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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7:53 (일)
"새로운 의료윤리를 모색한다"

"새로운 의료윤리를 모색한다"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3.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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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교수에게 들어 본 래난 길론의 <의료윤리>

현직 의사이면서 철학가인 래난 길론이 쓴 <의료윤리>(원제'Philosophical Medical Ethics')가 국내에 번역됐다. 이 책은 의료윤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반박하고, 전통적인 의료윤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현 시대에 맞는 적절한 의료윤리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길론은 영국 '의료윤리지(Journal of Medical Ethics)' 편집장·런던 의료윤리연구소 부소장이란 직함과 아울러 의사라는 그의 이력만으로도 이 책을 접했을 때 때론 갈등하고  상보적인 의료-윤리의 관계를 어떻게 풀었을 지 궁금증을 갖게 했다.

길론의 글을 한국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저자가 세상에 전달하려한 이 책의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했을 박상혁 교수(미 캔자스대학교 철학박사·서울대)를 통해 저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책을 간략하게 소개해 달라.


대체로 의료윤리에 관한 서적은 철학적인 문제만 고집하거나 임상에서의 구체적인 사례에 한정돼 있다.이 책은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조합, 철학에 조예가 깊은 현직 의사가 실제로 많이 고민하고 성찰한 점이 눈에 띈다.책을 읽어가면서 의사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첫 장에 '아서사건'이 등장한다.어떤 의미인가?


아서사건은 1981년 '레너드 아서'라는 소아과 의사가 다운증후군에 걸렸다는 이유로  산모가 자신의 아기를 버리자 아기에게 탈수 방지제와 '간호 치료만'을 처방했다. 이 일로 아서는 신생아를 살해하려 했다며 기소됐으나 무죄방면됐다. 우리나라에서 연명치료 등 의료윤리 문제를 급부상시키는 계기가 된 '보라매 사건'과 비슷하다.사실 이런 예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저자는 의료사고에 대응하기에 단편적인 의료윤리로는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먼저 저자는 "과학과 윤리는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근대 이후로 '객관성'이란 개념은 과학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윤리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객관성을 담보로 한 개념이다.

둘째로,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은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의료실천"이라는 견해에 반박한다.의료실천과 의료윤리는 뗄 수 없는 관계다.가령 어떤 의사가 외래 환자는 조금만 보고 수술만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 보자.이는 제한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의료실천 자체에 법과 윤리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다.

세째로, "의사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윤리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견해를 비판한다.저자는 '양심·고결함·훌륭한 인격' 등의 개념이 모호하며 그러한 성품을 모두 지닌 의사들도 의료문제에 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의료윤리는 무엇인가.


4가지 도덕원칙이다.즉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 선행을 베풀라는 선행의 원칙,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악행 금지의 원칙,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정의의 원칙이 그것이다.이 원칙들을 적절히 배합하자는 저자의 논리는 현대의 중요한 철학인 공리주의·칸트주의(의무론)·사회계약론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공리주의는 '도덕이 인간의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칸트주의는 기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입장인데 이 두 입장의 교집합이 4원칙이다.이 원칙은 사회계약, 즉 사회 구성원들간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정당화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고 논리다.

-예를 들어 달라.


가령 장기이식은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복지에 기여하므로 긍정적이다.그러나 칸트주의 입장에서는 장기매매 등이 발생, 사람을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이를 적절히 배합,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매매를 법률적으로 금지하고 순서에 의해 장기를 분배하는 원칙이 세워졌다.의료윤리는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결국은 합의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저자는 의사가 환자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환자의 비밀을 보장해야 하는가, WHO의 건강에 대한 정의는 타당한가 등을 언급하면서 의사가 환자 그리고 사회와 대화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함을 강조한다.

-길론과 같이 의료윤리에 관심있는 학자로서 향후 계획은?


국내서도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의료윤리는 드물다.이 책의 저자처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의료윤리가 절실하다.국내 의료윤리 이슈는 아직 배아복제 같은 센세이셔널한 문제에 한정돼 있다.의료자원의 배분이라든지 보험 등 보다 거시적인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개인적으로 법과 도덕·법과 윤리 분야에서 의료법이 과연 의료윤리와 일치하는지를 다루고 싶다.사법적 판결이 의료윤리와 가장 밀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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