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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사회학적 측면

[2003창간]참여정부 보건의료과제/사회학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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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3.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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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서울대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김대중 정부의 개혁과제 평가-사회학적 측면

 


개혁의 담론이 물위로 부상한 후 실제 개혁의 과업이 실행되기까지는 시간적 간극이 필요하다. 또한 그 기간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논쟁과 상호작용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개혁의 청사진이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저절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의료개혁의 화두를 던졌지만,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이 제시되고 한국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의료제도가 정착하게 되기까지 산적한 과제해결을 위해 관련 집단 간 충돌과 이에 대한 조율 과정이 필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의 의료정책과 당시 시도했던 의료개혁의 프로그램을 `실패한 개혁'의 표본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비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무책임한 집단이 여론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의료문제가 사회적 담론의
중요한 주제로 부각
최근 몇 년 사이 의료보험통합이나 의약분업이라는 의료제도의 변화가 사회적 차원에서 공공담론의 중요한 주제로 인식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된 의료보험 통합일원화나 의약분업의 이슈가 김대중 정부에서 실질적인 제도적 변화로 단행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집단의 범위가 확장되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 이상 의료정책은 관련 전문가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일부 관료와 정책연구자들의 아이디어로 채워지는 분야가 아니라, 정부, 의료인, 국민 등 관련 주체의 합의하에 비로소 성공적인 정책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확인한 것은 `개혁의 성공'이라는 긍정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혁은 누구에 의해 가능한가
미국의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정책을 입안, 집행한 Kissick은 의료의 딜레마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의료체계(healthcare reform)의 3주체-국가, 지불자, 국민-가 이루는 삼각구도(medical triangle)의 이상형(ideal type)이 무엇인지 일반화하기란 어렵다고 말한바 있다.

형평성과 효율성의 동시적 실현은 각 사회와 조직이 처한 특수한 상황, 조건에 의해 다양한 외양을 띄게 되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의료의 미래 역시 개혁의 주체세력으로서의 정부, 의료인, 국민의 역량에 의해 새로운 틀을 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 의료 개혁의 주체세력은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정부, 재정난을 핑계삼아
소극적 조치만을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정부의 의료정책은 당장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의 비용부담을 확대하거나 의료보험수가를 낮추는 것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 조절이 용이한 저수가 저급여 정책을 유지하는 것으로 급한 불을 꺼 왔고 그러한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의약분업 당시 관련 집단의 의견을 통합, 조절하지 못한 채 개혁의 실행을 위한 현실적 준비보다는 당위성에 입각한 정책추진에 급급하였다.

의료계나 국민 양자에게 모두 경제적 손실이 없을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의약분업이야말로 의료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약사 집단의 반발에 부딪히고 국민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건강보험재정의 적자폭이 커지게 되었다.

의료개혁의 세부프로그램은 의약분업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실행되어야 했으나 정부는 일단 불이 붙은 의약분업 논쟁의 사회적 파장력을 잠재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오랜 기간 누적되어 왔던 의료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했고 그 효과를 경제적 득실의 논리로만 이해했으며 이익집단간 갈등을 조정할 능력이 없었다.

아직까지 한국 정부는 보건의료의 이슈를 사회 정책의 주요 의제로 설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의료가 공공재라면 이에 대한 관리, 운영의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의료는 단시간에 가시적인 결과물(outcome)을 내는 생산영역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평가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자기규제에 대한 성찰 필요

의사들은 의료보험통합논쟁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의약분업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고, 이를 계기로 의로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게 되었다. 집단파업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의사라는 직업집단으로서의 사회적 의식이 고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의사들은 의사가 전문직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집단의 자기규율을 통한 공익의 실현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GDP 대비 의료비 지출 규모나 건강보험 급여수준이 턱없이 낮은 것은 사실이며 여타 왜곡된 의료관행을 정비하는 데에는 건강보험재정확충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의사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의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국민들이 불신하는 의료계의 관행을 척결하기 위해 자체적인 자정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의사들의 파업이 지속되던 후반부에 이르러 의료계의 자정과 자기반성, 개혁 등의 이슈가 내부적으로 떠오르기는 했으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시 제기되었던 의료계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속적인 실천프로그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풀어야 할 과제도 많지만, 병원 내에서, 의사라는 전문가 직업집단 내에서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의료운동에 대한
시민의 참여 미흡

국민은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의료정보의 격차를 해소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시민운동의 형태로 의료개혁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시민운동의 발전 수준은 의료운동에까지 다양화, 전문화되기에 조직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의약분업 시행 당시, 일부 시민단체가 의약분업에 대한 의약정 합의안을 마련하고 정책과정에 참여하였으나 이는 순수한 의미에서 의료운동에 대한 일반시민의 참여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기존의 시민단체가 외양을 달리하여 수행한 시민운동의 다각화(?) 현상의 일편이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의료개혁 활동을 지지해 줄 사회적 토대가 취약한 상태에서 시민운동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였다.

■개혁의 주체는 이제 자본?

정책이란 이론적으로 완결된 논리적 집성체가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이는 관련 구성원들의 신뢰와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정책조정과정이 필요하고 실행된 정책에 대한 엄정한 분석을 통해 대안이 재생산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의료보험재정의 악화나 의약분업 이후 파생된 여러 문제들을 단지 실패한 정책으로 단언하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만 하면 상황이 호전되는 아닐 것이다.

정부는 근시안적 정책으로 당장 눈앞의 위기나 문제만을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해서는 안되며, 의사들은 자신이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전문가로서의 책임있는 참여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국민 역시 정부 정책이나 의사집단에 대한 불신, 비난만으로는 자기 몸의 주체로서의 권리행사에 성공할 수 없다.

당분간 개혁의 드라이브가 이들 세 주체로부터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민간보험의 도입, 의료시장 개방 등을 계기로 자본에 의한 의료시장의 재편이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양질의 고급 서비스를 제공받겠다는 국민, 보험급여의 제제로부터 자유로운 진료 환경을 갖고 싶어하는 의사, 굳이 정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의료제도에 대한 불만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가 모종의 합의하에 변화의 동력을 자본에게 넘긴다면, 불완전하나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공공재로서의 의료가 갖는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이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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