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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소비자의 입장

[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소비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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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3.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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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관(중앙일보 기자 건강의료원)

김대중 정부의 개혁과제 평가-소비자의 입장

 


지난 5년 우리 의료소비자들은 서양의학 도입 1백년사에 가장 큰 변곡점을 지나야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약분업 제도의 시행 때문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을 살려 약의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의·약사의 업권다툼 속에 의약분업의 본질은 시행 초기부터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바뀐 제도로 환자들의 불편은 가중됐지만 오히려 의·약사 두 단체의 치열한 싸움을 숨죽이며 지켜봐야 했다.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에 끌려 다니며 의료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분업 시행 3년도 안된 시점에서 아직 정책의 성패를 점치기에는 이르다.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와 여당은 긍정적인 면만을 홍보하고, 그렇지 않은 집단은 미완의 개혁 또는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약분업 2년의 성과를 보여주는 수치는 일단 긍정적이다. 의약분업 전 1억7,000만 건이나 되는 임의조제가 사라지고, 의료기관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국민의 의료행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의약품 오남용의 주범인 항생제와 주사제, 스테로이드제 사용이 분업 전에 비해 20% 내외로 감소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의약분업이 정착단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소비자들은 아직까지 결론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부에 와 닿는 이익도, 성과도 없기 때문이다.

또 의료문제를 의약품 오남용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책당국자들은 마치 의약분업만 해결되면 모든 의료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던 것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의약분업 사태가 일파만파 예측하지 못했던 파장을 몰고 와 정작 의료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펼 시간과 노력의 기회를 박탈한 것일까.

의약분업이 시행과정에서 의료소비자를 소외시킨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
첫째, 환자의 불편이다. 정부는 의약분업이 환자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약에 대한 접근도를 떨어뜨려 오남용을 막는다는 식으로 당위성을 설명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모든 사회구조가 소비자의 편리성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에 역행한다. 환자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약사의 담합을 막는다고 해서 의료기관과 약국의 환자 연계를 불법으로 규정하기까지 한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방법은 후진적이다. 의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약을 타기 위해 다시 약국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는 의료소비자들을 불평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불편이 2001년 5월, 11월, 2002년 5월 각각 22.8%, 20.6%, 18.5%로 점차 줄어들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노약자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볼멘소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이 확보된 OTC는 약사회의 반대로 일반슈퍼나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아 이래저래 약을 둘러싼 환자의 불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둘째, 두 직능간의 불협화음이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이 환자를 중심으로 협조해야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두 집단은 약에 대한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작 의료소비자는 소외시킨 꼴이 됐다. 문전약국들은 대형화되어 환자들을 유치하는데 급급했지 환자들을 위한 처방전 검토나 복약지도 같은 서비스는 뒷전이다. 병원 안에 있던 약국이 밖으로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말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이 ‘의료소비자의 알권리’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자. 약국에서 복약지도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1.3%에 불과했다. 또 이중 부작용 발생시 조치요령에 대해선 63.7%,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선 52.4%, 약물 복용시 주의사항에 대해선 41%가 복약지도가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게다가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을 반대, 대체조제를 철저하게 막음으로써 자신들을 위한 약권을 수호했다. 그러나 결과는 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경쟁력이 약한 국내기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다국적 기업의 이익에 크게 기여(?)했다.

셋째는 의료시스템의 왜곡현상이다. 의약분업 이후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급 의사들이 대거 개원가로 쏟아져 나와 개원러시를 이루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할 교수부족과, 인건비 상승을 부채질한데서 머무르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으로 병의원들은 인테리어나 시설, 마케팅 비용 등 진료외적 부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가 하면, 전문화·특화를 함으로써 중소병원·대학병원과 경쟁함으로써 의료전달체계가 무색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전문의 중심의 시장구조로 1차 진료 담당의사가 태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전문화한 의원들이 속출해 의료소비자에게 필요한 주치의제도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넷째는 보험료의 인상이다. 의료의 질은 나아진 것 없이 막대한 적자 재정을 메우기 위해 소비자에게 세금과 보험료를 추가 부담케 함으로써 가계에 주름살을 보탰다. 정부는 앞으로도 매년 9%의 보험료를 인상, 재정적자를 충당하리라 다짐하지만 여전히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은 불투명해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정운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불보상제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편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다섯째, 의료서비스나 의료의 품질은 간과되었다는 점이다. 다행히 의료서비스 부문은 의료기관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자발적인 개선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의료 품질의 균형적 발전은 아직 요원하다. 실제 의료소비자들은 지방과 서울, 중소병원과 대학병원간의 의료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의료 품질의 격차현상은 환자의 편중으로 이어져 의료기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한다. 결국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고, 환자들은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특정 병원에 몰려 불편함이 가중된다.

마지막으로 첨언한다면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에 이르는 양질의 포괄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책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치료중심의 의료지원에 급급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1차의료와 예방의학에 대한 대책이 미숙했다. 국민들이 어디서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 의료분쟁을 줄일 수 있는 양질의 의료, 응급의료체계, 공공의료의 취약 등 문제들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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