방법원은 소극적 안락사를 '죽음에 있어서의 도움'이라고 하고, 이런 도움은 해당 환자의 의지에 따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따라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조치(심장박동기·혈액공급·인공부양영양식 등)를 중단할 권리가 의사에 있다고 본다.

덴마크

부모 허락하에 합법.

이탈리아

안락사 불법. 현재 논의 진행중이다.

스웨덴

안락사 불법이며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스위스

환자 스스로 독약을 먹을 경우에만 합법이다.

영 국

2002년 다이앤 프리티의 법정 소송 이후 논쟁 진행중이며, 안락사를 하면 최대 14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락사의 개념은 주로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자의 요청시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위로 환자의 죽음을 도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논란이다.

물론 이번에 미국에서 논란이 된 샤이보 사건과 같이 혼수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서 환자 혹은 환자의 가족 동의 하에 인공호흡기나 영양급식 튜브를 제거하는 것은 소극적 안락사 개념이다.

미국 오레건주나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엄격한 규정에 따르고 있고, 세계의사회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라 해도 안락사 금지를 권고하고 있다.

◆ 국내 상황 =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안락사 논쟁이 본격화됐다.

1983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 안락사를 주제로 공동세미나 개최

1989

뇌사판정기준안 발표

1993

대한의사협회가 '뇌사에 관한 선언'을 함으로써 뇌사를 의학적으로 인정

1997

12월 보라매 병원 사건

1999

'환자의 진료시작이나 중단(퇴원)시 유의하여야 할 사항'

…치료중단의 요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발간 배포

2001

4월 '의사윤리지침' 확정…안락사 금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허용

2001

안락사 및 존엄사에 대한 의학적 접근 심포지엄 개최

2002.3

연명치료 중단의 법·정책적 토론회 개최

2002.5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대한의학회 의료윤리지침 발표

보라매 병원 사건은 58세의 남자가 응급실에 내원해 뇌혈종제거술을 받은 뒤, 환자의 처가 퇴원을 요구하자 담당 의사가 퇴원조치한 뒤 환자 집에서 기관내 삽관을 제거, 5분뒤 환자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처는 살인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담당의는 살인방조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라매 병원 사건을 계기로 의협은 환자의 퇴원문제 등에서 야기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1999년 '환자의 진료시작이나 중단(퇴원)시 유의하여야 할 사항'이라는 제목으로 치료중단의 요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발간 배포했다.

◇ '소극적 안락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구별해야 = 국내 의료계에선 '소극적 안락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암센터 교수는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는 죽음을 목적으로 특정 치료행위를 중단하는 행위로 치료중단 결정은 뒤바꿀 수 없는 반면 무의미한 의료행위의 중단(futility)은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언제든지 치료중단 결정을 철회하고 치료를 계속할 수 있다"고 구분한다.

이윤성 교수(서울의대 법의학 교실)에 따르면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안락사하는 과정, 즉 '어떻게 안락사 했느냐'의 문제로 의사가 환자에게 당연히 해야 할 치료를 하지 않아 환자가 죽게 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

안락사는 윤리학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을 만큼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박상혁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소극적 안락사에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소극적 안락사가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고 말했다.

이윤성 교수는 "얼핏 보기에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도 소극적 안락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게 불필요한 '의료집착적 의료행위'를 함으로써 환자가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박탈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허용해야 =그러나 국내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뿐만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도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은 '자연사법' 혹은 '존엄사법'의 형태로 ▲1976년 미국 Natural Death Act ▲1980년 로마 교황청 존엄사 인정 ▲1992년 일본의사회 존엄사 허용 ▲1994년 미국 개신교 존엄사 찬성/안락사 반대 ▲2000년 대만 자연사법 통과 등으로 많은 나라에서 합법화됐다.

우리나라의 의료계에서도 임종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중단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 왔다. 2001년 확정된 '의사윤리지침'에서도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을 금지(제58조·59조)하고 있으나,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제60조)며 의학적으로 의미없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이는 안락사는 금지하지만 "말기 질환의 경과에 따라 자연적인 죽음의 과정을 따르겠다는 환자의 요구를 존중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세계의사협회의 선언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대한병원협회가'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 결정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 및 절차 등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서비스 제공의 단절이 사망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해서는 퇴원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유권해석 했다.

이에 따라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사들이 방어적인 진료를 계속하고 있고, 환자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을 지고 있는 형편이다.

◇ 사회적인 오해가 걸림돌 = 2001년 의협은 윤리지침을 발표하고 대한의학회는 심포지엄을 열어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윤리지침'을 작성했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안락사 논쟁'으로 왜곡·확대됐다.

허대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을 '소극적 안락사'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고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를 의사들이 포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시도로 오해하고 있다"며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의 근본 취지는 회생이 희박한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힐 때, 이에 상응해서 의사가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지라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손명세 교수(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는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고 나서지 않는다.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도출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안은? = 지난 2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관한 안락사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사회복지제도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제도가 미흡해 안락사 논란이 외국과 달리 '환자의 죽을 권리'가 아니라 '진료비 문제'와 결부돼 있어 안락사 논란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의료비의 상당부분이 임종 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에 이용되고 있어, 의료재원의 분배가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미국의 자료를 보면 임종전 1년 동안 지출되는 의료비의 50%가 임종전 2개월 동안 지출되고 1개월 동안에는 40%가 지출되고 있다.이는 입원과 인공호흡기의 사용·심폐소생술 등의 이용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역시 암 환자만 해도 사망전 한 달간 진료비가 연간 진료비의 30%를 넘는 등 사망직전에 드는 진료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1999∼2000년 입원한 암환자 가운데 6만5300명에 대한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사망전 1개월간 1인당 평균진료비가 176만원으로 연간 평균진료비(564만원)의 31%를 차지했다.

또 사망 3개월전까지의 진료비는 연간 진료비의 58.3%로 나타나, 임종 전 병원에서의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한다 해도 치료 중단을 누가 결정할 것이며, 환자에 대한 후속 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남는다.

다른 나라의 예에서 보듯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로는 사전의사결정제도(Advanced directives)·호스피스법(Hospice Act)·자연사법(Natural Death Act) 등이 있다.

이윤성 교수는 "보라매병원 사건처럼 의사는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결하는 등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며 "의사뿐 아니라 법률가·윤리학자·사회학자 등이 모두 참여하는 병원윤리위원회를 체계적으로 구성해 치료 중단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임종에 관한 의료비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사용되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의 통증을 제거하거나 완화하고 체온을 유지하며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등의 호스피스-완화의료에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대석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것과 함께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도화하고 사전유언제도·대리인 지정제 등 자기의사결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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